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종달 골프전문기자]통산 4승의 최진호(현대제철)가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코리안 투어의 주축 선수로 우뚝섰다.
하지만 그의 골프인생은 가시밭길이었다. 국가대표를 거쳐 유망주로 꼽혔다. 이때 그에게 찾아온 것은 드라이버 입스(Yips : 샷에 대한 불안 증세). 한 시즌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컷오프됐다. 프로골퍼에게 컷오프가 뭘 뜻하는 지 알 것이다. ‘무일푼’이다.
최진호 <사진= 현대제철> |
◇ 롤러스케이트 선수에서 골프 선수로 전향
그는 광운초등학교 재학시절 롤러스케이트 선수로 활동했다. 운동 삼아 롤러스케이트부에 가입했는데 참가한 시합마다 좋은 성적을 냈다. 롤러스케이트와 함께 하던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우연히 아버지를 따라 골프연습장에 갔다가 골프를 처음 접하고 골프의 매력에 빠졌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와 학업을 병행하기 위해 뉴질랜드에 갔다. 너무 이른 나이여서 10개월 정도만 있다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 때부터 골프 선수의 꿈을 갖고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그는 중학교 진학 후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되는 등 국가대표를 거치는 동안 크고 작은 대회에서 10승을 거두며 유망주로 꼽혔다.
◇ 2005년 투어 데뷔, 2006년 명출상(신인상) 수상 영예
2004년 KPGA 프로(준회원)와 투어프로(정회원) 자격을 잇달아 취득한 그는 2005년 KPGA 코리안 투어에 데뷔했다. 데뷔 첫 해 그는 14개 대회 중 12개 대회에서 본선 진출에 성공하며 꾸준한 모습을 보였다. 이듬해인 2006년, 기다리던 첫 우승이 다가왔다. ‘비발디파크 오픈’ 에서 대회 기간 내내 상위권을 지키다 데뷔 첫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또한 상금순위 8위에 오르는 활약으로 그 해 명출상(신인상)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현재 명출상 수상의 대상자는 ‘투어 데뷔한 연도’ 로 한정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협회 입문 3년 이내 선수’ 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2004년 KPGA에 입문한 그는 2006년 명출상 수상이 가능했다.
그는 “기다리던 첫 우승과 함께 최고의 신인상까지 받아 자신감이 최고였던 때였다. 또한 언론과 기업들로부터 관심을 받으면서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었고 더 많은 우승을 하고 싶었던 시기였다” 고 했다.
◇드라이버 입스로 찾아온 위기, 스스로 극복해
2007년 준우승 1회, 3위 1회 등 톱10에 4번 이름을 올리며 상금순위 17위로 마친 그는 2008년 참가한 15개 대회에서 단 한차례도 본선진출에 성공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었다. 미 PGA투어 진출을 위해 무리해서 거리를 늘리려 스윙을 바꾼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몸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술적인 부분만 바꾸려다 보니 전체적인 밸런스가 흔들렸다. 그 중에서도 드라이버 샷이 가장 큰 문제였다. 샷의 정확성도가 떨어지니까 심리적으로 쫓기게 되고 스트레스도 심했다”며 “주변에서는 군대에 다녀오라고 권하기도 했지만 그런 상황에서 군에 가면 나중에 달라지는 것 없이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올 것 같아 우선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자고 생각했다. 군대는 최고의 자리에서 가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의 선택은 미국 행이었다. 처음 몇 개월 간은 골프채 대신 바벨을 들어올리며 체력 훈련에 집중했다. 몸 만들기에 열중하며 자신감을 끌어올린 뒤 다시 골프채를 휘둘렀다. 불안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다시 스윙 연습을 하자 정확도도 향상됐다.
그는 “체력적으로 안정되니까 샷이 정확해졌다. 샷을 테스트하기 위해 미 PGA투어 2부투어 예선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예선전을 통과하고 많은 선수들과 다시 경쟁하면서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다” 고 회상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2009년 11월 KPGA 코리안투어 QT(Qualifying Tournaments)를 공동 17위로 통과하며 2010년 다시 투어에 모습을 보인다. 스스로 문제점을 파악한 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 결과 위기를 이겨낸 것이다.
