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최저임금'보다 38% 높은 수준
[뉴스핌=김사헌 기자] 글로벌 가구업계 공룡 이케아(IKEA)가 미국에 이어 영국 근로자들에게도 최저임금보다 크게 높은 '생활임금(living wage)'을 지급하기로 해 주목받고 있다.
미국 맥도날드 노동자의 '15달러 시급 쟁취' 운동으로 북미지역에 이어 영국으로도 '생활임금' 인상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통상 '생활임금'은 법정 최저임금보다 높은데, 이 같은 임금이 도입되는 것은 선진국에서 '근로빈곤층(워킹푸어)' 문제가 확산되어 사회적 차원이나 기업 차원의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는 최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현재 시급 5580원보다 450원, 8.1% 높인 6030원으로 결정했다. 이에 노동계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재심의를 요청하는 등 반발이 거세다. 앞서 노동계는 최저임금 시급 1만원으로 인상을 요구했었다.
◆ 선진국 '생활임금' 도입 확산
<출처=이케아(IKEA)홈페이지> |
회사는 앞서 지난달 미국 직원들에게 2016년 1월부터 시간당 1만3700원 가량(11.87달러) 지급하기로 했는데, 이는 미국 연방 최저임금(7.25달러)보다 5300원, 무려 60% 이상 많은 것이다.
이어 이번 달 영국 직원들에게는 내년 4월부터 시간당 14000원(7.85파운드)를, 특히 런던의 경우 시간당 1만6500원(9.15파운드)를 주기로 약속했다. 영국은 올해 10월부터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2000원(6.7파운드)로, 런던 근로자들은 최저임금보다 37.5% 더 높은 임금을 받는 셈이다.
이케아 측은 영국 고용인력 9000명 중 절반 이상의 임금이 인상되는 것이며, 이렇게 임금을 인상하는 것이 직원들은 물론 회사에도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이직률을 줄이고 이렇게 해서 근로자 채용 및 숙련에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
앞서 미국은 맥도날드 노동자들이 "시간당 1만7350원(15달러) 쟁취" 투쟁을 벌이는 등 패스트푸드업계 최저임금 인상이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한 바 있다. 월마트와 갭 등 대형소매업체의 경우 매장 직원들에게 최저임금보다는 높은 시급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앤젤레스(L.A.)시의 경우 지난 5월에 이미 최저임금을 시급 1만7350원으로 인상했고, 일부 미국 도시들도 최저임금 인상을 현안에 올린 상태.
이러한 북미지역의 최저임금 인상 추세가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도 확산된 셈이다.
영국 상공회의소의 아담 마샬 대외정책담당 전무이사는 회원사의 60% 이상이 이미 모든 직원들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거나 나아가 생활임금보다 약 20% 이상 더 지급하고 있다고 주장혔다. 어쨌거나 아직 생활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지급하는 다른 회사들 역시 임금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은 최근 '전국민 생활임금(national living wage)'을 25세 이상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제도에 따르면 고용주는 내년 4월부터 시간당 8300원(7.20파운드)을 의무지급해야 하고, 이를 2020년까지 1만400원까지 인상해야 한다.
참고로 생활임금재단(Living Wage Foundation)의 조사에 따르면, 이케아 외에도 '생활임금'을 주는 회사는 1600개에 이르지만 통일된 지급 기준은 없다.
◆ 선진국도 워킹푸어 양산, 공공+민간 해결책 필요
우리와 같은 선진국은 장기저성장 추세 속에 대부분 '근로빈곤층(워킹푸어, working poor)'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상태다.
갈수록 계약직 노동자가 증가하고, 생산 자동화 등으로 절대적인 일자리 감소세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빈부 격차가 심화되면서 사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근로빈곤층'은 가족 구성원 가운데 1명 이상이 취업해 일하고 있지만 소득이 육체적 능률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수준인 빈곤선을 넘지 못하는 계층을 말한다. 최저 생활수준도 유지하지 못하는 절대적 빈곤층의 차상위 계층에 해당한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은 대부분 이 계층에 직간접적인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주로 '세액공제'나 '최저소득보장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가계가 빈곤선을 넘도록 만든 최저임금은 매우 오랜 역사를 지난 제도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항상 '생활 임금'에 미달한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노정했다.
