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 이정출(송강호)은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의 뒤를 캐라는 특명을 받는다. 이에 이정출은 의열단 리더 김우진(공유)에게 접근한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서로의 정체와 의도를 알면서도 속내를 감춘 채 가까워진다. 하지만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는 자꾸 새어나가고 누가 밀정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 폭탄 운반 작전이 시작된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 이후 6년 만에 돌아온 김지운 감독이 이번엔 1920년대 일제강점기와 의열단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신작 ‘밀정’은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 일제의 주요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그렸다.
콜드 누와르 장르르 표방한 김지운 감독은 가장 뜨거운 시대, 가장 뜨겁게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리도록 차갑고 건조하게 담았다. 물론 충무로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이자 비주얼리스트답게 오프닝부터 엔딩 시퀀스까지, 그가 스크린에 펼쳐낸 영상들은 하나같이 감각적이다. 음악, 미술, 카메라 구도까지도 그냥 넘어간 게 없다. 그간 일제시대를 소재로 한 영화들과 달리 리드미컬하고 화려한 느낌이다.
다만 문제는 이 아름다운 장면들에 긴장감이 없다. 서사가 너무 느슨하고 빈약한 탓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개연성이 부족하다. 각 캐릭터의 선택과 그 행동을 이해할 근거는 부족하고 빠르게 뒤바뀌는 결과(특히 이정출 장면에서 그렇다)만 떠다닌다. 영화 안에 녹아야 할 최소한의 배경도 오로지 관객의 해석에 맡긴 모양새. 감정 이입이 쉽지 않다. 당연히 김지운 감독의 깊이 있는 시선을 읽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 관객이 스크린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는 송강호라는 엄청난 무기에 있다. 이정출의 내면부터 시대 분위기까지 완벽히 그려낸 송강호의 정교한 연기는 영화 곳곳의 빈틈을 빠짐없이 메웠다. 게다가 송강호 특유의 말투와 표정으로 적잖은 재미도 챙겼다. 김우진 역의 공유 역시 또 한 번 강렬한 열연을 펼쳤다. 캐릭터 자체에는 아쉬움이 남지만, 공유의 또 다른 얼굴임에는 확실하다.
송강호도 칭찬을 아끼지 않은 하시모토 역의 엄태구는 이 영화로 빛을 발했다. 송강호에게 밀리지 않는 것도 놀라운데 기어이 제 색깔까지 낸다. ‘밀정’의 최대 수확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박희순과 이병헌. 최근 톱스타들의 특별출연이 잇따르고 있지만, 단언컨대 비교 불가다. 주연이라고 해도 손색없는 이병헌은 물론, 박희순 역시 ‘완벽한’ 성공이다. 이들은 극의 흐름을 흩트리지 않은 선에서 최고의 존재감을 발휘했다.
덧붙이자면, 이병헌이 연기한 정채산은 실존 인물인 독립운동가 김원봉을 모티브로 했다. 김원봉은 영화 ‘암살’(2015)에서 조승우가 맡았던 역할이다. 내달 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