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체인저(game changer)'. 남이 다 짜놓은 판에서 애써 머리 굴리지 않고 아예 판을 새로 짜는 사람이다.
요즘 자본시장에 이런 선수가 있다. 대우증권을 품은 미래에셋 오너 박현주다. 2조5000억원에 달하는 파격 인수가로 인수전 승리를 거뒀다. 대우 매각전의 시작과 끝은 그가 진두지휘했다. 증권사 샐러리맨에서 시작한 그이기에 더 놀랍다. 이젠 명실상부 국내 증권업계 판도를 뒤흔들 키맨이 됐다. 당국이 십년 넘게 외쳐댔지만 결실이 없었던 '한국판 골드만삭스론'에 대한 희망도 조금씩 흘러나온다.
1년전부터 은밀히 시작된 인수준비, 예비입찰을 전후한 자금조달, 마지막 결정적인 인수가까지 박현주에겐 이미 짜여진 시나리오였다. 그는 금융의 핵심이 자본력에 달렸음을 익히 알았다. 이젠 대우를 품고 부동의 1위, 7조원대 자본으로 딜 사이즈를 키워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한판 붙어볼 심산이다. 옹기종기 모여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국내 금융판에도 상당한 여진을 줄 것 같다.
인수후 일체 구조조정 없는 확대전략, 그리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겠노라"는 말로 승자의 우려도 잠재웠다. 레드오션으로 치부된 증권과 자산운용업의 성장 가능성을 다시금 희망이 있는 업으로 되살릴 기세와 전략을 갖고 있단다. 노조와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복병이긴 하지만 그의 노련함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벤처업계 아이콘 '코스닥'. 여기에도 금융판 박현주에 버금가는 이가 있다.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이다. 18일 셀트리온 종가는 11만6700원. 시가총액이 무려 13조원이다. 코스닥 부동의 1위다. 한때 엎치락뒤치락하던 카카오 시총(약 7조원)과의 차이를 순식간에 두 배로 벌려놨다. '램시마' 영향이다. 글로벌 톱3 블록버스터 의약품인 레미케이드의 최초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는 유럽에 이어 미국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바이오시밀러에서 삼성을 능가하는 실력을 갖춘 셀트리온의 성공에는 척박한 국내 바이오산업 환경 속에서 2000년대 초부터 뚝심 있게 한 길만 팠던 서정진의 공이 컸다. 신생기업의 자금압박 위기, 개인적 자살 유혹, 바이오산업에 대한 시장 몰이해, 공매도 논란에 이은 검찰조사까지. 지금의 서정진이 있기까진 상상 이상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는 단지 바이오산업이 뜬다는 말만 듣고 평소 전혀 알지도 못했던 바이오산업에 뛰어들었고 전 세계 수십개국을 다니며 시장조사를 한 끝에 바이오산업, 바이오시밀러를 확신했다. 그리고 2002년 설립한 셀트리온. 지금 그는 한국의 바이오시밀러시장을 접수했고 글로벌 도약선상에 있다. 바이오산업을 미래 성장의 주축으로 내세운 삼성조차 셀트리온을 벤치마킹했고 한때 인수를 고려했을 정도였다.
박현주와 서정진. 이들의 DNA는 상당부분 겹친다. 수많은 성공신화가 있어 왔지만 이들만큼 주변의 시기와 질투, 오해를 끊임없이 받았던 CEO들도 그리 흔치 않다. 사람들은 적당히 처신하란다. 너무 잘하면, 혹은 너무 다르면 주변 시기와 질투가 커지게 마련이다. 그런 위기를 뚫고 각자의 분야에서 대업을 일궈낸 그들. 전공분야에 대한 인사이트, 고정관념을 뒤엎는 역발상, 무엇보다도 '도전과 혁신'을 본질로 한 그들의 똘끼(남들이 못하는 걸 하는 사람의 끼)가 만들어낸 신화가 아닐까. 요즘 흔히들 얘기하는 금수저 물고 태어난 오너 2세, 3세들로선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들만의 기업가 정신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라는 2016년 한국경제. 이들 리더의 불가능한 꿈에 대한 도전과 끊임없는 혁신을 고민하고 또 배울 때다. 과거엔 전쟁에서 이겨 나라를 구한 이가 영웅이었다. 앞으로는 투자에서 이겨 국부를 늘리는 리더, 신산업을 발굴해 세계로 뻗어가는 리더가 영웅인 시대다. 제2의, 제3의 박현주와 서정진이 계속 나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들 역시 부디 국내시장 파이를 뺏는 체인저가 아니라 시장 파이 자체를 전세계로 확대하고, 새로운 게임의 룰을 만드는 진정한 체인저가 되길 빈다.
[뉴스핌 Newspim] 홍승훈 증권부장 (deerbe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