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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삼성, 리셋하라"…후쿠다 前 삼성전자 고문 인터뷰(1)

기사입력 : 2015년06월12일 16:28

최종수정 : 2015년06월12일 16:28

[뉴스핌=추연숙 기자] "신경영을 통해 이룬 지금까지의 성공사례나 기억은 잊고 리셋(reset, 컴퓨터 등 기계 장치를 다시 시동 상태로 복귀시키는 일)해야 합니다. 지금은 미래에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삼성인 전체가 진심으로 고민해야만 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 삼성전자 고문인 후쿠다 타미오 일본 교토공예섬유대학 명예교수는 지난 11일 삼성 사내 미디어인 '미디어삼성'에 실린 인터뷰에서 향후 삼성이 100년 기업이 되기 위해 후배들에게 조언할 점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다음은 지난 11일 삼성그룹 사내 미디어 '미디어삼성'에 실린 인터뷰 전문이다. <자료제공=삼성>


[신경영 22주년 특집] 후쿠다 前 고문 인터뷰 - 지금 삼성에 필요한 단어는 '리셋(reset)'

지난 6월 4일, 미디어 삼성은 신경영 22주년을 맞아 후쿠다 전 삼성전자 고문을 만났다. 1989년 삼성전자 정보통신 부문 디자인 고문으로 삼성과 인연을 맺은 그는 1993년 당시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기폭제가 됐던 <후쿠다 보고서>를 작성했던 인물이다.

신경영 정신을 되새기고자 일본까지 찾아간 취재팀에게 후쿠다 전 고문은 의외의 말을 남겼다. 그는 지금의 후배들에게 "신경영은 잊어라"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지 말고 완벽하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뜻. 4시간 여 진행된 인터뷰 동안, 그는 1993년과 마찬가지로 삼성에 대한 애정을 담은 날카로운 조언을 쏟아 냈다.

신경영 이전의 삼성 디자인은 1.5류에도 미치지 못해

Q. 1989년 삼성전자 디자인 고문으로 오셨습니다. 당시 디자인 수준은 어땠습니까?
모방 제품이 많아 컬처 쇼크(문화 충격)를 받았습니다. 서울 시내 백화점에 제품을 보러 다녔는데 일본이나 유럽 어딘가에서 본 것과 똑같은 디자인이 많이 보였습니다. 당시 한국 디자인 수준은 1.5류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일본 회사의 경우에도 소니가 1류라면, 파나소닉은 1.2류, 샤프나 산요는 1.5류였습니다. 삼성의 포지션은 당시 2류였습니다.

삼성에 새로 몸담은 저로서는 충격적인 일이었기에 디자이너들에게 "절대 흉내 내지 마라. 오리지널이 아니면 세계 시장에서 이길 수 없다"고 당부했습니다.

Q. 삼성전자의 문제는 무엇이었나요?
당시 삼성의 디자이너들은 대학에서 구태의연한 디자인 교육을 받은 경우가 많아 최신 디자인 콘셉트나 프로세스 등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습니다.

예를 들어 신제품 TV 디자인을 고민할 때 디자이너들이 곧바로 연필을 들고 이런 형태는 어떨까 하면서 스케치를 했습니다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왜냐하면 디자인 콘셉트를 통해 왜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지, 사용자는 어떤 형태를 원하는지, 시장 트렌드는 어떤지 그러한 것을 먼저 고민해야지 스타일이 먼저 나와서는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삼성전자에서는 "제품 안에서는 이런 골격과 기판이 있고 버튼 수가 이 정도다"라는 스펙을 설계자가 모두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내부는 이런 형태니까 외형을 디자인해달라"며 디자인실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사실은 순서가 반대여야 합니다. 디자이너가 먼저 제안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녹음기라면 책상 위에 놓고 녹음하기 괜찮은가, 버튼을 실수하지 않고 누르기에 괜찮은가, 이러한 부분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내부 구조부터 생각하면 안됩니다.

소비자가 사용하는 프로세스, 적당한 크기, 들고 다닐 때의 편의성 등 다양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시나리오, 상품기획, 디자인, 기구설계 부서가 각각 있지만, 상호 간에 제대로 연계되지 않으면 수준 높은 제품이 나오지 못합니다. 당시 삼성은 그런 연계 없이 따로따로 분리돼 있었습니다.

한편 한국 사람은 윗사람을 존경하는 유교정신이 있는데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심해 상사가 하는 말은 모두 맞는 말이라고 여겼습니다. 예를 들어 사원이 좋은 디자인을 제안해도 좀처럼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디자인은 창조적 활동이라 정답이 없으며, 때로는 젊은 사람의 감성이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상대가 부장이든 임원이든 설득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설득 과정에서는 '싸워도 괜찮다'고까지 했습니다.

