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흔히 보이는 것들로 뫼비우스적, 그 이상의 상상 여행을 하려 한다. 주변의 사물들엔 저마다 독특한 내력이 숨어 있고 어떻게 빚느냐에 따라 보석이 되기도 하고 나침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출발한 여행의 과정에 어떤 빛깔의 풍경이 나타날지, 그 끝이 어디까지 다다를지 필자 자신도 설레인다. 인문학의 시대라고 하는데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메타적 성찰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사물과 풍경, 시대와 인문을 두루 관통하면서 색다르면서도 유익한 여행을 떠나려 한다.
눈을 떴지만 울적한 마음이 들어 선뜻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어젯밤까지 나를 괴롭히던 문제가 침대 위에 먹구름처럼 떠서 짓누르는 것 같았다. 머리맡엔 노트와 볼펜이 놓여 있었다. 꿈결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기 위한 것인데 볼펜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장난끼가 동했다.
침대 위에 엎드린 채 볼펜을 손에 들고 요모조모 뜯어보다가 상단부를 잡고 하단부를 돌려나갔다. 위 아래를 분리하고 볼펜심을 빼내 노트 위에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그러다가 이런 모양이 되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생각이 떠올랐다.
‘침몰 중. 해저에 닿으면 무엇이 될까.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으니 나는 무슨 그림으로 번져나가 생성되려나.‘
내 마음이 반영된 문장일 것이다. 울적한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었다. 장난끼가 더욱 도져 노트를 90도 왼쪽으로 돌려 보았다.
그러자 이런 모양이 되었다. 보자마자 문장이 꿈틀거렸다.
‘이것은 나의 권총이다.’
생각이 이어졌다.‘나의 권총엔 사랑과 진실과 서정이 장전되어 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린 것들일 것이다. 기분이 사뭇 달아올라 90도 왼쪽으로 또 돌렸다.
‘이것은 우주의 가장 깊은 비밀을 찾아 떠나는 나의 우주선이다.’
마음이 한결 즐거워져 천장을 바라보며 침대에 반듯하게 누웠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염없이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몇 차례의 허접한 장난질을 통해 우주를 향해 비상하게 된 것이다. 숨을 한번 고르고 90 도 왼쪽으로 마저 돌렸다.
아무런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실망스러웠다. 멍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볼펜이다.’
의미와 물자체. 그 사이에 펼쳐진 무한한 스펙트럼. 나는 그것을 아코디언 삼아 연주하고 싶다. 저녁 노을 속 거리의 악사처럼.
볼펜 한 자루의 생각. 볼펜 한 자루의 기쁨.
중년의 남자가 평일 아침에 침대에서 빈둥거리는 걸 보면 남들은 한심하게 여길 것이다. 대수롭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무슨 큰 발견이나 한 듯 과장을 떠는 꼴이 우스꽝스럽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뭐라도 된 듯한 기운이 생겨났다. 어둠 속에 울적하게 웅크리고 있던 조금 전의 내가 아니었다. 눈 앞의 볼펜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볼펜은 볼펜 이상이었다.
상상력의 시대라고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상상력은 소비의 차원에 머무르는 경향이 크다. 하루가 멀다하고 빼어난 상상력의 제품들과 소설,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다. 그런 상상력의 홍수 속에 살다보니 좋은 면도 많겠지만 익사의 우려 역시 크다. 남들이 만들어 제공하는 화려한 상상력의 성 안에서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상상력과 그에 결부된 창조는 거대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곳, 바로 우리의 소박한 둘레가 그 멋진 토양일 것이다. 울적하거나 뭔가 막혀 답답해지면 주변에 눈에 뜨이는 아무 것이나 돌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볼펜을 돌려도 좋고 상황을 돌려도 좋고 읽고 있는 신문이나 보고 있는 뉴스를 다른 각도로 돌려서 보고 들어도 좋다. 나는 오늘 아침 이러한 깨달음을 내게 준 낡은 볼펜을 조립해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