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행정법상 책임위반", 보험업계 "합의점 찾아야"
[뉴스핌=이지현 기자] 소멸시효(2년) 경과 자살보험금에 대해 보험사의 지급의무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금융감독당국은 여전히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합의점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30일 대법원은 교보생명이 보험계약 수익자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청구기간(2년)이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교보생명뿐 아니라 아직 소멸시효 경과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등 7개 보험사에 모두 적용된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보험사의 지급의무 범위에 대한 기준은 마련됐지만, 자살보험금 지급 논란을 둘러싼 금융감독당국과 보험업계의 이견은 여전하다.
권순찬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지난 5월 "보험회사가 약속한 보험금은 반드시 정당하게 지급되어야 한다"며 자살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금감원의 입장을 전달하는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감독원> |
금감원 측은 보험금 수익자가 정당하게 보험금을 청구했음에도 이를 정당하게 지급하지 않은 것 자체가 보험업법상 기초서류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고있다. 따라서 대법원의 판결과 관계없이 금감원이 행정적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서태종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30일 뉴스핌과 전화통화에서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금융감독원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이라고 해도 지급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다"고 강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민사상 판결과 관계 없이 감독당국의 역할은 책임위반을 한 보험사들에 행정적 제재를 하는 것"이라며 "보험사들은 당연히 책임 이행을 위해 소멸시효 경과와 관계없이 미지급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업계에서는 대법원의 뜻을 환영하면서도 금감원과의 이견 조율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소멸시효에 따른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의무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사법부의 판단이 났기 때문에 이에 따라 앞으로 논의를 계속 하며 합의점을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한 자세한 판결문을 봐야 보험사들의 입장이 정리될 것"이라며 "이번 판결로 오히려 어려운 시험지를 받은 것 같다. 사안이 워낙 복잡한데다 고민할 변수도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지난 5월 소멸시효 경과 자살보험금과 관련해 보험사가 지급하지 않은 보험금 규모가 2003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후 삼성·한화·교보 등 대형 보험사를 시작으로 개별 보험사에 대한 검사를 통해 미지급 자살보험금 규모를 파악하고 있다.
지난 6월까지 파악된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의 소멸시효 경과 자살보험금 미지급금 규모는 각각 1585억원, 1134억원 규모였다.
[뉴스핌 Newspim] 이지현 기자 (jh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