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대우가 달라졌죠. 회사에서 차도 바꿔주고(웃음),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많고요. 초반에는 부담도 됐는데 이젠 그런 부담이나 불안을 잘 정리하자 싶죠. 예전처럼 똑같이 연기만 집중해서 하자는 생각이에요. 그냥 하던 일을 계속했는데 운이 좋았던 거니까요.”
지난해 충무로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배우 천우희(28)다. 그는 독립영화 ‘한공주’를 흥행 반열에 올리며 ‘충무로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극장가 비수기인 4월에 개봉한 ‘한공주’는 독립영화의 한계를 뚫고 22만4556명을 동원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한공주 역의 천우희는 제51회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을 비롯해 제3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제15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연기상 등 총 13개의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특히 제35회 청룡영화상에서는 기라성 같은 선배 전도연, 손예진을 제치고 올해 최고의 여배우로 선택받았다. 매해 ‘20대 여배우’ 기근에 시달리던 충무로에 단비가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명실상부 충무로의 대세 배우로 수직상승한 천우희가 드디어 돌아왔다. 9일 신작 ‘손님’을 선보인 것. 영화는 독일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작품이다. 1950년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산골 마을로 들어선 낯선 남자와 그의 아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숨기려 했던 비밀과 쥐들이 기록하는 그 마을의 기억을 다뤘다.
“처음 시나리오 읽고 독특함에 끌렸어요. 제한된 공간도 흥미로웠고 잔혹 동화 같은 느낌도 좋았죠. 서양의 동화를 과거 한국으로 끌고 왔다는 점도 참신했어요. 영화를 촬영하면서는 결국 인간의 이기적 욕망은 똑같다는 것, 본능은 모두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달았고요.”
극중 천우희가 열연한 인물은 전쟁 통에 가족을 잃고 홀로 된 젊은 과부 미숙이다. 미숙은 촌장(이성민)에 의해 마을을 지키는 무녀의 역할을 강요받는 인물. 천우희는 미숙을 통해 겁에 질린 과부의 모습부터 접신 후 마을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모습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다.
“원래 열린 채로 상황에 맞게 연기하는 편이에요. 이번에도 그랬고요. 그동안 학생 역할을 해서 제 나이 연기에 대한 갈망은 있었는데 이렇게 나이가 뛸 줄이야(웃음). 물론 출산이나 육아를 경험한 게 아니라서 표현에 대한 고민은 있었죠. 근데 초반에 영남이(구승현)를 안는 신이 있었는데 착착 감기더라고요. 계산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죠. 접신 장면도 마찬가지였고요. 눈 뒤집는 게 어려웠는데 슛 들어가니까 되더라고요. 닥치면 다 되는구나 싶었죠(웃음).”
사실 미숙을 보고 있으면 역시 천우희다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숙 역시 ‘한공주’ 한공주, ‘카트’ 미진을 능가하는(?) 아픔과 사연을 가졌기 때문. 그간 천우희는 유독 사회성이 짙은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다. 당연히 특별한 이유가 있겠거니 싶었는데 그런 건 없단다. 오히려 본인 또한 ‘왜 난 항상 고된 길을 가고 있을까?’하는 고민의 시간을 겪었다. 하지만 지인의 ‘그럴 만큼의 깊이가 있다고 생각하고 믿고 맡기는 거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가 그의 마인드를 바꿨다. 고민과 걱정이 자부심으로 바뀌는 계기였다.
“전 인물보다는 전체적인 시나리오 느낌을 먼저 봐요. 처음의 촉을 믿는 편이죠.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매번 상처와 어려움이 있는 캐릭터가 됐어요(웃음).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인물을 맡게 됐을 때 책임감이 들긴 해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왕 하게 된다면 굉장히 진중하게 하려고 하죠. 관객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보는 사람이 불쾌하거나 상처받게 하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하려고 하죠.”
연기하면서도 그는 관객을 생각했지만, 사실 그 순간 가장 힘든 사람은 배우 본인일 거다. 캐릭터 자체가 무겁다 보니 감정의 진폭 역시 큰 게 사실. 자연스레 이런 역할을 맡는 배우에게는 탄탄한 연기력과 몸에 밴 도전의식이 필수 요소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정작 천우희는 도전의식이 없는, 되레 주저하는 성향의 사람이란다.
“물론 연기에 있어서는 과감하고 도전적이에요. 하지만 일상에서는 그렇지 않죠. 사실 지금도 이십 대 때 뭘 많이 하지 않았다는 걸 많이 후회하죠. 항상 주저했어요. 사소한 걱정에 계속 다음으로 미루다 보니까 벌써 이십 대 후반이 된 거죠(웃음). 제가 하고자 함에 있어서 밀고 나가는 건 연기밖에 없거든요. 웬만하면 ‘그래, 다음에’하고 넘어가거든요. 그래서 이제 삼십 대가 되면 개인적인,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다가올 30대에는 달라진 모습을 꿈꾸는 그는 남은 20대도 알차게 보내고 싶다고 했다. 특히 망설이다 못 갔던 여행을 꼭 가고 싶다. 물론 영화 ‘해어화’ 촬영이 오는 10월까지 잡혀 있어 개인적인 시간은 길어봤자 두 달 정도. 하지만 “그래도 이번엔 ‘다음에’라고 미루지 않고 꼭 여행을 가겠다”고 의지(?)를 불태우며 마주한 천우희가 활짝 웃었다.
“제가 올해 아홉수에 삼재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어제 장영남 선배가 촬영하다가 ‘너 복삼잰가 보다. 잘됐다. 아홉수에 오히려 잘되네’라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그런가 봐요(웃음). 물론 아직 후반이 있으니까 방심할 수는 없지만요. 뭐든 조심조심해야죠. 특히 스스로 들뜨지 않게 다잡으면서 마지막 이십 대를 신나게 즐길래요.”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