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김세혁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첫 작품이 갖는 의미는 실로 대단하다. 그것이 크던 작던, 그리고 성공적이던 아니던 누군가의 시작을 알린다는 것만으로 첫 작품은 특별하고 설레며 소중하다.
배우 수현(30)에게 있어 첫발을 뗀 작품(영화)은 무려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이다. 아마 평생 추억이자 영예가 아닐까. 수현이 마블의 최신작 ‘어벤져스2’로 은막에 데뷔한다는 소식은 본인뿐 아니라 한국 영화팬에게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졌으니 말이다.
수현이 닥터 헬렌 조를 연기한 ‘어벤져스2’는 예상대로 극장가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개봉 12일째인 4일 전국 관객 700만 명을 넘어서며 1000만 고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엄청난 성과가 얼떨떨하다는 수현의 얼굴에선 생글생글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영화가 잘되니 비로소 홀가분하고 재미있어요. 이제야 제대로 즐길 준비가 됐다고 할까요. 사실 1년 전 찍은 작품이라 오래 기다린 느낌인데 반응이 좋으니 감사할 따름이죠. 부담되기보단 신나고 설레요. 작은 역할이라도 정말 좋은 경험이었죠.”
‘어벤져스2’ 출연을 계기로 수현의 배우생활도 확 달라졌다. 일단 국내외에서 그를 보는 눈길이 변했다. 무엇보다 딸의 길을 반대하던 부모님도 영화 이야기를 하며 농담도 주고받는다.
“부모님이 영화광인데 제가 배우 하는 건 반대하셨죠. 근데 찍고 나니까 관심도 가져주시고 ‘넌 슈퍼파워가 없더라’며 농담도 하세요. 처음 ‘어벤져스2’에 캐스팅된 후 부모님께도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기 조심스러웠죠. 결과물을 보고 나니 홀가분하고 여러모로 좋아요.”
지난달 중순 서울을 찾은 조스 웨던 감독의 말처럼 ‘어벤져스2’의 거대한 프로젝트는 수현의 오디션부터 시작됐다. 수현은 “지금 말이지만, 오디션 후 합격을 예상했다”며 은근 자랑했다.
“감독이 모든 동작이나 대사에 크게 호응해줬어요. 할리우드는 나이나 경력엔 관심을 갖지 않아요. 오로지 캐릭터에 배우가 적합할지만 고려하죠. 참 좋은 시스템이에요. 제 느낌에 오디션 직후 합격 같았어요. 나오자마자 ‘어떡해, 나 된 거 같아’라며 호들갑을 떨었다니까요. 제가 좀 내성적인데, 오디션에만 나가면 승부근성이 끓어올라요.”
수현의 영화 속 분량을 두고서는 팬들 사이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이 중에서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너무 짧지 않으냐”는 아쉬움. 스스로 ‘작은 역할’이라고 평가한 수현은 이제 막 첫발을 뗀 만큼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판빙빙(등장하자마자 죽는다)처럼 배우가 허무하게 소비되는 걸 조스 웨던 감독도 아쉬워하더군요. 헬렌 조는 그만큼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큰 역할도 아닙니다. 이제 막 시작한 만큼 앞으로가 중요하겠죠.”
헬렌 조는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어벤져스 팀을 지원하는 든든한 천재과학자다. 생명공학에 능한 그를 연기하면서 수현은 헬렌이 갖고 있는 본능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려 애썼다.
“헬렌 조는 본능에 충실해요. 어벤져스 캐릭터에 비해 약한 헬렌은 적들이 쳐들어오면 피아노 뒤로 숨는 등 연약한 면을 보여줘요.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와중에도 과학자로서 호기심과 욕심을 드러내요. 학자로서 욕구를 숨기지 않죠. 여담이지만 헬렌 조는 영어 외에 한국어도 쓰는데, 이건 감독의 배려에요. 헬렌 조의 연구실 동양인들도 한국 배우들입니다.”
