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상 받은 건 상 받은 거고 이 영화가 잘 돼야지.”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프로모션 차 만난 배우 정재영(45)에게 축하의 말을 인사 대신 건넸다. 인터뷰 전날 열린 제35회 영평상 시상식에서 홍상수 감독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로 남자연기상을 받았던 터였다. 한국 영화 평론가에서 수상하는 상인만큼 영화인에게는 다가오는 의미가 특별하다.
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에겐 죽기 전에 한 번 받아봤으면 하는 꿈같은 상이었다”며 감격에 겨워했으니.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다시 마주한 이 배우는 그때의 들뜬 감정은 모두 털어버린 듯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출발 선상에 서 있었다.
정재영이 신작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로 극장가를 찾는다. 현직 연예부 기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수습사원 도라희(박보영)가 시한폭탄 상사 하재관(정재영)을 만나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사실이건 아니건 독자 입장에선 리얼하게 봤어요. 밀접한 관계에 있는 분들이라 공감도 많이 됐고요. 무엇보다 기자가 아닌 일반 직장에도 다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도라희나 하재관 중 한 명이 아닌 두 사람 모두 이해가 갔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영화에서 절대 악은 없으니까. 모두 평범한 사람이잖아요.”
극중 정재영이 연기한 하재관은 느린 놈, 열심히 안 하는 놈, 성의 없는 놈은 칼 같이 잡아 영혼까지 탈탈 터는 인간 탈곡기다. 1분에 한 번씩 소리 지르고 전화기를 때려 부수는 게 일상. 신념은 이거다. 일의 능률을 위해선 백 마디 칭찬보다 한마디 욕이 낫다.
“하재관이 나쁜 놈이긴 하죠. 대놓고 면박을 주고 말로 다 뱉는 건 잘못됐으니까. 하지만 그도 나름의 애환이 있고 속은 착한 사람이라 생각해요. 사실 우리 일만 봐도 물으면 안되는 걸 묻거나 첫날부터 쉬는 날 찾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럼 하재관 아닌 정재영 입장에서도 답답하죠. 그나마 박보영이 해서 덜 밉지, 남자가 그랬어 봐, 때렸을지도 몰라(웃음).”
그렇다면 실제 정재영은 어떤 신입이었을지 궁금했다. 회사에 다닌 건 아니지만, 그에게도 모든 게 어설프고 낯선 신인 시절이라는 건 존재할 테니까.
“무식해서 용감했죠. 도라희랑 비슷했네(웃음). 선배들 말도 잘 믿었고 그게 다 진리라고 생각했어요. 또 영화 처음 할 때도 지금처럼 애드리브치고 그랬죠. 자연스럽게 여배우 몸 더듬는 연기하고 그래서 현장 스태프들이 다 당황하고. 근데 그때도 ‘배우는 그래도 되는 거 아니야? 왜 말리지?’ 했어요. 약간 덜떨어진 케이스였어요. 좋게 말하면 순진했죠.”
그렇게 뭣 모르고 해맑기만(?) 하던 때 그를 보듬어 준 건 배우 안성기다. 여러 차례 안성기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드러낸 바 있는 정재영은 또 한 번 당시를 회상하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대중은커녕 함께 작업한 스태프들도 자신을 몰라볼 때, 스쳐 간 인연을 기억하고 ‘어, 너. 반갑다’라고 먼저 손 내밀어 준 선배를 잊을 수가 없다.
“정신적으로 절 감싸주셨죠. 하재관과 다르게 격 없이 따뜻하게 대해주셨어요. 스태프도 재밌게 해주시고 배우는 촬영 없으면 차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러지도 않으셨죠. 그때 선배가 지금 제 나이셨는데 저런 마음가짐을 배워야겠다 싶었어요. 정말 어른 같다고 느꼈죠. 근데 뭐, 막상 그 나이가 됐는데 전 아직도 철이 없어서(웃음).”
자신을 “철이 없다”고 평하는 그의 말에 손사래를 치진 않았다. 동의를 한다기보단 낯선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터뷰 때마다 정재영은 자신을 ‘철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칭찬이 낯 뜨거워 하는 겸손의 표현 중 하나라고 여겼다. 그런데 찬찬히 돌이켜보면, 그는 그저 ‘언제나 철없음’을 지향하는 사람이었다.
“맞아요. 철들기 시작하면 너무 관조적이 되니까요. 모든 걸 이해하게 되면 열정이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또 배우의 특권이 철 안들어도 되는 유일한 직업이란 거 아니겠어요. 자유롭게 생각하고 폭넓게 이해하고 틀에 갇히지 않고, 또 계속 의심하고 과감해야 하고 용기 내야 하고. 솔직하되 쫄지 않는 그런 노력을 평생 하는 거죠. 제 생각은 그래요.”
“두려워하지 말자”는 마인드에 걸맞게 데뷔 19년 차인 지금도 그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특히 지난여름에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드라마에 출연,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 역시 영화만 고집하는 (것처럼 보이는)충무로 대표 배우 중 한 명이었기에 출연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차기작 선택에 드라마도 끼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럼요. 좋은 작품이 있다면 또 할 수도 있죠. 그동안도 좋은 게 있으면 한다고 했어요. ‘어셈블리’ 같은 경우도 영화감독들 사이에서 작품 좋단 칭찬이 많았죠. 그래서 용기를 냈고요. 촬영은 재밌었어요. 다만 영화보단 체력을 많이 요구하니까 육체적인 준비를 많이 하면 더 쉬울 듯해요. 그렇다고 이게 좋다, 저게 낫다는 건 아니에요. 뭐든 태도와 마음가짐의 문제니까. 그리고 열정만 있으면 뭘 못해(웃음)!”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 (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