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이 이야기는 강화도에 사는 7살 만복이가 아빠 차에서 토를 하면서 시작된다.”
4살 때부터 선천적 멀미증후군을 겪는 여고생이 있다. 이름은 만복(심은경). 차, 배, 비행기, 오토바이, 심지어 소를 타도 멀미를 하는 탓에 어린 시절 별명이 ‘토쟁이’였다. 그래서 만복은 매일 걷는다.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에 갈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힘들게 학교에 와서 하는 일은 자는 것뿐. 이에 담임선생님(김새벽)은 경보를 권한다. 경보가 뭔지도 모르던 만복이는 그때부터 선배 수지(박주희) 옆에서 걷기 시작한다.
영화 ‘걷기왕’은 ‘걷는 걸 잘한대’부터 ‘걷기왕’까지 네 장으로 나뉘어 펼쳐진다. 여기에 애니메이션이 곳곳에 더해져 아기자기한 한 편의 동화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여느 동화처럼, 혹은 비슷한 소재의 영화처럼 희망적이진 않다. ‘걷기왕’은 ‘열정과 꿈을 가지고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빤한 결론으로 가지 않는다. 되레 극 말미에 가서 꿈을 위해 꼭 죽도로 노력해야 하는지, 느리게 걸으면 안되는지 자문한다. 그리고 자답한다. 꿈이 없어도, 적당히 해도 괜찮다고. 그러니 좀 천천히 가라고. 따뜻한데 날카롭고 웃긴데 묵직하다. 위로가 된다.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청춘에게 추천하고 싶은 이유다.
타이틀롤 만복을 연기한 심은경의 연기도 꽤 훌륭하다. 새롭진 않지만, 안정적이다. 그는 무기력한 고등학생이 희망을 품고 좌절하고 깨닫는 과정을 탄탄하게 쌓아 올렸다. 특유의 코믹 연기로 중간중간 재미도 잘 살려냈다. 여기에 박주희 김새벽, 허정도, 윤지원, 안승균 등이 가세해 극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만복이 키우는 소순이 목소리를 연기한 안재홍은 단연컨대 최적의 캐스팅이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재기발랄한, 하지만 어딘가 엉성한(?) 음악은 ‘걷기왕’만의 또 다른 매력이다. 더욱이 이 어설픈 노래로 이야기의 강약까지 조절하는 데 그 실력이 놀랍다.
고맙게도 듣는 재미는 끝까지 이어진다. 특히 에필로그(이 역시 놓쳐서는 안된다)에 삽입된 엔딩송이 백미다. 백승화 감독이 작사하고 심은경이 직접 노래했다. 영화는 재밌게 보셨는지, 휴대전화와 지갑, 콜라와 팝콘을 잊지는 않으셨는지 귀엽게 묻는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다. 12세 이상 관람가. 오는 20일 개봉.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CGV아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