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김세혁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조재현(51)의 감독 데뷔작 ‘나홀로 휴가’는 여성들에게 좀 불편하게 다가온다. 불륜을 다룬 데다, 10년이나 연인을 잊지 못하는 40대 남자 강재의 집착을 담았기에 그렇다. 더욱이 강재는 다들 부러워하는 이른바 모범남편. 영화를 접한 대다수 여자들은 내 남편도 저러면 어쩌나 쓴웃음을 짓는다. 40~50대 가장의 외로움을 표현했다는 조재현 스스로도 여자들 중 3할 정도만 강재를 이해하리라 예상했을 정도다.
배우 윤주(27)와 마주하고 가장 먼저 궁금한 게 여자로서 영화에 대한 감상이었다. 윤주는 ‘나홀로 휴가’에서 강재(박혁권)에 끌려 불륜을 저지르는 20대 요가강사 시연을 열연했다. GV 당시에야 연기자가 아닌 관객 입장에서 영화를 봤다는 그는 강재를 어쩐지 이해하게 됐다며 웃었다.
“전 시나리오를 접할 때, 영화를 보고난 뒤, 그리고 관객 반응을 들을 때 작품에 대한 생각이 각각 달라요. 첨엔 남편이 강재처럼 그러면 어떨까 되게 찝찝했죠. 진저리치는 사람들 반응이 이해가 됐고요.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강재가 살짝 이해가 되던데요? 남자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가 좀 와 닿았죠. 불륜을 저지른 건 둘인데 굳이 하나만 욕할 것 있나 싶고요.”
2012년 영화 ‘나쁜 피’로 데뷔한 윤주는 늘 학대받고 상처 입을까 두려워하는 여자를 연기했다. 그러다 ‘나홀로 휴가’에 이르러 비로소 사랑을 마음껏 받아봤다. 비록 상대가 스토커일지언정, 처음으로 사랑받는 연기에 정말 기쁘고 편했다.
“시연은 나쁜 남자만 만나본 캐릭터에요. 심적으로 힘들어하던 차에 강재가 기댈 수 있는 존재로 다가왔죠. 아빠처럼 포용력 있는 그에게 완전히 빠져들어요. 저야 뭐 할 게 없더라고요. 박혁권 선배가 다 해주니까요. 이전엔 매번 감정을 잡고 아픔을 꾹꾹 누르고 긴장하는 역할만 맡았죠. 정말 편해서 그런지 처음엔 멍하고 당황스러웠어요.”
윤주는 비록 강재와 시연의 시작은 일탈이었으나, 2년이 넘는 시간을 만나면서 점차 진짜 연정이 쌓였으리라 말했다. 시연 입장에선 너무 사랑에 빠진 나머지 ‘이 사람과 미래가 없다’ 깨달았을 때 허무했을 거라고도 했다. 현실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시연의 본심을 윤주는 어떤 심정으로 표현했을까.
“강재를 놓아준 시연의 본심은 미래에 대한 절망이었을 거예요. 감독님이 구상만 하고 넣지 않은 장면이 있어요. 시연이가 집에서 양치질을 하다 강재 아내에게 전화를 받죠. ‘내 남편 곁에서 사라져주세요’란 말과 함께요. 시연이 만약 그런 전화를 받았더라면 비로소 강재의 가정을 살갗으로 느꼈을 거예요. ‘이게 불륜이구나’ ‘내가 불륜녀구나’ 하고요. 그리고 강재를 떠났겠죠.”