수현의 말대로 헬렌 조는 인간이고 슈퍼파워도 지니지 않았다. 당연히 액션신도 없다. 아쉬울 법하지만 그가 몸담은 미국드라마 ‘마르코 폴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지난해 겨울 시즌1을 마치고 시즌2를 준비 중인 ‘마르코 폴로’에서 수현은 강인한 몽골 여전사 쿠툴룬을 연기한다.
“쿠툴룬과 헬렌 조는 전혀 달라요. 헬렌 조를 연기하며 아쉬웠던 액션은 ‘마르코 폴로’를 찍으면서 충분히 해소했죠. 쿠툴룬은 덩치 큰 남자와도 싸우는 강한 여성이거든요. 두 작품은 제가 맡은 캐릭터만큼이나 제작환경도 달라요. ‘어벤져스2’의 경우 환경은 편한데 제가 적응하는 게 어려웠어요. ‘마르코 폴로’는 황야에서 촬영한 탓에 배우들이 각자 알아서 익숙해져야 했죠.”
비록 하늘을 날거나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진 않지만 헬렌 조를 연기하며 어벤져스 팀과 함께 한 시간은 특별했다. 사실 마블의 캐릭터는 수도 많고 관계도 복잡해 논문 수준의 방대한 데이터를 자랑한다. 수현 역시 시나리오를 받아 들고 열심히 캐릭터를 분석해야 했다.
“캐스팅이 확정되고 나서도 시나리오는 한참 뒤에 받았어요. 마블에 관한 책이나 자료를 구해 무작정 파고들었죠. 워낙 마블을 좋아하기도 해서 흥미진진했어요. 개인적으로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가 맘에 들어요. 전까진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가 남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면, 스칼렛 위치가 합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죠.”
대작에 참여하며 화려한 시작을 알린 수현의 원래 꿈은 목소리를 쓰는 직업이었다. 앵커나 가수, 미디어쪽 직업을 꿈꾸며 공부도 착실하게 했다. 우연히 접한 연기에 재미가 붙었지만 어딘가 불안했다. 자신을 내려놓고 해체하며 3년을 돌아봤다. 다행히 KBS 드라마 ‘도망자 플랜B’를 통해 확신이 생겼다.
“배우가 좋았지만 잘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었어요. 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불안했죠. ‘이러다 크게 망하겠다’ 걱정이 컸어요. 근데 ‘도망자’가 길을 열어줬어요. 거기서 연기한 소피가 영어를 쓰는 캐릭터거든요. 디즈니 관계자가 ‘어벤져스2’ 오디션 명단에 제가 없는 걸 보고 추가했다더군요. ‘도망자’에서 영어연기 하던 그 배우 왜 빠졌냐면서요.”
쉬는 날이면 운동도 하고 친구들 만나 수다도 떤다는 수현. 그 와중에도 좋아하는 영화는 꼭 챙겨보며 연기에 참고한다. 정말 닮고 싶은 배우는 마리옹 꼬띠아르. 그리고 같이 연기하며 놀란 배우는 스칼렛 요한슨이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마리옹 꼬띠아르는 ‘내일을 위한 시간’ 보면서 참 연기 잘한다 생각했어요. 그 전 작품도 봤고요. 프랑스 배우가 경쟁이 치열한 할리우드에서 우뚝 서기까지 얼마나 노력했겠어요. 스칼렛 요한슨은 영화마다 얼굴이나 색깔이 확 달라져요. 섹시하면서 진중하고, 매번 다른 인물이 되는 게 놀라워요.“
첫 영화에서 많은 성과를 거둔 수현은 쏟아지는 축하와 칭찬에 “이제 막 시작“이라며 수줍어했다. 하지만 눈빛은 달랐다. 오디션에서 마블 관계자들을 사로잡았던 그의 눈은 벌써 다른 작품을 찾아 반짝이고 있었다.
“언제나 룰을 깨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여배우는 이래야 한다’는 일종의 틀이나 고정관념을 부순다는 의미죠. 물론 두려워요.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요. 전 그래도 늘 대비하려고요. 장면마다 의사전달을 잘하려면 영어도 더 다듬어야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 제겐 참 와닿더라고요.”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김학선 기자(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