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압병실 등 시설투자에 집중, 병원 부담만 증가
[세종=뉴스핌 이진성 기자] 정부가 상급종합병원(중증질환에 대해 난도가 높은 의료행위를 전문으로 하는 종합병원)에 대한 감염관리 및 의료질을 높이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가장 시급해 보이는 관리·감독방안은 빠져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의료사고가 대부분 부족한 인력과 평상시 잘못된 관행 등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료진을 보강하거나 의료기관을 수시 감독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한 데 이 같은 내용은 빠지고 시설투자 등에만 집중된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이번 방안은 의료기관에 설비 투자 비용 부담만 가중시켜, 의료비 증가를 부추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7일 보건복지부는 상급종합병원의 감염관리 및 의료질 강화를 위한 목적으로 음압격리병실 구비 의무화와 병문화 개선을 위한 보안인력 지정·배치 등에 내용을 담아 입법예고했다.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와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의료사고 등을 계기로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그동안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서 지적돼 온 의료기관에 대한 관리 감독방안은 빠졌다. 이번에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을 살펴보면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음압격리병실을 300병상에 1개 및 추가 100병상 당 1개 설치 ▲병문안객 통제시설을 설치하고 보안인력 지정·배치 ▲상급종합병원과 의원·종합병원 등과 환자 의뢰·회송 체계 갖출 것 ▲병상증설 시 복지부와 사전협의 의무화 ▲중증 및 고난이도 질환 치료 능력 등 5개 영역 평가 ▲실습간호대학생 교육기능 의무화 ▲전문진료질병군 진료 비중 기준 강화 등이다.
의료기관에 시설 등을 강화하는 조치가 대부분이다. 최근 반복되는 의료사고는 대부분 의료진의 신중하지 못한 의료행위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약물을 잘못 투여하거나, 환자를 방치한 경우 등이다. 이 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원인으로는 부족한 의료인력이 꼽힌다.
실제 OECD 건강정보통계(Health Data)에 따르면 국내 임상의사는 2013년 기준 인구 1000명당 2.2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 3.2명에 미치지 못한다. 의대(한의대 포함) 졸업자수도 인구 10만명당 8.0명으로 회원국 평균 11.2명에 미달된다.
반면 병원 병상수는 인구 1000명당 11병상으로 OECD평균(4.8병상)보다 2.3배나 많고, CT스캐너와 MRI장비 등 최신 의료기기 보유대수도 인구 100만명당 각각 37.7대와 24.5대로 모두 OECD 평균을 크게 앞지른다. CT스캐너의 OECD평균 보유대수는 24.8대며, MRI장비는 14.3대다. 즉 의료진은 부족한 상황에서 의료기관의 규모 및 시설만 늘려온 셈이다.
지난해 정치권에서는 복지부 평가인증을 받은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의료사고가 57건이나 발생한 곳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의료사고가 발생한 인천의 한 상급종합병원의 사례는 의료진이 잘못된 주사를 놓으면서 사망한 경우다.
궤양방지용 약물을 투여했어야 했지만, 간호사의 실수로 근육이완제를 놓은 것이다. 복지부 평가인증이 정확히 이뤄지고, 사후 감독(수시 검사 등)이 뒷받침됐다면 궤양방지용 약물과 근육이완제가 헷갈릴 수 있는 장소에 보관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복지부의 이번 상급종합병원 기준 강화방안은, 의료기관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 시설투자를 확대하라는 방안으로 압축된다. 의료의 질을 높이겠다면서 부족한 의료진 확보와 평상시 의료 서비스 관리 등 환자 안전을 위한 본질적인 대책은 빠진 셈이다.
복지부 방안대로 의료기관이 시설 확보에 자금을 들이면, 결국 그 부담은 환자에게 돌아온다. 설비 투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현 시스템에서 지적되고 있는 의료기관의 평시 관리 방안이 더 시급해 보인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복지부에서 인증을 받을 때와 다르게 평상시 의료환경에선 규정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 최근 의료사고 등에서 증명되고 있다"면서 "설비투자도 중요하지만 의료기관이 평시에도 인증 때의 의료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방안이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방안은 그동안 허점이 노출된 상급종합병원의 시스템을 제대로 갖춰보자는 과정으로 보면 된다"면서 "평시에도 의료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진성 기자 (jin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