언론시사회 당시에도 언급했듯 윤주는 ‘나홀로 휴가’에 참여하기 위해 가장 먼저 오디션을 봤다. 조재현 감독은 그에게 붙었다 떨어졌다 확답을 하지 않고 여러 번 불러 재차 시험을 치렀다. 당시엔 피를 말리는 심정이었지만 돌아보니 그게 다 공부였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감독님이 쓴 내용이 거칠고 좀 어렵더라고요. 헷갈리는 부분도 있고요. 호기심이 커지다 보니 오디션을 봐야겠다 싶었죠. 그리고는 한 달 정도 기다린 듯해요. 중간에 세 번을 부르셨고 계속 수업을 받는 느낌이 들었죠. 몰입해서 운 적도 있는 걸요. 마지막에 연락이 왔을 땐 ‘위로주라도 사주려나보다’ 완전 포기하고 갔죠. 그날 됐다는 통보를 받았어요.”
선배 연기자 박혁권과 에피소드도 빠질 수 없는 이야기다. 무기력한 표정으로 시연의 곁을 맴도는 박혁권의 연기는 윤주와 기막힌 하모니를 보여준다. 윤주는 박혁권이 곧 강재 캐릭터일 만큼 닮았다며 칭찬했다.
“선배는 강재랑 정말 잘 어울렸어요. 제가 시연에 쉽게 감정이입할 정도로요. 포스터에 나온 장면만 봐도 안쓰러웠어요. 잊지 못하는 여자를 뒤로 하고 터벅터벅 걷는 뒷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할 말을 잊어버릴 거예요. 선배는 눈물도 잘 흘려요. 눈물이 강재와 잘 맞다 생각해서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표정 안에 눈물이 맺혀있었죠. 신기했어요.”
작품을 끝내고 휴식이 찾아오면 윤주는 평범한 20대로 돌아간다. 친구들 만나 수다도 떨고 기분 좋은 날엔 술도 한잔 마신다. 영화나 책을 보며 작품 속 캐릭터에 푹 빠지는 것도 윤주의 일상 속 풍경이다.
“술은 기분 좋을 때만 마셔요. 안 그러면 무너지더라고요. 꿀꿀한데 술이 당길 땐 칵테일 한 잔 정도? 평소엔 영화나 책을 많이 보는 편이에요. 직업상 특성일 수 있겠죠. 고등학교 때 처음 읽고 충격을 받은 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을 적극 추천해요. 지금도 읽는 책이고, 접할 때마다 느끼는 바가 달라서 좋아요.”
아직 미혼인 윤주에게 결혼과 부부, 불륜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물었다. 물론, 작품 속 시연이 아닌 윤주로서 말이다. 결혼해서 남자가 바람을 피우면 어떨 것 같으냐는 이야기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여자는 항상 결혼,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편이에요. 시연 같은 상황에 노출될 수 있음을 늘 고려하는 게 여자죠. 그걸 ‘나홀로 휴가’가 콕 찔러 줬을 뿐이고요. 여자와 남자는 다르지 않아요. 연애를 해도 싫증이 나는 게 사람인데 결혼을 한다고 달라질까요. 그리고 남자만 뭐라고 할 수 있나 싶어요. 저요? 나중에 제 남자가 바람을 안 피우면 고맙겠지만, 안 그러리라는 보장은 못해요. 저도 모르는 거죠. 하지만 전 참을 거예요.”
워낙 해석이 제각각인 영화라 그럴까.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나홀로 휴가’에 대한 정의를 부탁했다. 잠시 고민하던 윤주가 내놓은 답은 투명한 유리상자였다.
“안에 갇히면 밖으로 못 나오는 유리상자 같아요. 바깥에선 안이 훤히 보이지만 정작 저는 깨고 나갈 수 없는 공간이죠. 인간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 영화는 서로의 생각과 관계를 이야기한다고 봐요. 모쪼록 저희 영화는 커플이나 부부가 함께 봤으면 좋겠어요. 영화를 보고 서로 뭘 느꼈는지 터놓고 대화했으면 해요. 그런 과정을 통해 관계가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전 다른 작품에서도 객석에 대화거리를 주는 배우이고 싶어요. 제 말과 몸짓, 작품이 사람들의 교류를 만드는 것, 그런 배우가 되는 게 꿈이죠.”
[뉴스핌 Newspim] 글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 (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