◇힘든 시기를 이겨낸 뒤 들어올린 우승컵과 군입대
그는 2010년 ‘레이크힐스 오픈’ 에서 역전 우승을 일궈내며 4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라운드 공동 62위에 머물러 있던 그는 2라운드에서 5타를 줄이며 공동 5위로 뛰어올랐다. 3라운드에서 공동 5위를 유지해 선두에 3차 타로 맞은 최종라운드에서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최종 1타 차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정말 기뻤다.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낸 것 같아 뿌듯했다”고 말했다.
불굴의 투지로 투어에 복귀한 그는 그 해 KPGA 재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1년 17개 대회에 참가해 16번 컷통과에 성공한 그는 2012년 ‘제7회 메리츠 솔모로 오픈’에서 다시 한 번 우승을 차지한 뒤 군에 입대한다. 그의 말대로 정상의 자리에서 투어를 떠나 군복무를 시작한 것이다.
◇군 제대 후 SK텔레콤오픈 2015 우승, 화려한 복귀
2015년 KPGA 코리안투어에 정식 복귀한 그는 2년 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SK텔레콤오픈 2015’ 에서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을 차지하며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숨이 멎을 듯한 중압감 속에서도 마지막 18번홀 7m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거둔 1타 차 우승이었다.
더불어 상금순위 2위(303,933,295원), 그린적중률 2위(74.7%), 대상포인트 3위(1,830포인트), 최저평균타수 부문 4위(70.55타) 등 각종 기록에서 상위권에 포진했다. 특히 참가한 11개 대회에서 모두 컷통과에 성공하는 등 안정된 기량을 선보이며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2016 시즌 다승과 덕춘상(최저평균타수상) 위해 담금질 들어가
2년 간의 공백을 감안한다면 2015년 기록이 나쁘지 않은 성적표였지만 그는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2015년은 군 복무 이후 투어에 복귀해 우승도 했고 성적에는 만족하지만 KPGA 대상이나 상금왕 등 주요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올해로 투어 데뷔한 지 12년이 됐지만 그가 받은 상은 2006년 명출상과 2010년 재기상이 전부다. 기록적인 부분에서는 상을 받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는 현재 미국 LA에서 막바지 훈련에 임하며 2016 시즌 준비에 한창이다.
그는 “투어 생활하면서 아직 다승(한 시즌 2승 이상)을 기록한 적이 없는데 올 시즌에는 무엇보다도 2승 이상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또한 꾸준한 성적의 지표인 덕춘상이 가장 탐난다”고 밝히면서 “지난 해에는 퍼팅이 잘돼 좋은 성적 낼 수 있었다. 좋은 성적을 위해서는 퍼팅이 필수다. 이번 전지훈련을 통해 퍼팅 감각을 끌어올리면서 그린 주변에서의 플레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두 아들의 아빠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
그는 대회가 없거나 비 시즌 기간에는 항상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결혼 하기 전, 두 아들인 승언(5)이와 승현(3)이가 곁에 있기 전에는 그저 골프가 인생의 전부였다. 그 날 기록한 스코어에 따라 울고 웃었다. 순위에 따라 중압감을 느꼈고 스트레스도 많았다.
하지만 가족을 꾸리고 두 아들이 생기면서 세상을 보는 눈과 골프를 대하는 자세가 바뀌었다. 그는 “가족과 여행을 다니고 두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심적으로 안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심리적으로 안정되다 보니 대회장에 갔을 때도 예전과는 달리 골프 자체를 즐기려고 한다. 가족이 내게 준 가장 큰 변화”라고 했다.
이어 “예전에는 대회 참가를 위해 이동하는 것이 지치고 힘들 때가 있었다. 전국 어디를 가도 관심은 오직 대회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회장에 가면 좋은 경치를 보고 감탄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도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부터 꾸준히 미국과 유럽 진출을 노리고 있다. 골프를 시작할 때부터 간직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지난해에도 PGA투어 2부투어인 웹닷컴투어 Q스쿨을 치렀으나 2차전에서 안타깝게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끊임 없이 도전하는 골프 선수로 기억되길 원했다.
가족과 함께 심리적 안정을 찾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그의 도전은 올해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서른을 넘긴 나이지만 꿈을 위해 정진하는 그의 도전은 절대 무모해 보이지 않는다.
[뉴스핌 Newspim] 이종달 골프전문기자 (jdgolf@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