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즐겁지 않는 이들 생각에 '씁쓸'
[뉴스핌=박현영 기자] 25일 명동 거리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트 모양의 루미나리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데 한몫했다. 크리스마스의 명동은 오전 11시에도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사람들은 추위도 잊은 채 연인, 친구, 가족들과 팔짱을 끼고 하하 호호 웃으며 거리를 다녔다.
그러나 기자의 눈에는 즐거운 이들 사이로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크리스마스는 공휴일, 심지어 모두가 축제처럼 즐기는 날이지만 이날을 일터로 삼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크리스마스 특수를 노리는 단기 아르바이트생들이다.
서울 중구 소공동에 있는 한 백화점의 지하 1층으로 내려가니 식품코너가 나왔다. 그곳에서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한눈에 보여주는 루돌프 머리띠를 쓰고 와인을 판매하고 있는 단기 아르바이트생을 볼 수 있었다.
익명을 요청한 이 와인코너의 아르바이트생(25)은 "크리스마스인데 할 것도 없고, 방학이라 시간도 많아져 돈이나 벌자는 생각으로 나왔다"며 "대학교 4학년이라 취업을 앞두고 있어 고정적인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는 어렵다. 이런 단기 아르바이트가 좋다"고 말했다.
그는 "(크리스마스라) 놀고 싶지만 이날은 구인공고도 더 많고 페이도 더 세다. 크리스마스뿐 만 아니라 설날 같은 명절 때도 아르바이트를 하곤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사람들처럼 놀고 싶지만 대학생으로서 용돈을 벌기 위해서 일당을 더 많이 주는 공휴일을 노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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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명동에서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다. <사진=박현영 기자> |
따뜻했던 건물 안을 나오니 기온 영하 3도의 추운 날씨가 코끝을 얼게 만들었다. 오후 12시 10분경 점심시간이 되자 거리에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두꺼운 패딩에 목도리를 두르고 판촉물을 나눠주는 한 청년이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는 연인들과 친구들에게 판촉물을 돌리는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 아르바이트생(24)은 "(크리스마스처럼) 쉬는 날 일을 해야 생활이 된다는 게 갑갑하다.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는 그저 돈을 많이 주니까 대목이다"며 "휴일이라고 낭만적으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공휴일을 찾아 일하다 보니 무덤덤해졌다. 오히려 휴일은 돈을 더 많이 받는 날로 생각 된다"고 말했다.
이어 "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날은 물가도 더 비싼데... 이래서 데이트할 때 파스타라도 먹겠나 싶다"고 덧붙였다.
오후 2시 30분경 찾은 신촌은 크리스마스 축제가 한창이었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구조물들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는 3명의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청년들을 발견했다.
김세준(23,남) 씨는 "크리스마스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니까 사진 찍어주는 일을 해보자고 해서 친구들과 함께 나왔다. 이번에 처음 해보는데 날씨가 춥긴 하지만 나름 수요가 있어 좋다. 크리스마스 때 마땅히 할 일도 없는데 돈이라도 벌어보자고 시작했다. 아직은 낮이라 사람이 많지 않은데 저녁에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 수익이 꽤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3일간의 크리스마스 연휴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달콤한 휴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청년실업난 심화로 '3포세대'를 넘어 'N포세대'라 자조하는 20대에게 크리스마스는 평소보다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일터일 뿐이었다.
이들과 같이 크리스마스가 즐거울 수 없는 날인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하다.
[뉴스핌 Newspim] 박현영 기자 (young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