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보다 다국적 제약사 판권 따내는데 치중..R&D 육성 어려워
[뉴스핌=이진성 기자] LG생명과학이 국내 최초로 개발한 제2형 당뇨치료제 '제미글로'가 위협받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이 시장 진출 목적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것보다 다국적 제약사의 약품에 대한 판권을 따내는 데 치중하면서 제미글로가 상대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반복될 경우 국내 어느 제약사도 신약 개발에 나서지 않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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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첫 제2형 당뇨치료제 '제미글로' … 성장세 '위협'
20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국내 업체가 개발한 DPP-4를 억제하는 제2형 당뇨치료제는 LG생명과학의 제미글로가 유일하다. 유한양행과 한미약품, 대웅제약 등 6개 제약사가 판매중인 DPP-4 억제제는 모두 다국적 제약사의 제품이다.
국내 DPP-4 억제제 시장 1~3위를 다투는 자누비아(대웅제약)와 트라젠타(베링거인겔하임), 가브스(한미약품) 등은 모두 다국적 제약사 MSD, 베링거인겔하임, 노바티스 제품이다.
LG생명과학의 제미글로는 지난 2012년 제미글로를 출시했다. 이듬해 56억원의 매출에서 지난해에는 144억원을 기록했다. 다국적 제약사가 주를 차지하던 DPP-4 억제제 시장에서 빠른 성장세를 이어간 것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작년 한해 매출과 맞먹는 115억원을 올렸다.
LG생명과학은 제미글로를 개발하기까지 9년의 시간과 500억원 수준의 연구비를 투자했다. 임상과정에서 기존 당뇨치료제인 시타글립틴 대비 우월한 효능을 나타내면서 국내외 시장에서 주목받았다. 제미글로는 차별성을 인정받아 전세계 100여곳에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최근 국내 경쟁사가 대거 늘었기 때문이다. 동아에스티와 JW중외제약이 하반기에 DPP-4 억제제 신약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제미글로는 국내 신약임에도 불구하고 대형 제약사의 마케팅 전략에 맞서야 했다. 제미글로가 국내외 시장에서 성장세를 보이자 지난해 한미약품과 일동제약 등 대형 제약사들이 다국적 제약사의 신약을 가지고 시장에 가세했다.
더구나 올해 초에는 한독도 미쯔비시다나베로 부터 판권을 획득해 '테넬리아'를 홍보하고 나섰다. 모두 자체 개발이 아닌 판매 대행이다. 예컨대 막대한 자본을 가진 대형 제약사가 마케팅전략을 펼친다면 시장은 따라올 수 밖에 없다.
즉 LG생명과학은 대형 제약사와 신약을 비롯해 마케팅 전쟁도 치뤄야하는 셈이다.
제약업계 고위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가 다른 신약을 개발해서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다"며 "수익만 올리기 위한 무분별한 판권 문화로 인해 피해를 보는 제약사가 생긴다면 국내 제약사는 연구 의욕을 잃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국내 제약 산업 전반의 위기로 다가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정부, 말로만 제약산업 키우겠다…업계 신약 '개발' 자충수 우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3년 제약산업을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지정해 '글로벌 10대 강국'으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내놨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는 혁신형 제약사로 선정될 경우 세제 혜택 등 지원 비중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혁신형 제약사 선정 기준은 연구개발(R&D)활동의 혁신성과 기술적ㆍ경제적 성과의 우수성, 기업의 사회적 책임 및 윤리성 등이다. 정부는 글로벌 제약사의 경쟁력에 있어 R&D의 중요성을 인지한 셈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복지부는 2016년 제약산업특화지원에 130억원 수준을 지원하려 했으나, 미래창조과학부가 올해 75억원수준보다 더 낮은 60억9500만원만을 승인한 것이다. 기획재정부의 최종 심의가 남아있지만 사실상 큰 폭의 조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제약업계는 제약사가 정부 지원없이 신약개발 등 R&D에 투자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10년이상 걸리는 신약개발에 나섰다가, 실패할 경우 막대한 부채만 짊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처럼 장기적인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질환에 대해선 더욱 냉랭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국민보건도 위협받을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보다는 판권 인수나 특허료 지불 등을 통해 시장에 진출하려는 모양새다.
결국 다국적 제약사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다. 당초 제약사의 R&D를 활성화해 신약을 개발해 기술을 수출하자는 정부의 로드맵이 무색케됐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R&D투자 측면, 나아가 제약산업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문제라는 사실을 고려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특히 신약개발은 10년, 20년 앞을 내다보는 사업으로, 이러한 상황이 이어진다면 리스크를 부담하면서까지 연구개발에 나서는 제약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진성 기자 (jin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