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3년래 최저치 하락, 관련 종목 및 통화에 파장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일본은행(BOJ)의 예상밖 부양책에 아시아 지역의 환율전쟁에 투자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실상 지구촌은 ‘오일전쟁’으로 달아오르는 양상이다.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4일(현지시각) 미국 공급 가격을 인하한 데 따라 국제 유가가 3년래 최저치로 떨어졌고, 월가의 애널리스트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단행한 ‘서프라이즈’의 배경을 둘러싸고 갖가지 추측이 고개를 드는 한편 향후 유가 전망을 놓고 업계 애널리스트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유럽의 석유회사 주가가 일제히 급락했고, 산유국의 통화가 극심한 하락 압박을 받는 등 유가 하락이 금융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다.
◆ OPEC 가격 전쟁? 美 셰일가스 제동?
사우디 아라비아가 미국 원유 공급 가격을 떨어뜨린 데 대해 이른바 ‘OPEC 와처’들 사이에 다양한 각도의 진단이 제시됐다.
석유 시추[출처:AP/뉴시스] |
하지만 최근 수개월 사이 국제 유가가 25% 급락한 데 따라 회원국들 사이에 시장점유율을 지키기 위한 가격 전쟁 움직임이 번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앙골라와 리비아가 아시아 지역의 원유 수출 가격을 공격적으로 떨어뜨린 데 따라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 8월 이후 아시아의 공급 가격을 인하했고, 이 같은 움직임이 미국으로 번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투자가들과 산유국은 가격 전쟁이 보다 크게 확대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OPEC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경우 다른 회원국 역시 가격 인하에 나설 수 있고, OPEC에 소속되지 않은 산유국으로 이 같은 움직임이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미국 가격 인하가 셰일가스 개발에 제동을 걸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러시아와 이란 등 지정학적 측면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산유국에 경제적 충격을 가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웨드부시 증권의 마이클 제임스 매니징 디렉터는 “미국 중간 선거 결과보다 금융시장에 더 중요한 변수는 유가 움직임”이라고 강조했다.
◆ 미국 경제에 호재? ‘글쎄’
유가 하락은 통상 미국 경제에 호재로 받아들여진다. 전반적인 물가를 떨어뜨려 소비자 지출을 자극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번 유가 급락으로 미국 경제가 얻는 반사이익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 월가 이코노미스트의 판단이다.
UBS의 마이클 라이언 전략가는 “전통적으로 유가 하락은 부정적인 측면보다 긍정적인 효과가 컸지만 최근 상황은 경우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유가 하락은 소비세 인하와 같은 효과를 가져왔지만 미국이 주요 산유국에 해당하는 만큼 이번에는 호재보다 악재”라고 주장했다.
쇼크 리포트의 스티븐 쇼크 대표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원유 시장에서 미국과 본격적인 경쟁에 뛰어들었다”며 “사우디 아라비아가 미국과 원유 가격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면 최근 움직임은 글로벌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 금융시장 유가 급락에 ‘흔들’
이날 금융시장은 국제 유가 하락에 크게 흔들렸다. 원유 관련 종목의 주가가 급락한 한편 산유국의 통화 가치도 가파르게 떨어졌다.
유럽 프리미어 오일의 미국 증권예탁증서가 6% 가까이 내리꽂혔고, 서브시와 토탈 역시 3% 내외로 떨어졌다. 스타트 오일이 3% 이상 하락했고, BP 역시 3% 가까이 떨어졌다.
외환시장에서는 캐나다 달러화의 약세가 두드러졌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미국 원유 공급 가격 인하로 인해 캐나다 달러화는 장중 0.6% 하락, 달러화에 대해 5년래 최저치로 밀렸다.
노르웨이 크로네가 달러화에 대해 1.3% 떨어진 것을 포함해 31개 주요 통화에 대해 일제히 내림세를 나타냈다.
DNB ASA의 마네 오스트너 외환 애널리스트는 “크로네화의 하락 베팅이 지배적”이라며 “유가 하락과 이에 따른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가 크로네화의 추가 하락을 부추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날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는 장중 3.7% 급락, 배럴당 75.84달러까지 밀린 뒤 낙폭을 일정 부분 좁혔다. 이는 2011년 10월 이후 최저치에 해당한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기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