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영화 ‘스물’에는 세 명의 남자와 네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스물을 맞이한 혈기왕성한 세 친구 치호(김우빈), 동우(이준호), 경재(강하늘). 그리고 이들과 얽히고설킨 소민(정소민), 소희(이유비), 진주(민효린), 은혜(정주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스토리상 세 남자만큼은 아니지만 이들 네 명의 이십 대 여성들 또한 치호, 동우, 경재 못지않게 그들만의 고단한 삶과 고민 속에서 부딪히고 깨지며 성장해 나간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이 가는 이를 꼽자면 바로 배우 지망생 은혜. 그의 주위에는 소민처럼 웃음을 주는 친구들이 있지도 않고, 소희처럼 오빠들이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진주처럼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성공이 인생 최대 목표인 그에게 자존심과 사랑은 모두 사치일 뿐. 어쩌면 은혜는 네 명 중 가장 드문 직업과 상황에 처했지만, 꿈을 향해 허덕이는 고단한 우리네 스물과 가장 많이 닮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리고 배우 정주연(26)은 그런 은혜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유쾌한 영화에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무대 인사를 이번에 처음 가봤는데 갈 때마다 모든 자리가 차있고 호응해주셔서 재밌고 힘이 나요. 사실 전 처음 영화 볼 때 엄청 긴장했거든요. 근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정말 재밌는 거예요. 제가 나온다는 생각을 잊을 만큼요. 또 요즘 이런 유쾌한 영화가 없으니까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저의 스무 살을 다시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고요.”
정주연이 연기한 은혜는 부모도 감당 못하는 자유로운 영혼 치호를 유일하게 쥐락펴락하는 인물. 자타공인 바람둥이인 그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여자이기도 하다. 다만 정작 은혜에게는 치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자신의 꿈. 결국 은혜는 배우가 되기 위해 사랑하는 남자 대신 자신의 꿈을 밀어줄 스폰서를 택한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상황이긴 하지만)실제 스무 살 때부터 배우 일을 시작한 정주연은 그런 은혜를 얼마나 이해했을까.
“제 스무 살은 은혜와 달랐죠. 어쨌든 은혜의 직업이 여배우고 저 역시 아직 신인 배우라 괴리는 없었어요. 여배우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했고요. 다만 은혜는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꿈, 성공을 택한 건데 저는 그때 그런 생각조차 못했어요. 스무 살 때는 마냥 이 일을 하는 게 재밌어서 결과는 생각조차 안했죠. 어쨌든 스물의 저는 그 나잇대 누릴 수 있는 혜택이나 특혜를 다 누리며 보냈어요. 천천히 일하면서 제 사람들도 많이 얻고 일로도 조금씩 성장해 나갔죠.”
은혜와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을 정주연은 이제 스크린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은혜는 ‘스물’ 속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과연 시간이 흐른 후 은혜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정주연은 아마도 은혜가 배우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는 분명 더 큰 공허함이 따라왔을 거라 짐작했다.
“그렇게 꿈꿨던 톱배우가 돼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정상에서 뭐를 더 얻고 싶다는 생각은 안할 거예요. 대신 공허한 삶을 살고 있겠죠. 예전에 치호와 있었던 시간을 회상하면서, 또 과거 자신이 그렇게 놓쳤던 것들에 대해서 후회도 하면서 그렇게 외롭게 살지 않을까요? 전 사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을 함께 해줄 수 있는 사람들도요. 만약 은혜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다면 아마 은혜도 애초에 그런 길을 가진 않았겠죠.”
문득 정주연에게 영화 속 세 남자 중 좋아하는 남성상에 가까운 사람이 있냐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자신을 믿고 사랑해 준 치호, 생활력 강한 동우, 가장 현실적이지만 누구보다 순수한 경재까지, 실제 정주연이 원하는 이상형은 누구일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NO를 외쳤다.
“치호나 경재처럼 여자를 너무 몰아치는 스타일은 싫어요. 아무리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라고 해도 남자로서 매력을 못느꼈을 듯해요. 반면 동우는 많은 가족을 부양하느라 바빠서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신경을 많이 못써줄 거고요. 전 개인적으로 제가 존경할 수 있는 남자가 좋죠. 연상연하를 떠나서 내가 정말 의지가 되고 배울 점도 많은 남자를 만나고 싶어요.”
현재 영화 ‘스물’ 외에도 MBC 드라마넷 드라마 ‘태양의 도시’로 대중과 만나고 있는 그는 앞으로도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조금씩 걸어나가고 싶다고 했다. 이왕이면 가녀리고 소모되는 캐릭터보다는 강렬한 역할에 도전해 또 한 번 변화를 주고 싶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왜 한 번에 잘 돼서 주목받으면 그 인기가 금방 사그라들 수도 있잖아요. 제 성향상 그거보다는 제 나잇대에 겪는 과정들을 차근차근 겪으면서 내공이 많이 쌓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동안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면서 놓치지 않고 해왔다는 거에 스스로 만족감도 있고요. 어쨌든 그 시간이 모여서 지금보다 더 다양한 감정들을 소화할 수 있고 연기 외적으로도 많이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도 쭉 그렇게 이어가고 싶습니다(웃음).”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