'미혼모 등에 대한 경제적 지원 열악'
[세종=뉴스핌 이진성 기자] 최근 보건복지부가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낙태(임신중절수술)를 포함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당사자인 의료계가 처벌보다는 오히려 선진국의 사례 등을 고려해 합법적인 낙태 시술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등과는 다르게 낙태를 사전에 예방하기 어려운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성교육이 미흡한 부분도 크지만, 사후 피임약을 구입하려면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하는 등 번거로움이 따르는 구조적인 문제점도 있다.
피임에 실패할 경우 강간과 정신장애, 전염성 질환, 혈족 및 인척에 의한 임신 등이 아니면 어떠한 사유로도 낙태가 불가능해진다. 때문에 음성적으로 낙태 시술이 성행하기 시작했고, 불법시술로 인한 이차적인 피해까지 발생하는 실정이다.
아울러 어려움을 이겨내고 아이를 낳더라도, 출생아에 대해 미흡한 복지정책은 이들을 극빈층으로 몰아내기도 한다.
민감한 문제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사회 공론화가 시급해 보인다.
1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산부 최소 4명 중 1명은 낙태시술 경험이 있다. 지난해 출생아수가 43만8700여명 수준인데, 복지부와 의료계는 매년 약 18만건의 낙태시술이 이뤄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더 이상 쉬쉬할 문제가 아닌 것.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나의 자궁, 나의 것-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들의 검은 시위' 참가자들이 낙태금지법을 반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낙태는 대부분 불법시술로 이뤄진다. 현행법상으로 자기결정권이 인정되지 않는 등 낙태를 위한 조건이 까다롭다보니, 원치않는 임신을 한 임산부들이 의료 사각지대를 택하고 있다. 시술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도 법위반 사항이라는 점에서 피해보상을 꺼낼 수도 없는 실정이다.
아이를 낳겠다고 해도 경제적인 문제가 따른다. 혼자라도 아이를 키우기로 결정한 미혼모들에 대한 정부지원이 미미해서다.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른 돌봄 서비스와 양육비, 자립촉진비용 등으로 2인 가족이 월소득 136만원 이하일 때 자녀가 12세 미만이면 월 10만원, 5세 이하면 15만원 받는 것이 전부다.
우리나라 문화 특성상, 미혼모들이 취업을 통해 자립하기 어려운 환경도 문제로 꼽힌다.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불가피하게 낙태를 택하는 사례가 상당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준비가 되진 않았지만, 아이를 키우겠다고 해도 문제다. 현 저출산 보육정책이 대부분 다가구에 맞춰져 있다보니, 첫째 아이에 대한 혜택이 전무해 극빈층으로 몰리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의료계는 이 같은 이유 등으로 낙태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관계자는 "선진국 대부분이 낙태수술에 대해 임신주수에 따라 일정부분 허용하고 있고 일본 같은 경우는 사회경제적 사유까지도 허용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인공임신중절의 적법한 사유가 거의 없다보니 원치않은 임신을 한 가정만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현행법상 낙태가 불법이라는 점에서 처벌 강화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현행 법을 지키면서 낙태를 예방할 수 있는 사후 피임약의 일반약 허용 등의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후 피임약을 의사 처방없이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하면, 원치않는 임신을 상당수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부 정책이 일정부분 미흡한 측면은 있지만 현 상황에서 낙태 범위를 확대하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니다"면서 "다만 사회 분위기를 받아들여 의료계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 처벌 수위 등을 고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원치않는 임신을 막기 위해 사회적으로 성에 대한 철저한 교육과 의사처방 없이 사후 피임약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이진성 기자 (jin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