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할 때 난 Yes, 싸게 사고 높게 판다" 세계 57위 갑부
[편집자] 이 기사는 7월 15일 오전 11시 34분에 프리미엄 뉴스서비스 ‘ANDA’에 먼저 출고했습니다.
[뉴스핌=김성수 기자] 포스브 집계 세계 갑부 순위 57위. 개인재산 27조원이 넘는 프랑스 억만장자 패트릭 드라히(Patrick Drahi) 알티스 회장이 미국 케이블 시장을 향해 진군하고 있다.
불과 52세인 그의 제국은 가족이나 가문에서 도움을 기초로 일구어진 것이 아니다. 기업 말단 회사원 자리를 박차고 나가 1000만원이 안 되는 학자금으로 작은 회사를 설립, 지금의 미디어제국을 건설했다. 현재 프랑스 내에서 2위 갑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미국 케이블 텔레비전(TV) 시장에 스트리밍TV 등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지각변동이 발생하자, 드라히는 과감하게 미국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재빠르게 선점해 나가며 주목을 받고 있다.
알티스는 프랑스 기업답지 않게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추진하면서 몸집을 불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프랑스 통신사 SFR을 230억달러에 인수했으며 이외에 이스라엘, 도미니카공화국, 벨기에 통신회사도 소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드라히 회장이 케이블 시장의 '대마불사(Too-big-to-fail)'를 세우려 한다며 날선 비판을 제기하지만, 미디어업계 공룡을 만들겠다는 야망으로 가득 찬 드라히 회장의 허기를 채우는 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 패트릭 드라히는 누구
패트릭 드라히 회장은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세계 최고 부호 57위, 프랑스 내 2위 갑부에 랭크되는 거물이다.
2015년 7월14일 현재 포브스(Forbes)의 실시간 집계로 드라히 회장은 자산 총액이 239억달러(27조2747억원)에 이르면서 세계 갑부 순위 57위에 올라 있다.
드라히 회장은 지난 18개월 동안 인수합병을 통해 400억달러를 축적했으며, 이 중 프랑스 2위 통신사 SFR를 인수해 얻은 재산이 230억달러에 이른다. 2013년에는 이스라엘 소재 국제뉴스 채널인 아이24뉴스(i24news)를 설립했다. 이 방송사는 프랑스어, 아랍어 그리고 영어 등 3개 국어를 사용한다.
2015년에는 미국 7위 케이블회사 서든링크 커뮤니케이션스(Suddenlink Communications)의 지분 70%를 19억달러에 인수하면서 미국 통신시장에 진출했다.
미국 유력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드라히 회장을 비중 있게 다루는 커버 기사를 싣기도 했다. 드라히 회장이 미국 미디어 업계에 갖는 영향력 혹은 존재감이 그만큼 위협적이라는 뜻으로 비춰진다.
신문에 따르면 드라히 회장은 로버트 마르쿠스 타임워너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타임워너 케이블을 인수할 의향을 표시할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이 기업을 갖겠습니다(I will own this company)." 드라히 회장의 '돌직구' 스타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드라히 회장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타임워너 케이블은 미국 내 3위 케이블TV업체 차터 커뮤니케이션과의 합병 계획을 발표했다.
드라히에게 있어 실패의 고배는 미국에서 케이블 공룡기업을 탄생시키고야 말겠다는 야망을 더 확고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는 미국 내 가입자 4위인 케이블 TV업체 케이블비전은 물론이고 소규모 케이블 업체인 콕스 커뮤니케이션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WSJ는 드라히 회장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고 전했다. 유럽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해 미국 정보통신 생태계를 교란시키기 위한 계획이라는 것이다.
드라히 회장은 케이블 업체들과 이동통신 사업자를 한 데 결합시킴으로써 케이블 TV와 초고속 인터넷, 유선전화, 핸드폰 서비스를 풀 세트로 제공하는 통신업체를 세우려 하고 있다. 유럽은 이 네 가지 서비스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으나, 미국에서는 아직 정착돼 있지 않은 모델이다.
미국 케이블 업계의 거물 존 말론은 지난달 연례 주주총회에서 "패트릭은 천재적 인물"이라고 극찬했다.
다만 드라히 회장은 정작 모국인 프랑스에서는 정부와 기업가들의 냉소적인 시선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히의 경영 스타일은 공격적인 비용삭감과 높은 부채를 통한 자본조달을 근간으로 삼고 있는데, 이는 리스크를 회피하는 프랑스 기업문화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드라히는 수년간 실시된 초저금리로 인해 투자자들이 고수익에 목말라 있음을 간파하고, 싼 값에 채권을 발행해서 자금줄을 끌어왔다. 그러나 애널리스트들은 이제 알티스의 부채 규모가 330억달러에 육박해, 기준금리 인상이 실시될 경우 자금조달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드라히 회장의 프랑스 기업사냥 행보를 지난 12년간 지원해준 프랑스 사모투자회사 페첼 인더스트리의 엘렌 플로엑스 회장도 "드라히가 그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이 (인수를) 할 줄은 몰랐다"며 적잖이 놀란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엠마누엘 마크론(Emmanuel Macron) 프랑스 재무장관 등 고위 관료들은 드라히가 '대마불사'의 통신그룹을 만들려고 한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드라히가 세운 거대 공룡 기업이 나중에 파산 지경에 처하게 되면, 국민들의 혈세로 구제해줘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버나드 앙리 레비 철학 교수는 드라히가 모로코 출신이면서 이스라엘 국적도 갖고 있다는 점을 들어 "유태인이면서 돈을 많이 갖는 것은 프랑스 사회에선 어울리지 않는다"며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드라히는 지난 1999년부터 거주지 주소는 스위스 제네바이다.
