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아카데미시상식장에서 포즈를 취한 에드워드 노튼 [사진=AP/뉴시스] |
[뉴스핌=김세혁 기자] 배우 에드워드 노튼(46)의 진가가 ‘버드맨’으로 다시 한 번 입증됐다. 1996년 데뷔작 ‘프라이멀 피어’에서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그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버드맨’에서 신들린 메소드 연기를 선보이며 객석을 휘어잡는다. ‘버드맨’은 히어로무비 주인공으로 얻은 돈과 명예를 모두 날린 퇴물배우가 브로드웨이를 기획하는 인생이야기. 여기서 에드워드 노튼은 극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최고의 조연을 연기했다.
에드워드 노튼이 맡은 캐릭터 마이크 샤이너는 ‘버드맨’에서 브로드웨이 무대를 준비하는 리건(마이클 키튼)의 구원투수로 등장한다. 샤이너는 독설로 무장한 악명 높은 평론가조차 인정하는 연기파. 그의 등장에 리건과 배우들은 일제히 반색하지만 실상 샤이너는 메소드에 심취한 ‘돌아이’로 비쳐진다. 언제 어디서든 사이코 짓거리도 서슴지 않아 동료들은 그를 시한폭탄마냥 두려워한다.
“맞아요. 시한폭탄. 샤이너는 정말 허리케인 같이 등장해요. ‘버드맨’ 속 캐릭터들은 마치 연극이라는 핀볼 게임기 안에서 돌아가는 자아들의 결합체 같은데, 그 중에서도 샤이너는 단연 강렬하죠. 매우 파괴적이에요. 저조차 때론 난감했는데,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샤이너에 대한 두 가지를 알 수 있었어요.”
샤이너로 또 한 번 진가를 입증한 에드워드 노튼 [사진=AP/뉴시스] |
“샤이너는 매우 흐트러진 인물이지만 실제로 그의 모든 관점이 다 옳다고 느껴졌어요. 일테면 리건을 겨냥한 ‘그런 걸로 초보처럼 화내지마. 당신 행동이 사람들의 마음에 들 순 없으니까’란 대사죠. 샤이너는 매사에 휘둘리는 리건을 조롱하지만, 듣고 보면 다 옳은 말이더라고요. 둘째, 리건의 딸 샘과 옥상 신에서 알 수 있듯 샤이너는 대단히 자각적이에요. 자신이 연기 외엔 별로 기능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죠. 이런 두 가지 요소 덕에 관객은 얼간이 같은 샤이너를 조금씩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돼요.”
명문 예일대 출신인 에드워드 노튼은 영화에 앞서 연극을 접했다. 에드워드 앨비의 희곡을 다루는 뉴욕 시그니처 플레이어스 극단 소속이었다. ‘버드맨’의 소재가 브로드웨이고, 감독의 연출이 무대에 가깝기에 그의 감각은 자연히 더 도드라졌다.
“무대 출신이라 그런지 모든 게 사실적으로 다가왔어요. 연극판에 ‘전구를 갈기 위해 필요한 연극배우의 숫자는?’이란 농담이 있는데요, 답은 100명이에요. 한 명은 전구를 갈고 나머지 99명은 ‘나라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었어’라고 떠들기 위해서죠. 웃기죠? ‘버드맨’ 시나리오를 읽고 전 브로드웨이 사람들이 완전 흥분하겠다 싶었어요. 리건과 샤이너의 대립을 본다면 뉴욕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할 것 같았죠. 연극계의 애증과 자기 방어적 자존심, 근본적인 탐욕을 각본가들이 정확하게 잡아낸 점이 놀라웠어요. 시나리오를 읽고 ‘아니, 연극인도 아닌데 어떻게…’란 생각에 질투가 날 정도였죠.”
