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환의 문화의 향기<10> 차 문화와 커피문화의 충돌
차와 커피는 세계를 양분하는 음료라 할 수 있다. 둘 다 약간의 각성제 성분을 가지고 있어 기호식품으로서, 그리고 사람들과의 교제수단으로도 널리 활용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상당히 다른 물리적인 성격과 효능을 지니고 있다.
우선, 이들을 물에 넣어 끓일 때 커피콩은 열매라서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물이 끓으면 서서히 떠오르는데 반해, 찻잎은 물위에 떠있다 물이 끓으면 서서히 가라앉는다. 이런 물리현상과 비슷하게 커피는 신진대사를 왕성하게 만들어줘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차는 심신을 차분하게 만들어줘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또 이들이 지닌 문화적인 특성도 차이가 난다. 차는 그 맛이 부드럽고 감칠듯하며 우아하고 격조 높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에 비해 커피는 쌉쌀한 그 맛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받게 되며 강렬한 향을 통해서는 활력있는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영어 표현에서도 차이가 난다. 차를 마시는 시간을 'Tea Time'이라고 하는 데 비해,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Coffee Break'라고 한다. 커피문화권에서는 무엇인가 일의 속도를 올리고 싶을 때 커피를 마시지만, 차문화권에서는 한숨 돌리며 여유를 가지고 싶을 때 차를 마시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차 문화가 정적(靜的)이라면 커피문화는 동적(動的)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동양인과 영국인은 차를, 미국인과 영국을 제외한 다른 유럽인들은 커피를 주로 마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이런 등식은 대체로 성립하는 것 같다. 그런데 갈수록 커피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빨라진 삶의 속도와 비즈니스문화행태를 반영한 것이라 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영국인은 아침에 눈을 떠서 마시는 모닝티(Morning Tea)를 시작으로 아침 식사 때 마시는 브렉퍼스트 티(Breakfast Tea), 오후 시간에 여유를 가지고 마시는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 그리고 저녁에 마시는 나이트 티(Night Tea) 등 하루에 네다섯 번 정도 티타임을 가진다. 이에 비해 미국인은 커피를 특별히 시간을 정하지 않은 채 어떤 집중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 있으면 그때마다 수시로 커피를 마시는 경향을 보인다.
지금은 대표적인 커피 문화권국가인 미국도 원래는 차 문화권 국가였다. 그런데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영국은 미국에서의 더 많은 세금징수를 위한 방책의 하나로 홍차 판매독점권을 동인도회사에 주었다.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보스턴 항구에 정박 중이던 동인도회사의 배를 습격하여 배안에 있던 차 상자를 바다에 던져버린 것이다. 이후 미국은 차 대신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그리고 커피문화를 비즈니스와 결합시켜 빠르게 세계로 확산시켜 나갔다.
이철환 하나금융연구소 초빙연구위원·단국대 경제과 겸임교수 ('아름다운 중년, 중년예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