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드라마로 주목을 받은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굿 와이프' '시그널' '38사기동대' <사진=CJ E&M> |
[뉴스핌=이현경 기자] 병원에서 혹은 법정에서, 학교에서도 연애만하는 기승전로코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짜임새 있는 구성과 영화를 방불케 하는 영상미, 블록버스터급 소재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드라마들이 안방을 점령했다.
영화 같은 드라마들의 대표주자는 최근 tvN에서 방영한 ‘시그널’과 ‘디어 마이 프렌즈’ 그리고 현재 방송 중인 ‘굿와이프’와 OCN ‘38사기동대’다. 스크린을 안방으로 옮겨놓은 듯한 이 작품들은 줄줄이 시청자에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시청자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영화 같은 드라마,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스크린에서 안방으로 건너온 김혜수‧전도연의 아우라
'시그널'에 출연한 김혜수(오른쪽 위), '굿 와이프'의 전도연(왼쪽) '디어 마이 프렌즈'의 고현정 <사진=CJ E&M> |
무엇보다 영화계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 브라운관으로 넘어올 때 그 파급력은 상당하다. 이름만으로도 느껴지는 존재감에 TV 속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명연기는 단번에 몰입도를 높이는 효과를 준다. tvN은 신하균, 김혜수, 고현정, 전도연, 유지태를, OCN은 마동석을 주연으로 내세웠다. 지상파 드라마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연기파 배우들의 등장만으로도 작품의 무게감은 달라진다.
특히 김혜수는 톱스타답게 통 큰 배려로도 화제가 됐다. 그는 차수현의 분량보다 전체적인 극에 더 힘을 실어달라고 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시그널’을 연출한 김원석 감독은 김혜수의 이런 면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 바 있다.
‘디어 마이 프렌즈’의 고현정도 압도적이었다. 미혼의 프리랜서 작가 완을 연기한 고현정은 친구 같은 엄마를 둔 딸, 자신에게 프러포즈하다 다리를 잃은 남자친구 연하(조인성)에 대한 아픔, 여러 이모를 챙겨야 하는 일상을 세밀하게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칸의 여왕’ 전도연도 tvN의 문을 두드렸다. ‘굿와이프’에서 성 스캔들에 휩싸인 남편을 대신해 가계를 책임지는 김혜경 역을 맡은 그는 변론부터 남편 이태준(유지태)과 동료 서중원(윤계상)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연기로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원작이 있는 드라마임에도 전도연은 티 하나 없이 말끔하게 자신의 스타일로 김혜경을 완성했다. 단순한 대사도 예사롭지 않게 처리하는 힘에 시청자들의 찬사가 쏟아진다. ‘굿 와이프’를 연출하는 이정효 감독 역시 “극중 배우들 덕에 '굿와이프'가 영화같은 드라마로 불리는게 아닌가 싶다”고 답했다.
◆스릴러‧법정‧사기극까지…로코천지 거부하는 다양한 장르의 힘
'38사기동대' 백성일 역의 마동석과 양정도역의 서인국(위 왼쪽), '시그널' 박해영(이제훈)과 차수현(김혜수), '굿 와이프'의 전도연과 유지태(오른쪽 아래), '디어 마이 프렌즈'의 배우들 <사진=CJ E&M> |
한국영화가 1000만 시대를 연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자연히 한국영화를 향한 국내외의 시선도 이전과 달라졌다. ‘명량’과 ‘대호’로 대한민국 CG기술은 높이 평가받았고 영화 ‘부산행’은 코리안 좀비물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보여줬다. 당연히 그사이, 국내 관객과 시청자들의 수준도 덩달아 높아졌다.