제87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버드맨'으로 생애 세 번째로 노미네이트된 에드워드 노튼. 아쉽게도 남우조연상 수상에는 실패했다. [사진=AP/뉴시스] |
“원래 영화 촬영은 연극과 많이 달라요. 카메라와 관계, 배우와 카메라 사이의 리듬은 영화만의 독특함이죠. 그런데 감독은 ‘버드맨’을 지독하리만큼 롱테이크로 찍었어요. 이렇게 독특한 시점은 분명 연극과 비슷해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영화의 친밀함은 그대로였어요. 즉, 이번 작업 자체는 연극 같지 않았지만 느낌이 무대와 비슷했죠.”
에드워드 노튼이 언급한 이냐리투 감독의 롱테이크 촬영 방식은 배우들에게 무척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에드워드 노튼은 여기서 끈끈한 동지애를 느꼈다.
“뭐랄까, 익숙한 리듬이 아니어서 더 끈끈한 동지애가 샘솟더군요. 영화 촬영은 협동 작업이지만, 보통 사람들이 친숙한 리듬에 빠져버리죠. 일테면 자기 파트가 아닌 경우 ‘지금은 대기할 차례니까 긴장을 좀 늦춰도 돼’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버드맨’은 달랐어요. 모든 테이크마다 배우와 스태프들의 책임이 따랐죠. 죄다 참여하지 않으면 단 한 장면도 만들어질 수 없었어요. 그래서 다들 실수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졸였죠.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해 서로 의지하고 힘을 합쳤어요. 사운드나 카메라, 장비와 소도구 담당 등 모두의 역할이 똑같이 중요했어요. 마치 줄다리기를 하는 팀 같았죠.”
에드워드 노튼이 꼽은 '버드맨'의 명장면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
“제가 속옷만 입고 마이클 키튼과 몸싸움하는 장면은 정말 재미있어요. 마이클이 제 팬티를 보고 웃었고, 저도 따라 웃음이 터져 몇 번이나 NG가 났죠. ‘버드맨’에서 전 퇴물배우에게 ‘무대 연기란 이런 거야’라고 과시하고, 리건은 그런 절 철없는 아들을 보는 아버지처럼 다스리려 해요. 마이클 키튼은 정말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더군요. 멜로드라마처럼 슬프게 분위기를 잡다가도 갑자기 엄청 화를 내다가, 다시 엄한 표정을 지어요. 정말 놀라웠어요. 서로가 감탄하다 보니 좋은 장면이 많이 나온 거 아닐까요?”
‘버드맨’을 유심히 본 관객이라면 샤이너의 톤 변화를 감지했으리라. 무대 안이나 밖이나 메소드 연기에 심취한 나머지 사이코처럼 보이는 그지만 엠마 스톤과 찍은 옥상 신에서만큼은 진중하고 솔직한 캐릭터를 선보였다.
“잘 보셨어요. 엠마 스톤과 극장 옥상에서 찍은 장면이 가장 어려웠어요. 여러모로 더 친밀하고 솔직한 신이었거든요. 평소처럼 샤이너의 화려한 말발이 펼쳐지지도 않았죠. 샤이너는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지만 그 장면에서만큼은 조용해요. 감독은 그 장면의 대사를 계속 손봤어요. 저로서도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하기가 힘들었죠. 나중에 들었는데 엠마 스톤 역시 저처럼 긴장했다고 하더라고요.”
지난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베를린영화제에 참석했을 당시의 에드워드 노튼 [사진=신화사/뉴시스] |
“누군가 이냐리투 감독이 만들 영화라면서 시나리오를 꼭 읽어보라고 했어요. 책장을 넘기면서 당장 그를 만나고 싶어졌죠. 시나리오에는 ‘버드맨’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콘셉트가 없었는데도 그 자체로 의미심장했고 신랄했어요. 제가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세계가 배경이라서 반갑기도 했죠. 정말 하고 싶은 나머지 뻔뻔스러워지더군요. 이냐리투를 만난 자리에서 ‘이 캐릭터는 배우를 보고 캐스팅해야죠. 제가 도전하고 싶어요. 적어도 바닥부터 올라온 사람, 연극계를 어느 정도 알고 경험이 있는 사람이어야 해요’라고 말이죠.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어요.(웃음)”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