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를 퇴사한 '복면가왕'의 민철기PD와 MBC '아빠 어디가'의 김유곤PD <사진=MBC> |
[뉴스핌=이현경 기자] 지상파 PD들의 이탈이 다시 시작됐다. 지난 상반기 MBC ‘복면가왕’의 민철기PD와 ‘아빠 어디가’의 김유곤PD에 이어 최근 SBS ‘강심장’ ‘불타는 청춘’의 박상혁PD와 ‘런닝맨’의 김주형PD도 사표를 냈다. 지상파 간판 예능 PD들의 잇따른 퇴사, 도대체 왜 멈추지 않을까.
◆편성 시스템 고정적, 새로운 시도와 도전 찾아보기 힘들어
tvN 이명한 본부장은 지상파와 차별화되는 콘텐츠 생산이 tvN의 전략이라고 밝혔다. 그가 처음 tvN에 이적했을 때 그 역시 지상파와 다른 기업의 문화에 놀랐다. 실험적인 시도와 도전이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 실패할지라도 이는 교훈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 이 두가지가 tvN 내 깊게 뿌리박힌 문화였다. 이 덕에 tvN은 ‘케이블 신화’라는 명성을 얻었고 개국 10주년 맞이 페스티벌과 시상식을 거하게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지상파는 여전히 플랫폼에 의존할 뿐 차별화된 콘텐츠 생산에 힘을 못 쓰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지상파는 보도, 교양, 예능, 드라마 등 예전부터 맞춰온 편성(매뉴얼)이 있다. 지상파라는 플랫폼 자체가 케이블보다 안정적(시청률 보장)이기 때문에, 콘텐츠 생산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편성을 구분하고 프로그램이 낡으면 교체하는 식의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사실 MBC ‘무한도전’과 같이 콘텐츠만으로 평가받는 예능은 지상파에서 드물다. ‘무한도전’은 두터운 팬층을 자랑하는 예능프로그램이다. 때문에 방송사가 시청자의 반응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유일무이한 방송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상파 예능은 이야기가 다르다. 케이블에 비해 편성이 자유롭지 못하고 콘텐츠를 생산하더라도 제한이 많아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도 벅차다는 것이 방송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중장년층 겨냥한 올드한 콘텐츠 중심 배치
지상파 3사 예능 '불후의 명곡' '백년손님' '우리 결혼했어요'<사진=MBC, KBS, SBS> |
최근 몇 년 간 예능은 케이블채널이 주도적으로 트렌드를 이끌었다. 최근 화제가 되는 예능을 살펴보면 젊은 감각이 살아있는 예능이 크게 사랑받았다. tvN만 살펴봐도 두뇌를 풀가동 시키는 ‘뇌섹시대-문제적 남자’와 ‘더 지니어스’, 해외로 떠난 여행에서 청춘의 의미를 찾는 ‘꽃보다’ 시리즈, 유유자적 자급자족 생활의 의미를 전하는 ‘삼시세끼’까지. 장르를 나눌 정도의 다양한 포맷의 예능이 펼쳐졌고 시청자에 사랑받았다.
반면 지상파는 답답할 만큼 정체돼 있다. KBS 2TV ‘불후의 명곡’ SBS ‘자기야 백년손님’ MBC ‘우리 결혼했어요’ 등, 변화 없는 노래, 가족, 가상 결혼 예능이 되풀이되고 있다. 물론 지상파이기 때문에 다양한 연령대의 시청자가 볼 수 있는 프로그램, 공영성을 추구하는 프로그램이 지상파에는 편성돼야 한다. 하지만 예능PD가 구현하고 싶은 콘텐츠, 그리고 시청자가 보고 싶은 콘텐츠 발굴에 힘 쓸 겨를이 없다.
한 방송관계자에 따르면 지상파 예능은 중장년층을 겨냥한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특정 연령대에 맞춰진 케이블 채널과 달리 전 연령대를 아울러야 한다는 점에서 지상파는 다르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으나 콘텐츠로 평가받을 수 없는 환경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나이가 들면 무조건 관리직…예능PD는 현장에 남고 싶다
MBC를 퇴사한 민철기PD(위), MBC에서 tvN으로 이적한 김유곤PD(왼쪽 중간), SBS를 나온 박상혁PD, KBS에서 tvN으로 이적한 나영석PD(오른쪽 위), 신원호PD <사진=뉴시스, CJ E&M> |
방송사도 어쩔 수 없는 관료사회다. 연차가 높아지면 당연히 관리직으로 옮겨가는 것이 문화다. 방송국 PD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장에서 10년 넘게 연출자로 일한 이들은 회사의 실무 관리자의 길보다 프로듀서로서 역할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지상파PD들이 케이블로 가는 이유 중 하나가 “관리자로 남을 것이냐, 혹은 현장에서 계속 프로듀싱을 할 것이냐, 선택의 문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tvN만 봐도 지상파였다면 당연히 CP급인 나영석, 신원호PD는 여전히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두 사람이 만약 계속해서 KBS에 머물렀다면 tvN을 대표할 ‘삼시세끼’와 ‘응답하라’ 시리즈를 만들 수 있었을까. 40대인 나영석과 신원호 PD는 tvN에서 거침없는 케이블 신화를 만들었고 예능의 트렌드를 이끄는 장본인이 됐다. 지상파가 현장에서 예능을 연출하고 싶은 이들에게 관리자로서 길만 강요한다면 이 같은 인재를 놓칠 수밖에 없는 노릇은 아닐까.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