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째 이어진 한국 기초과학 발전 71년사, 국가적 희망으로 '성큼'
[뉴스핌=전지현 기자]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기초과학에 대한 ‘열정’과 ‘애정’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창립주인 서성환 선대회장 뒤를 이어 2대째 한국기초과학 발전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 ‘부자(父子)’의 아름다운 행보가 한국 기초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을 향한 시계추를 앞당겼다는 기대를 안기며 한층 밝은 미래의 지평을 열었다는 분위기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 회장은 최근 한국 과학발전에 기여할 기초 과학자 양성의 꿈을 실현하는 첫 단추를 꿰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서 회장은 지난 1일, 사재 3000억원을 출연해 '서경배 과학재단'을 설립했다.
<사진=아모레퍼시픽. 서성환 선대회장(좌), 서경배 회장(우)> |
이 재단은 기업인이 개인 출연금으로 세운 한국의 첫 기초과학재단이다. 생명과학분야에서 새 연구를 개척하는 국내외 한국인 연구자를 대상으로 과제당 5년 기준 최대 25억원 연구비를 지원한다. 장기과제에 대해선 30년까지 후원한다. 향후 서 회장은 ‘서경배 과학재단’ 규모를 1조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서경배 과학재단' 이름부터도 서 회장의 무한책임을 담았다. 재단이 잘못되면 이름에 먹칠하기 때문에 빠져나갈 구멍을 없앤다는 의도에서 재단명에 이름을 넣었다는 것이 서 회장의 설명이다.
▲기초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일본 21vs한국 0'
재계 호사가들은 서 회장이 ‘연봉킹’에 ‘주식 부자’로 손꼽히지만 3000억원이라는 금액을 쾌척하는 것이 사실상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는 데 입을 모은다. 서 회장의 올 상반기 보수는 7억9800만원. 최근 3년의 보수액을 합치면 총 101억1278만원으로 재단 지원금의 30분의 1에 그친다는 이유에서다.
개인 지원으로는 막대한 규모의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서 회장이 이 같은 결단을 내린데는 기초과학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주효했다.
서 회장은 지난 1일 진행된 재단설립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인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소명을 이루는 삶을 항상 마음속에 꿈꿨다”며 “너무 늦기 전에 최초의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보는 것이 희망이다. 혼자 시작했지만 뜻이 같이하는 사람이 모이면 10~20년 가는 재단이 아닌 50년, 100년간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국내 기초 과학현실은 참담할 정도로 미약하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지난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이래 지난해까지 기초과학 분야에서만 21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됐다. 중국도 지난해 생리의학으로 첫 수상자를 탄생시켰지만 현재까지 국내 노벨상 수상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을 제외하곤 전무한 상태.
한국은 기초과학 연구기간이 짧고 투자를 등한시한다는게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서경배 과학재단’ 출범으로 향후 기초과학분야 발전에 ‘청신호’가 켜졌다. 특히 생명과학분야 인재를 집중 지원하면서 미래 신수종사업인 바이오헬스분야의 기대가 높아졌다. 서 회장은 노벨과학상을 받는 한국인이 나오는데 20년, 30년이 걸리더라도 장기간 지원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2대째 이어진 기술 중시 '부자 열정'
특히, 서 회장의 결단은 서성환 선대회장 때부터 2대째 이어온 과학기술에 대한 ‘부자(父子)의 애정과 열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모은다. 서 선대회장은 한국 화장품업계 연구가 전무한 시절에도 업계 최초로 연구실을 만들 만큼 기술에 관심을 쏟았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술 중시’ 유산을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기초과학 연구로 승계된 셈이다.
지난 1973년 ‘선데이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서 창립주는 “판매보다 기술 개발에 더 힘을 쏟아 소비자가 제품을 신뢰하기 때문”이라며 좋은 제품으로 소비자 신뢰를 얻겠다는 기업가정신을 피력한 바 있다.
이 같은 신념 하에 서 선대회장은 1954년 장업계 최초로 6.6㎡(2평) 남짓한 공간의 연구실을 개설했고 1957년에는 연구원을 독일로 유학 보내 선진 유럽의 생산시설과 원료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며 유럽의 최신 설비를 수입했다. 이어 1962에는 연구만이 살 길이라는 판단하에 영등포에 건평 7934㎡ 규모의 공장을 지었고 1978년에는 외국 화장품 회사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 규모와 설비를 갖춘 태평양 기술연구소도 설립했다.
서 회장의 재단 설립은 부친 서 선대회장이 세운 회사를 수성을 넘어 아모레퍼시픽을 글로벌 기업으로 끌어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 선대회장은 2003년 타계할 때까지 60여년간 국내 화장품 업계를 이끌며 K뷰티 초석을 마련했다면 아버지 정신을 이어받은 아들은 한국 미래과학에 대한 ‘희망’에 더해 존경받는 기업인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재계가 3세, 4세시대로 접어들면서 나눔과 배려, 사회공헌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며 “서회장의 재단출연은 한국의 미래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인들의 사회공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전지현 기자 (cjh7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