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긴급지원 철회 여부와 3차 구제금융 가능성 '주시'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그리스가 기어코 국민투표 '반대' 결과를 이끌어내며 구제금융 드라마의 끝판을 보여주고 있다. 내심 찬성표를 기대했던 유럽 지도부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직은 끝나지 않은 그리스 사태의 결말은 어떻게 될지 전 세계 금융시장이 주시하고 있다.
지난 5일 그리스 내무부는 국민투표 개표 결과 반대 61.3%, 찬성 38.69%로 집계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투표율은 62.5%였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TV연설을 통해 "오늘은 유럽 역사에 서광이 비춘 날"이라며 "그리스 민주주의 승리를 자축한다"는 말로 구제금융 반대 결과를 공식 확인했다.
그리스 사태 분수령으로 꼽히던 구제금융 관련 국민투표 결과가 나왔지만, 그리스 은행권을 중심으로 한 회생 방안과 유럽의 지원,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사비에르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는 "그리스 국민들이 구제금융 반대표를 던진 만큼 그리스 정부는 이후 어떤 조치들을 취할 것인지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의 신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시리자당이 국민투표 반대 결과에 따른 대비책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는 아직까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리스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은행 영업중단 연장 등 다음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이날 저녁 회동을 가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장의 은행권 생사 여부는 자금줄을 쥐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의 결정에 달려 있다.
경제연구소인 브루에겔 선임 연구위원 니콜라스 베론은 "(현 상황에서 어떠한 예측도 불가능한 만큼) 앞으로 수일 간 여러 번 서프라이즈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ECB, 은행 생명줄 뽑을까? 6일 회동 결과 주시
그리스 국민들이 더 이상은 유럽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며 '긴축 반대'를 외쳤지만 당장 그리스 은행권의 운명은 ECB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
지난주부터 영업이 정지된 그리스 은행권은 현재 현금 보유 금액이 5억유로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 국민 1100만명에게 돌아갈 현금이 1인당 45유로 정도에 불과한 셈이다.
마틴 슐츠 EU의회 의장은 투표에 앞서 "(은행들에) 신규 자금 지원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그리스 근로자들의 임금 지급이 불가능함은 물론 보건 및 전력 시스템, 대중교통 등이 모두 중단될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은행권에 대한 자금 지원을 책임지고 있는 ECB는 이날 투표 결과에 따른 즉각적 논평을 내놓지 않은 채 6일 긴급 정책위원회를 소집했다. 이날 회의에서 ECB는 현재 890억유로로 묶여 있는 그리스 은행권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 한도를 집중 논의할 계획이다.
이날 뉴욕타임스(NYT)는 드라기 ECB총재가 금융지원 중단은 그리스 국민들에게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으며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가 촉발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당당 ELA 지원 중단 카드를 꺼내진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오는 7일 긴급 유로존 정상회동이 잡혀있는 만큼 회담 결과를 지켜본 뒤 움직일 것이란 추측이다.
소시에테제네랄(SocGen) 소속 분석가들은 "그리스 정부가 유로존 탈퇴를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명백히 시사했다"며 "ELA를 끊는 순간 그렉시트가 촉발되겠지만 ECB가 자금줄을 끊을 것 같지는 않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ECB가 조만간 자금 지원 중단을 결정해 그리스가 유로존 탈퇴 수순을 밟을 것이란 전망도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다.
유라시아그룹 유럽 담당이사 무즈타바 라흐만은 "7일 정상회담은 ECB가 ELA 중단을 선언할 수 있도록 정치적 정당성을 마련해주려는 의도된 자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3차 구제금융? 유럽안정화기구(ESM) 역할 주목
ECB가 어떤 결론을 도출하든지 그리스 사태에 대한 영구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유로존 회원국들이 마련한 유럽안정화기구(ESM)만이 장기적 해결책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지난달 30일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종료되기 직전 치프라스 총리 역시 국제 채권단에 앞으로 2년 간 ESM을 통해 자금 지원을 받는 3차 구제금융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리스 투표가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3차 구제금융안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며 협상 불가 방침을 강조했었다.
하지만 일요일 그리스 국민들이 구제금융 반대표를 던진 이상, 일단 유럽 지도부는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앞으로 이틀 간 잇따라 예정된 긴급 회동에서 채권단이 어떤 결론을 도출할지에 따라 3차 구제금융도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당장 6일에는 메르켈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긴급 회동에 돌입하며, 별도로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6일 오전 터스크 의장,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과 텔레컨퍼런스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어 7일에는 유로존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그리스 정부 측도 채권단과의 추가 협상에 조심스레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이날 치프라스 총리의 최측근인 니코스 파파스 그리스 국무장관은 TV에 출연해 그리스가 오는 20일 전까지 유럽 채권단과 합의안을 도출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그리스 정부의 이 같은 입장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치프라스 총리는 이번 국민투표 결과를 '민의(民意)'로 등에 없은 채 채권단에 추가 양보안을 얻어내려고 할 것이 자명하다. 연금제도와 부가가치세제 개혁 등 긴축 요구를 완화하고, 무엇보다 채무탕감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편, 오는 20일은 35억유로에 달하는 ECB 지원자금 상환 만기일로, 그리스의 '최후 생사기로'로 간주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그리스가 이 자금을 상환할 능력은 없고, 이에 앞서 국내에 유로화 자금도 바닥이 나면 어떤 형태로든 자국통화를 발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유로존 이탈이 가시화된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기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