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여성 특유의 배려가 묻어난 따뜻함. 딱 한 가지 여성성만 가질 수 있다면 어떤 걸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따뜻함’이라고 말했다. ‘섹시한 몸매’나 ‘아름다운 외모’는 생각도 안해봤다는 듯 망설임 없는 말투로. “따뜻함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제가 받길 원하는 거고 제가 사람들에게 많이 줘야 하는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충무로 대표 섹시스타’ 김혜수(45)가 영화 ‘차이나타운’(제작 폴룩스픽쳐스, 제공·배급 CGV아트하우스)을 통해 과감한 변신을 꾀했다. 화투판의 꽃 정마담(영화 ‘타짜’)일 때도, 섹시한 금고털이 도둑(영화 ‘도둑들’)일 때도, 비정규직 미스김(드라마 ‘직장의 신’)일 때도 줄곧 유지했던 여성성과 섹시미는 완전히 걷어냈다.
29일 개봉하는 영화는 오직 쓸모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차이나타운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온 두 여자의 생존법칙을 그린 작품. 극중 김혜수는 차이나타운을 지배하는 조직의 보스 엄마를 열연했다. 엄마는 냉혹하고 비정한 세상의 실질적 지배자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자기만의 조직을 일구고 군림하는 인물이다.
“사실 처음에는 출연을 거절했어요. 정서적으로 버거웠죠.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더군다나 영화는 더 깊이 들어가니까 그게 아주 큰 벽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적인 힘이 절 이끌었죠. 보통 이런 소재를 풀기 위한 일반적인 방식들이 있는데 그걸 따라갈 듯 빗나가요. 캐릭터를 풀어가는 그런 과정이 굉장히 새롭고 매력적이었어요.”
다행히 김혜수는 본격적으로 촬영을 준비하면서 정서적인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여기에 배우의 생각과 판단을 존중하는 한준희 감독의 도움으로 그는 조금 더 완벽하게 엄마에 몰입하게 됐다.
“막상 출연을 확정하고 나서는 영화에서 주는 어떤 어둠, 불편함 등 정서적 부담감을 덜었어요. 촬영 전 캐릭터 연구에 대한 구체적 작업에 들어가면서 잊어버린 거죠. 그랬더니 정말 영화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정말 다행이었죠. 그러지 못했다면 촬영은 물론 힘들었을 거고 끝나고 나서도 피곤했을 거예요.”
김혜수는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사실 제삼자가 보기에 정서적 깊이만큼 외적 변화도 충격이었다. 스크린 속 엄마는 뱃살이 두둑하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셌다. 게다가 울긋불긋한 피부에는 주근깨가 가득하다. 분명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선택. 하지만 정작 여기에 두 팔 걷고 나선 이는 김혜수 본인이었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장씩 콘셉트 사진을 보내며 의견을 보탰다.
“외적인 변신도 신경을 쓴 건 맞지만, 일부러 부각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단지 전 엄마가 어딘가에 존재할 거란 느낌이 강했죠. 모든 게 세팅이 된 거지만 현실적인 느낌을 가져가기 바랐고요. 그래서 여성성을 배제하되 남성적인 걸 가미하고 싶지 않았죠. 인위적이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하지만 구체적으로 만드는 건 막연했어요.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고 가장 최적화된 게 이 모습이죠.”
물론 외적 변화를 보면서 의문이 드는 점도 있다. 세월의 무게와 외로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두둑한 뱃살이 왜 김혜수의 것이 아닌 보형물이냐는 것. (누군가 말하지 않는다면 눈치채지는 못하겠지만)막상 알고 나니 캐릭터 디테일을 살리는 데 앞장선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했다.
“피부 상태, 체형 등이 생존에만 집중해서 아주 방치된 상태이길 바랐죠. 하지만 몇 주 사이에 20kg 정도를 찌우는 건 불가능했어요. 제 체질상 그렇게까지 찌지 않거든요. 물론 3~4주 동안 몸만 키우려고 한다면 그럴 수 있었겠지만 그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작품이 아주 중요하고 그렇게 하시는 분들도 있죠. 하지만 엄청난 손상인 줄 알면서 하는 건 무모하다고 생각했어요. 더군다나 더 좋은 방법도 있었고요(웃음).”
글로 옮겨 적지는 않았지만 사실 김혜수는 공식 석상에 이어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입이 닳도록 후배들을 칭찬했다. 함께 출연한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여러 차례 극찬했던 천우희까지. 안쓰러우면서도 그리 예뻐 보일 수가 없단다. 이래서 후배들이 잘 따르나 보다는 말에 “그들이 좋았다면 그걸로 고맙다”며 싱긋 웃었다. 어느새 데뷔 29년 차, 그냥 특별한 사람들 속에 있는 기운이 좋았던 소녀는 어느새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충무로를 지키고 있다.
“배우가 아닌 인간으로서 자아를 갖기 전에 이 일을 시작했고 의지와 상관없이 일이 돌아갔죠. 취향이나 자의식이 생겼을 땐 이미 주관과 상관없이 많은 일이 진행되고 있었고요. 그래서 그걸 바로 잡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대외적으로 작품을 하면서도 내적으로는 자괴감에 시달렸던 거죠. 겉으론 멀쩡했지만, 꽤 오래 힘들었어요. 그런데 (김)고은이를 비롯해서 요즘 친구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고요. 전 아직도 공연장이나 영화에서 가능성 있는 배우를 보면 기다렸다가 이름을 찾아서 적어놓곤 해요. 그런 순간을 목격하면 너무 좋죠. 자랑스럽잖아요(웃음).”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