지금껏 TV드라마는 로맨스 혹은 가족극으로 쏠린 상황이었다. 웰메이드형 스릴러와 범죄물은 대중적이기보다 마니아적 콘텐츠에 가까웠다. 대부분 엉성한 스토리와 영상미가 시청자들의 눈을 찌푸리게 했다. 이 때문에 좀비물, 수사물, 범죄물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미국드라마에 특정 장르물을 좋아하는 시청자의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스릴러와 범죄물에 강한 미국드라마를 즐겨보는 시청자에게 tvN은 ‘시그널’과 OCN의 ‘나쁜 녀석들’ 그리고 ‘38사기동대’는 질 좋은 콘텐츠로 다가왔다. ‘굿와이프’는 동명 미국 드라마의 판권을 사들이면서 볼거리를 충족시켰다. 법정물에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 가정과 남녀의 갈등, 부패한 사회문제까지 수면 위로 올려 긴장감을 선사했다.
‘38사기동대’는 국내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세금 관련 사기극을 담은 드라마다. 세금 사기를 소재로 한 한국드라마는 ‘38사기동대’가 유일하다. ‘38사기동대’를 집필한 한정훈 작가는 틀에서 벗어난 이야기에 주력하는 편. 그는 박호식CP가 사기꾼이 세금을 거두기 위해 사기 치는 인물들을 그려보자는 재미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통쾌한 사기극을 만들었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일상 속 잔잔한 이야기로 정곡을 찌른 드라마로 평가받는다. 특히 노년의 이야기가 공감대를 형성한 뜻깊은 드라마였다. ‘러블리 스틸’과 같이 영화에서나 노년의 이야기를 짧고 임팩트 있게 다룰 수 있지만 16부작 드라마를 노년 이야기로만 채운다는 건 시청자에게도 부담이었다. 그럼에도 ‘디어 마이 프렌즈’는 죽음과 맞닿아 있는 노년기의 인물들, 그리고 이에 대한 자식과 부모의 솔직한 마음을 신랄하게 담으며 사랑받았다.
◆사전제작 시스템 도입·빠른 원고 작업…영화 같은 영상미 압권
대개 드라마는 시놉시스를 받고 촬영에 들어가기까지 2주 정도밖에 준비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반면 영화의 촬영 기간은 약 2~3개월. 밤샘 촬영이 많고 생방송 수준으로 고된 드라마와 달리 영화 작업 현장은 보다 유연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소품, 촬영 진행, 배우팀의 준비를 철저히 하기에 고퀄리티를 보장하는 작품이 나오기가 드라마보다 수월하다.
이런 드라마 특유의 고충이 반영된 것일까. 최근에는 드라마 환경도 사전제작 혹은 반사전제작이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는 모양새다. 실제로 ‘나쁜 녀석들’ ‘38사기동대’도 반사전제작으로 진행돼 초반 시청자의 시선을 잡는데 성공했다.
빠른 원고 작업이 가능해지면서 드라마의 완성도도 높아졌다. ‘디어 마이 프렌즈’의 경우 노희경 작가가 첫 촬영 후 2개월 만에 대본 집필을 마쳤다. 드라마계에서 이같은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이런 시스템이 정착된다면 배우와 촬영진도 시간여유가 생겨 작품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감독의 연출 역시 영화같은 드라마를 만드는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배우 유지태는 드라마 ‘굿 와이프’에 ‘영화 같은 드라마’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에 대해 “보통 드라마는 A팀과 B팀으로 나눠 찍는데 우리 드라마는 A팀으로만 진행된다. 감독의 수고가 큰 편”이라고 이정효 감독의 노고를 높이 샀다.
여기에 ‘응답하라 1994’와 ‘응답하라 1988’ ‘괜찮아 사랑이야’를 담당한 서명혜 미술감독이 인물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담백한 공간구성을 하는 데 신경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최근 드라마들은 색보정 후반작업 D.I(Digital Intermediate)을 통해 영화처럼 깨끗한 고화질 장면을 선보여 작품의 몰입을 돕고 있다.
이와 관련, 이정효 감독은 “특별한 연출법은 없다. 드라마 시작할 때 시그널 부분에 신경을 쓴다. 미국 원작의 느낌을 많이 담는다”면서도 “영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2.35:1 화면비율을 설정한 것이 영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포인트”라고 꼽았다. 카메라 촬영 기법에도 힘을 줬다. 흔들림을 줄 때는 스테디캠을, 사건 관련 장면에서는 틸트 쉬프트 효과를 줘 화면을 심도있게 표현했다.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