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연순 기자] 7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17일 경기 하남시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김재순 전 국회의장 |
고인은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공립상업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뒤 1954년 민주당 선전차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강원 철원과 화천 등을 지역구로 제 5ㆍ6ㆍ7ㆍ8ㆍ9ㆍ13ㆍ14대(7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여소야대 정국이었던 13대 국회에서 여당인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전반기(1988∼1990년) 국회의장을 역임한 정치권의 거목이다.
지난 1988년 5월30일 13대 국회 개원식에서 고인은 '정치의 황금분할'이라는 말을 남겼다. "정당별 의석분포가 두려움을 느낄만큼 신비스럽다. 과반수를 차지하는 다수당이 없는 가운데 4당 병립의 새로운 정치판도를 등장시켰다. 정치권력의 독선과 아집을 버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고, 대화와 타협을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게 주요 골자다.
고인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자당 고문을 지내며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사석에서는 YS와 막역한 친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YS 집권 직후 공직자 재산공개 때 재산축소 신고 논란에 휩싸이며 '토사구팽'(兎死狗烹ㆍ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이란 말을 남기고 1993년 정계를 떠났다. 한동안 정치권에 거리를 두던 김 전 의장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후보를 돕기 위해 한나라당 상임고문을 맡았다.
또한 한일의원연맹 회장, 서울대 총동창회장, 한국 대학동창회 협의회장, 통일고문회의장 등을 지냈고, 1970년 교양지 ‘샘터’를 창간하는 등 다방면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샘터는 1965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를 준비하면서 만난 기능인들이 학교를 다니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하며 만든 것으로, 그는 정계 은퇴 이후 최근까지도 샘터 고문으로 일해왔다.
유족은 부인 이용자씨와 아들 성진ㆍ성린ㆍ성봉ㆍ성구 씨 등 4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5일간 장례를 치른 뒤 21일 발인할 예정이다.
[뉴스핌 Newspim] 김연순 기자 (y2ki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