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이야기를 전개하며 인간의 신뢰를 이야기하는 '분노' <사진=영화 '분노' 스틸> |
[뉴스핌=김세혁 기자] 인간 내면의 탐구로 유명한 이상일 감독이 새 영화 ‘분노’를 선보인다. 감독은 일본 국민배우 와타나베 켄과 두 번째로 만난 신작에서 분노를 통한 사람 사이의 신뢰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난 7일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분노’는 도심서 벌어진 잔혹한 살인사건을 통해 인간의 신뢰와 그 허망함에 대해 논한다.
‘분노’는 땡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도쿄에서 벌어진 부부 살인사건을 조명하며 막이 오른다. 사건현장에서 피해자의 피로 쓴 큼지막한 글씨 ‘분노(怒り)’를 접한 수사관들은 범인의 잔혹함 이면에 자리한 무언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사건 용의자로 의심 받는 세 사내를 통해 인간 신뢰의 가벼움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오키나와의 다 부서진 집터에 은거하는 타나카 싱고(모리야마 미라이)와 떠돌이 동성애자 오니시 나오토(아야노 고), 그리고 과거가 의심되는 타시로 요헤이(마츠야마 켄이치)가 세 용의자다. 영화는 이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관심과 우정, 신뢰와 사랑이 의심과 분노로 변모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세 가지 에피소드를 전개하며 믿음의 붕괴를 보여주는 ‘분노’는 그럼에도 인간은 신뢰를 포기해선 안 된다는 명징한 메시지를 담았다. 한 사건에서 야기된 각기 다른 이야기를 뒤쫓던 관객은 용의자가 압축되는 순간 깊은 충격에 빠지는 동시에 신뢰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연기 하모니에서 극대화된다. 감독은 세 이야기에 공통된 주제를 담으면서도 각기 다른 상황을 전제해 흥미를 더한다.
딸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부 요헤이(와타나베 켄)와 그에게 의심 받는 타시로의 관계는 처음부터 신뢰보다는 의심을 깔고 시작한다. 게이바에서 만난 남남커플 후지타(츠마부키 사토시)와 나오토는 요헤이·타시로와 조금 다르다. 후지타는 처음엔 나오토를 믿지 않지만 급속도로 마음을 연다. 그러던 중, 살인사건에 대한 뉴스로 일본이 떠들썩해지자 나오토를 깊이 의심한다.
타나카 싱고와 이즈미(히로세 스즈)의 사이는 앞선 이들보다 더 복잡하다. 감독은 우연히 만나 우정을 나누는 둘의 관계를 통해 거짓으로 쌓은 신뢰의 비겁함과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정과 신뢰가 의심으로 바뀌는 과정을 통해 스멀스멀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이상일 감독의 연출에는 정말 감탄했다. 그가 빚어낸 이야기는 무척 불편하게 객석을 압박하지만, 그 역시 인간의 내면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든다.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