과거 영국은 1795년 버크셔주 치안판사들이 스핀햄랜드 시스템(Speenhamland system)을 도입했는데, 이는 구빈법의 원외구제를 목적으로 실시된 것이다. 빵의 가격과 가족 수에 따라 최저생활기준(Speenhamland bread scale)을 정해 실업자와 저임금노동자에게 구빈세에 의한 수당을 지급했다.
당시 이 제도가 도입된 것은 지주계급의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산업혁명 등으로 노동자의 곤궁상태가 악화되고 프랑스혁명의 영향이 확산되자 산업예비군 유지와 노동운동의 성장 억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게다가 이 제도로 인해 고용주들이 악의적으로 임금을 최저생황이 안 되도록 낮게 지급하고 납세자들이 수당지급 부담을 할 수밖에 만들자 비판이 거세졌고, 1834년에 이 제도는 공적구빈을 최소화하는 전국 구제법인 '신구빈법(New Poor Law)'로 대체됐지만 이 역시 나중에 1948년 국민부조법이 나오면서 폐지됐다.
20세기들어 이런 제도는 자유시장 신봉자인 밀튼 프리드먼의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에 기초한 소득보장제도로 대체되는 형상이다. '부의 소득세'는 소득수준이 최저생계비 또는 소득공제액(면세점)에 미달하는 저소득층에 최저생계비와 차액 일정비율을 정부가지급하는 소득보장제도다.
◆ 일자리 감소 추세로 임금 개념 '한계'
최저임금에 비해 '생활임금'은 물가를 고려한 노동자의 최저생활비를 보장해주는 개념으로, 19세기말 미국에서 '가족임금'의 개념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최저임금보다 더 높은 생활임금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보통 생활임금은 평균적인 노동자가 4인 가족과 최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임금으로, 주거비와 교육비, 문화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수준을 말한다. 우리나라도 서울 성북구와 노원구, 경기도 부천시가 시행중에 있는 제도다.
이 제도가 한계가 있는 것은, 최저임금과 마찬가지로 기초가 '일자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장자동화로 인해 일자리는 점차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 이 방식으로 지원받는 사회구성원의 범위는 매우 좁다. 게다가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의 상승은 공장자동화를 가속화하는 촉매가 되기 때문에 갈수록 그 범위가 좁아진다. 자영업자나 프리랜서와 같은 사각지대가 너무 많아진다.
영국이 도입한 '국민생활임금'도 비판을 받는다. 시간당 임금이 6.5파운드에서 9파운드로 올라갈 때 그 부담을 고용주가 지게 되는데, 이로 인해 재정이 약 120억 파운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분은 모두 합해야 40억파운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최저임금을 재정지출이 줄어드는 만큼 충분히 올린다고 해도, 문제가 남는다. 갈수록 줄어드는 일자리에 대한 최저소득 보장을 다른 납세자들이 채워줘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약 20년 내에 현재보다 일자리 수가 50% 줄어들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경제학자들은 로봇이 대체할 일자리에서 나오는 '임금' 개념 혹은 '근로와 연계된 소득' 개념말고, 일자리와 무관한 '기초소득' 혹은 '시민소득'으로 최저생계비를 삼는 사고방식의 이동을 주문하고 있다.
이런 '기초소득' 제도는 자유시장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 모두 도입하려고 했지만, 항상 반대에 직면했다. 사회 전체의 부가 이를 모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거나 또 이런 제도는 근로의욕을 저하시킬 것이란 우려에서 반대가 나온 것이다.
로버트 스키델스키 워윅대 교수 겸 영국학사원 펠로우는 "지금 선진국이라면 제도를 감당할 정도의 사회의 부가 부족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근로의욕 저하 주장은 원래 이 제도가 시민들을 일자리나 근로활동과 무관하게 기초생활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점에서 문제제기 자체가 근거 없다"고 주장했다.
[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