실제로 1994년인가 정보통신 부문에서 기구 설계파트와 디자인실이 마찰을 빚은 적이 있습니다. 기구설계 파트는 원가 10원이라도 낮추고 싶어하지만 디자이너는 원가를 10원 내렸다가 천만원의 이미지 손실을 입게 될까 걱정합니다. 디자이너가 모형을 들고 가서 기구설계파트 부장과 언쟁이 벌어졌는데 제가 한국어를 잘 몰라서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디자이너가 더 이상 회의를 할 수 없다며 자신이 만든 모형을 밟아서 망가뜨리고 나가 버렸습니다.

저는 1990년부터 근무했는데 처음 3년간은 디자인실 내에서 강의를 하거나 다른 부문과 협업하는 일을 했습니다. 디자이너와 상품 기획, 디자이너와 기구 설계, 3자 모임, 디자인 관련 임원 회의에 매번 참석했습니다. 그때 느낀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담은 보고서를 매달 제출했습니다.

저는 디자인 고문으로서 다른 부문을 비판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전체적인 부분을) 말하지 않으면 회사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지기 어려우니 '상품기획이 없다', '기구 설계력이 약하다'는 등의 내용을 보고서에 담았습니다. 당시는 A4 용지 한 장이 상품기획의 전부였던 시절인데 정보통신 부문에서는 전화나 구두로만 전달될 뿐 그런 문서조차 디자인실에는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고자 아무리 보고서를 제출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3년 6월, 회장님이 제 보고서에 관심이 있으시니 지난 3년간 썼던 것들 중에서 중요한 내용을 정리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입니다.

Q. 당시 '후쿠다 보고서'의 파장이 대단했습니다.
회장님이 프랑프쿠르트로 가시는 비행기에서 제 보고서를 포함한 몇 개의 보고서를 읽고 "이런 일이 있었냐"며 크게 화를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자마자 국내에 있던 임원들을 불러들였고 곧 그곳에서 굉장한 회의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문제점이나 개선 방향을 보고하는 것이 고문의 일상적인 업무였는데, 보고서를 보신 회장님은 "아직도 삼성에 개혁해야 할 부분이 이렇게 많은가"하고 충격을 받으셨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저는 일본에 있었는데 일본삼성의 어느 분은 농담 삼아 "한두 달간은 서울에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면 돌을 맞을지도  모른다(웃음)"는 말을 했습니다.

두 달 뒤 한국에 갔을 때 분위기는 의외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임원 대상 강연회도 늘었고 잘 모르는 임원으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아, 리노베이션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삼성그룹 전체에 퍼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와 같은 일이 계속되면 절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단번에 조성된 것입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의해서.

Q. 실제 그 후 어떤 변화를 느끼셨습니까?
그 후 10년간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10년간 매출이 약 30배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그 짧은 기간 동안 30배 성장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보통은 기업에서 10개의 전략을 실행해 5개만 성공해도 괜찮다고 하는데 당시 삼성은 10개의 전략을 세워 10개 모두 성공했습니다. 실로 엄청난 기세였습니다.

진땀 났던 회장님과의 만남

Q. 회장님과의 회의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1993년 6월 5일 일본 도쿄 오쿠라 호텔에서 사장단 회의가 있었습니다. 오후 6시쯤 회의가 끝나고 다른 임원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회장님 방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 외에 다른 일본인 고문도 함께 갔습니다. 간단히 인사만 하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8시 반에 시작한 미팅이 자정이 다 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당시 회장님께서는 질문을 많이 하셨는데 이미 정답은 알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지금 시험당하고 있는 건가'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질문이 날카로워서 긴장했지만 모르는 거은 모른다고 대답하면서 디자인에 대한 답변은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 식의 질문을 하는 경영자는 처음이었습니다. 회장님은 세계 시장 내에서의 한국 디자인 수준이나 경쟁사 디자인 평가 같은 일반적인 질문은 물론, CAD와 같은 특정 기술에 대한 질문, 그리고 무엇보다 "디자이너에게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까지 하셨는데 식은 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디자인은 테크닉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씀드렸는데, 회장님 반응이 좋았던 것을 보면 제 대답이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1993년 이전에는 삼성의 임원도 '다자인=색상과 형태'라고 생각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에게 곧바로 그림부터 그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회장님만은 유일하게 달랐습니다. "삼성의 철학을 디자인에 담아라"라는 말씀을 듣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경영자는 일본에서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이 '판매촉진을 위한 디자인', 즉 '눈에 많이 띄고, 많이 팔리는 것이 좋은 디자인이다'라는 식이었으니까요.

Q. 회장님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에 감탄했었습니다. 전공은 경영이지만 공학이나 역사, 예술 등과 같은 폭넓은 관심사를 갖고 있구나, 개인적으로 깊이 있게 공부하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굉장히 조용하게 말씀하신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조용하게, 억양 없이, 일정한 톤으로, 천천히 말씀하시지만 질문은 굉장히 날카로웠습니다. 3시간 동안, 그렇게 긴장했던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뉴스핌 Newspim] 추연숙 기자 (specialke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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