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보다 열정 일깨운 스토리
윤태호 작가의 인기 웹툰을 드라마로 옮긴 ‘미생’은 바둑으로 일가를 이루려던 청년 장그래(임시완)의 이야기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바둑을 그만둔 장그래가 냉혹한 사회와 마주하면서 겪는 온갖 고초가 드라마의 줄기를 이룬다. 일류 상사 원인터내셔널에 인턴으로 들어간 장그래가 따가운 시선을 묵묵히 견디고 영업 3팀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직장인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안겼다.
드라마 ‘미생’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 그리고 스펙에 따라 잣대를 달리 하는 우리 사회의 뒤틀린 단면을 꼬집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열정과 패기, 실력으로 이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보여줬다. 시청자들은 정직원을 목표로 뛰는 장그래의 눈물겨운 발버둥에 안타까워했다. 특히 19화에서 오차장이 사표를 던지자 장그래가 서럽게 우는 장면에 안방도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런가 하면, 장그래를 실력 하나로 받아들이는 영업 3팀과 신입 동기들의 의리에 시청자들은 자기 일인 양 박수를 보냈다.
tvN 드라마 ‘미생’은 배우 대부분이 튀거나 빠지지 않는 고른 연기력을 보여주며 안정감 있게 20화까지 완주했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편안하게 극에 몰입할 수 있었고, 캐릭터들이 골고루 사랑을 받았다. 장그래가 주연이지만 사실 모든 캐릭터가 주인공이라는 시청자들의 평가는 어쩌면 ‘미생’에 대한 최고의 칭찬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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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없는 탄탄한 연기
이런 배경에는 배우들의 땀에서 비롯된 탄탄한 연기가 버티고 있다. 지난해 영화 ‘변호인’으로 주목 받은 임시완은 ‘미생’으로 당당히 연착륙에 성공했다. 오차장(이성민)과 김대리(김대명), 천과장(박해진)도 코믹하고 진중하며 애잔한 연기로 ‘미생’의 재미를 이끌었다.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조차 어려웠던 이성민은 아픈 과거 탓에 장그래를 차갑게 대하는 오차장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해 주목 받았다. 특히 이성민은 무거운 스트레스를 소주 한 잔으로 달래는 직장인들의 고달픈 하루를 현실적으로 담아 박수를 이끌어냈다.
영업 3팀 천과장과 김대리, 그리고 장그래의 든든한 입사동기 한석율(변요한), 안영이(강소라), 장백기(강하늘)의 연기도 튀지 않고 극에 잘 녹아들었다. 이성민과 미묘한 기 싸움을 벌이는 최전무(이경영)와 트러블메이커 마부장(손종학), 천사표 선차장(신은정)의 활약도 돋보였다. 하대리(전석호)와 강대리(오민석), 성대리(태인호), 유대리(유형기) 등 대리들의 백업연기도 훌륭했다. 여기에 뒤태만 예쁜 재무부장(황석정)과 비리사원 박과장(김희원), 노루꿀 서진상(송재룡) 등 짧지만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배우들도 극의 재미와 긴장을 뒷받침했다.
‘미생’으로 주목 받는 배우는 많다. 특히 무명에 가까웠던 중고신인들의 반란이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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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만점 캐릭터들 – 배우의 발견
영화 ‘들개’(2013)로 주목 받은 변요한은 ‘미생’의 개벽이 한석율로 훨훨 날았다. 연극무대에서 입지를 다져온 강하늘 역시 장백기 캐릭터로 여심을 자극했다. 오차장에서 장그래까지 이어지는 영업 3팀은 원인터내셔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서였다. 메소드급 술주정 연기를 보여준 김대리와 훈훈한 수트핏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천과장도 ‘미생’의 인기를 견인했다.
장그래의 동기 안영이도 빼놓을 수 없다. 넘사벽 스펙에 영어, 러시아어까지 술술 구사해 시청자들을 홀린 강소라는 안영이를 통해 한 단계 진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백기와 툭툭 주고받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던 강대리도 인기 캐릭터 중 하나다. 안영이만 보면 못 잡아먹어 안달인 하대리는 특유의 표정(ㅡAㅡ)만으로 화제를 모았다. 마지막회에서 톡톡히 죗값을 치른 성대리와 구타를 유발하는 마부장도 미운정이 쌓였다.
직장인의 현실과 애환, 희망과 웃음을 담은 ‘미생’은 매회 어록을 양산하며 시청자들을 즐겁게 했다. 오차장과 장그래가 주고받는 “욕심에도 자격이 필요한 겁니까” “미안하다. 좀 많이” “노력의 양과 질이 다른 장그래” “버텨라, 그리고 이겨라” “그래, 더할 나위 없었다. YES” 등이 뭉클한 감동과 따뜻한 웃음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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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회 쏟아지는 어록과 팬아트, 명장면들
강대리가 툭하면 내뱉는 “장백기씨”와 안영이가 단 두 번 써먹은 “남대문 열렸어요. 인사 잘 받았다”도 인상적이었다. 마부장의 “단화 안신어?”와 유대리의 “어떡해요, 우리 이제 죽었어요”도 웃음을 줬다. 오차장의 선배가 던진 묵직한 한마디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는 많은 직장인의 공감을 얻은 명대사로 남았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팬들이 손수 그린 팬아트도 인터넷에 쏟아졌다. 영업 3팀 식구들을 일본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와 섞은 팬아트는 수준 높은 그림실력과 높은 싱크로율로 눈길을 끌었다.
그런가 하면, ‘미생’은 방송마다 명장면을 남기며 팬들을 설레게 했다. 4화에 등장한 장그래와 한석율의 프레젠테이션이 그 중에서도 손꼽힌다. 오차장과 김대리, 장그래가 일부러 상한 우유를 들이켜는 장면, 거래를 따내기 위해 술접대에 나섰다가 혼쭐이 나는 신도 큰 웃음을 선사했다. 영업 3팀이 원인터내셔널 대표(남경읍)까지 보는 앞에서 요르단 중고차 판매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과정 역시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장그래가 오차장이 손수 써준 연하장을 펴 보는 옥 상신은 특히 압권이었다.
■케이블의 반란, 지상파 자극하다
지난해 ‘응답하라 1994’로 케이블의 반란을 주도했던 tvN은 1년 뒤 ‘미생’으로 다시 한 번 안방극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수도권 최고시청률 15%를 넘게 찍으며 승승장구한 ‘미생’은 후속편을 제작해달라는 시청자들의 요구가 빗발치면서 향후 행보에도 눈길이 쏠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상파 방송사들로서도 자극을 받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이 쇼킹한 러브라인이나 막장 없는 ‘미생’에 무한 공감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생’이 자극적 소재와 막장에 시청자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기에, 지상파들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사진=tvN '미생' 캡처]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