드라히가 미국 기업들을 인수하며 사업 확장에 나서는 것은 모국인 프랑스에서 사업적으로 부딛힌 벽을 해소하려는 한 방법으로 읽힌다. 지난달 드라히는 프랑스 3위 통신사인 부이그 텔레콤에 100억유로 인수가를 제시하면서 인수가 확실시될 것이란 투자자들의 기대를 모았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 "남들이 'No'할 때가 행동에 옮겨야 할 때"패트릭 드라히 회장 <출처=블룸버그통신>
드라히 회장이 현재의 위치에 오르게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모로코 카사블랑카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숫자에 재능이 있는 소년이었다. 부모님이 모두 수학 선생님이었고, 부모님이 집에 가져오신 수학 시험지를 채점하는 게 어린 드라히의 취미였다.
15세까지 모로코에서 자란 이후 가족들이 프랑스 몽펠리에로 이사했고, 드라히는 여기서 프랑스에서 가장 명성 높은 공학계열 그랑제콜(고등교육기관)인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공학을 전공하면서 최상위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수학 영재'로서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 입학했던 셈이다.
성인이 되면서 드라히는 점점 평범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의 부인 리나 드라히와 대학교 파티에서 처음 만난지 한 시간 만에 청혼을 했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니던 회사인 네덜란드 전자제품업체 필립스에 사직서를 내기도 했다.
시리아인인 부인이 "이제 어떻게 살 건데요?"라고 물어보자 드라히는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나도 잘 모르겠소. 방법을 찾아 봐야지."
보통 사람이었다면 무책임한 가장이 될 법한 사건이었지만, 드라히에겐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벗어던지고 거물 사업가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드라히는 사업 준비차 미국을 방문하고는 미국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 분야를 찾아냈는데, 그게 바로 케이블 TV였다. 미국에서 뉴욕이라는 한 도시의 가입자 수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전체의 가입자 수와 맞먹는다는 점이 그 증거였다.
드라히는 "미국에서 케이블 사업을 하면 같은 노력을 하고도 이스라엘에서 버는 돈의 10배를 벌 수 있었다"며 "(케이블 TV 산업은) 나에게 마치 미국 개척 시대의 거친 서부와도 같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드라히가 실제 미국 기업을 인수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우선 학자금대출 7622유로를 밑천 삼아 2002년 통신업체 알티스를 세웠다. 2009년에는 이스라엘 핫 텔레콤의 소수 지분을 취득하면서 처음으로 국제적인 인수합병에 나섰고, 2011년에는 핫 텔레콤의 지배지분을, 2012년에는 포르투갈 케이블업체와 아프리카 통신회사를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려 나갔다.
2014년 1월에는 알티스를 암스테르담 증시에 상장시켰으며, 4월에는 프랑스 통신사 SFR을 인수했다. 그리고 올해 5월 미국 케이블업체 서든링크 인수에 성공하면서 드디어 미국시장에 진출할 계기를 얻었다. 서든링크 인수 작업은 올해 4분기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드라히는 왜 그렇게 대규모 M&A에 열을 올렸을까? 그건 자잘한 기업들을 여럿 인수하는 것 보다는 큰 것 하나를 갖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 시장을 잡는 게 필수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드라히가 부이그 텔레콤 인수에서 고배를 마신 후 모교인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한 연설은 외부적 한계에도 좌절할 줄 모르는 그의 사업 철학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해석된다.
"당신의 의견에 대해 '불가능하다'는 반응이 많은 것은, 그만큼 그 아이디어가 훌륭하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노(No)'라는 말을 들을 때 오히려 더 발벗고 도전합니다."
그는 거의 인터뷰를 하지 않는데, 한 가지 자신이 스스로 인정한 알려진 사실은 자신이 일군 사업이 미국 기업가 존 말론(John Malone)에게 크게 빚졌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드라히가 1999년 프랑스 지역 케이블업체를 말론의 UPC에 매각할 때 처음 만났다. 당시 드라히는 UPC의 지분과 함께 제네바 지사에 근무할 기회를 얻었다. 여기서 높은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법과 가차없는 경영효율화 방법을 배웠다.
운좋게도 드라히는 닷컴버블이 터지기 직전에 보유한 주식을 모두 팔아 3000만유로를 거머쥐게 되는데, 이것이 유럽 케이블 사업을 통합할 구상을 하게 만든 밑천이었다. 그리고 그의 구상은 말론에게서 배운 경영전략과 맞아떨어지면서 멋들어지게 현실화됐다.
한편, 모로코인이면서 프랑스와 이스라엘 3중 국적을 가진 드라히는 시리아인인 부인과 슬하에 4명의 자녀를 두고 있고 1999년부터 스위스 제네바에 거주하고 있다.
[뉴스핌 Newspim] 김성수 기자 (sungs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