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이현경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올해 무려 네 작품으로 관객과 시청자를 두루 만난 배우 김태훈(40). 영화 ‘설행-눈길을 걷다’부터 MBC ‘앵그리맘’ JTBC ‘사랑하는 은동아’에 이어 tvN ‘신분을 숨겨라’까지 쉬지 않고 연기했다.
성과도 좋았다.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2014' 프로젝트로 제작된 ‘설행’은 제50회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 제5회 사할린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앵그리맘’ 역시 수목극에서 상위권, ‘사랑하는 은동아’(은동아)도 연일 시청률을 갱신했다. ‘신분을 숨겨라’도 최고 시청률 3%를 기록하며 사랑받았다.
‘신분을 숨겨라’를 마치고 만난 김태훈은 작품에서 보여준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진지할 거란 예상과 달리 실제로 꽤 유쾌했다. 올 한해 다작하느라 체력 관리를 어떻게 했냐는 질문에 “아직 젊다. 늙는 게 싫다”며 “‘앵그리맘’에서도 유정이와 친구처럼 잘 지냈다. 가끔 유정이가 누나로 느껴지기도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태훈은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빛을 반짝이며 진지하게 경청하고 답했다. 올해 ‘설행’에서 알코올 중독자, ‘앵그리맘’의 패륜아, ‘사랑하는 은동아’의 집착남, ‘신분을 숨겨라’의 특수반 형사까지 실로 다양한 옷을 입덨던 배우 김태훈은 새로운 캐릭터를 마주할 때마다 연기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고 말했다.
“작품에서 맡은 인물들의 사연이 다 달라요. 캐릭터를 이해하는 것 부터가 고민의 시작이죠. ‘앵그리맘’의 도정우는 패륜아였어요. 제자를 성폭행하고 죽이기까지 한 인물이죠. 저는 도정우의 상황 자체가 너무 불편했어요. 그런 인물을 인정하는 게 괴롭고 ‘패륜’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은동아’는 대본을 보는 내내 눈물이 났어요. 지문에 눈물이 적혀있지 않아도 어느새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촬영장만 가면 저도 모르게 다운이 되고요. 그래서 스태프들이 매번 저한테 괜찮냐고 묻더라고요. 이런 경험은 저도 처음이라 ‘이렇게 연기하는 게 맞나’ 혼란도 왔죠.”
‘사랑하는 은동아’를 하면서 김태훈은 ‘신분을 숨겨라’에도 등장했다. 그는 ‘나쁜 녀석들’ 제작진이 연출한 ‘신분을 숨겨라’의 러브콜을 받고 흔쾌히 응했다. ‘나쁜 녀석들’에서 제대로 악의 축이었던 검사 역할과 달리 ‘신분을 숨겨라’에서는 배려와 희생의 아이콘 민태인을 맡아 활약했다. 그는 “아무래도 제작진이 제가 착한 걸 안 거 같다”면서 웃었다.
“감독님이 ‘신분을 숨겨라’ 제작을 준비하면서 연락을 줬어요. 저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기본적으로 '나쁜 녀석들' 팀에 대한 신뢰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초반에 빨리 죽는 인물이라고 들었는데 15회에서 생을 마감했죠. 그런데 점차 분량이 늘어나더라고요. 이렇게 오래 나올 줄은 몰랐어요(웃음). '나쁜 녀석들'에서는 악인으로 ‘신분을 숨겨라’에서는 완전히 다른 선한 역으로. 그렇게 제가 좋아하는 스태프들과 또 한번 만나 즐겁게 연기했습니다.”
사실 극 초반 빠르게 하차할 거란 예고와 달리 그는 16부작 중 15회까지 출연했다. 극중 늘 희생양이던 민태인은 결국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음을 맞았다. 갖은 고문과 생체 실험은 오롯이 김태훈의 몫이었다. 매일 피범벅인 분장은 그를 힘들게 했지만 자신보다 스태프와 극중 수사과들이 고생이 많았다며 당시 현장 이야기를 들려줬다.
“화면에서는 제가 늘 고문을 받고 있어서 힘들어 보였겠지만 저보다 수사과들이 고생을 많이 했죠. 원종이 형을 비롯해서요. 액션신이 많아서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거예요. 게다가 스태프들은 밤낮 없이 일했으니 말로 다 못하죠. 저는 체력적인 부분에선 상대적으로 괜찮았어요. 그런데 바이러스 감염 촬영 때는 힘들더라고요. 폐병원에서 진행했는데 창문 하나 없어서 숨을 쉬기도 어려웠어요. 저야 누워있었지만 스태프들은 장비까지 들고 있어서 많이 고됐을 거예요.”
‘신분을 숨겨라’는 최고 시청률 3%를 돌파하며 인기를 얻었다. 빠른 전개와 긴장감이 재미를 더했다. 스팩터클한 도심 활극도 볼만했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뒷심이 부족했다. 일부에서는 ‘나쁜 녀석들’보다 구성이 탄탄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에 대해 김태훈은 “현장이 급하게 돌아갔지만 감독님은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모든 장면을 공들여 찍었다”고 말했다.
“‘나쁜 녀석들’은 반 사전 제작이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았지만 ‘신분을 숨겨라’는 후반으로 갈수록 생방송 수준이었어요. 저는 두 작품 다 출연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더라고요. 일단 모두가 고생했고 열심히 했으니까요. ‘나쁜 녀석들’은 대본이 나오고 1년 뒤에 편성됐어요. 그래서 준비 기간이 충분했죠. 대본 수정도 몇번 됐고요. 그리고 반 사전 제작이라는 게 계약에 있었기 때문에 방송 전 이미 6회까지 촬영이 마친 상태였어요. ‘신분을 숨겨라’도 ‘나쁜 녀석들’만큼 사건이 많았기 때문에 쉬운 장르는 아니죠. 그렇지만 두 작품이 다른 방송 환경에서 만들어졌고 그로 인한 결과가 몇몇 분들의 아쉬움을 만든게 아닌가 싶어요.”
14년 차 배우 김태훈은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부쩍 와 닿는다고 했다. 한 신이라도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 그는 최근 그 마음이 더 깊어지고 있다며 부담감도 살짝 드러냈다. 사할린영화제 ‘설행’ 상영 후 한 관객의 반응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감독에 의하면 ‘저 사람 진짜 알코올 중독자냐’라고 물었다고. 예전 같았으면 마냥 기뻤을 평이 웬지 모르게 좋지만은 않았다. 실제 같은 연기가 훌륭한 것인지 혹은 나도 모르게 몰입이 된 연기가 답인지 헷갈린다.
“감독님께서 러시아 관객의 반응을 전해주셨어요. 술을 많이 마시는 러시아 사람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극찬 아니냐고요. 그런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배우의 연기를 본 관객이 실제 사람인 것처럼 느끼는 게 호연인지 아니면 배우가 역할에 몰입하는 자체가 좋은 연기인지요. 좋은 연기에 대한 기준을 요즘은 잘 모르겠어요.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연기를 할수록 새로운 물음이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제가 연기한 지도 13년이 넘어가고 있어요. 앞으로도 ‘배우’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게 좋은 연기 계속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 김학선 기자(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