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김학선 기자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지난 26일 대우특별포럼에서 연설 중 끝내 눈물을 보였다. 이날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의 해체 과정의 애환과 억울함을 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가 공식석상에 등장한 것은 대우해체 이후 15년만이다.
이날 대우특별포럼은 뜨거운 분위기였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집행부가 대우그룹 해체의 부당함을 담은 서적 ‘김우중과의 대화’를 1인당 5권씩 살 것을 요청하는가 하면 인터넷 댓글로 주장을 널리 알려달라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15년간의 침묵을 깬 이 전 회장의 이같은 행보는 재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대우그룹은 1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재계 서열 1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현재 재계서열 1위를 차지하는 삼성그룹을 크게 앞서고 있던 국내 대표그룹 중 하나였다.
하지만 과도한 사업확장과 차입경영으로 인해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는 것이 현재까지 대우그룹에 대한 중론이다. 실제 대우그룹은 해체 과정에서 부른 피해는 막대했다. 정부에서 투입한 공적자금은 30조원이 넘었고 천문학적인 임직원이 순식간에 직장을 잃었다. 김 전 회장의 평가는 ‘실패한 기업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런 김 전 회장이 15년 만에 갑자기 입을 연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사실 정황을 두고 보면 이번 ‘김우중과의 대화’출판은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진행됐다. 먼저 저자인 신장섭 싱가폴국립대학 교수가 지난 4년 전부터 김 전 회장을 수차례 만났고 이어 대우 전직 임원들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주변 취재가 이뤄졌다.
실제 ‘김우중과의 대화’에는 익명의 대우그룹 임원이 대화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다. 신 교수도 이같은 사실이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는 책 서두에 ‘김 전 회장과 대우 임직원들에게 책을 내는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김우중과의 대화’ 출간을 통해 옛 경제관료와 대우그룹 몰락 과정에 대한 논란이 본격화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논란을 통해 김 전 회장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설로 굳었던 ‘실패한 기업인’에서 ‘부당하게 희생된 기업인’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의 해체 원인을 제공했다는 도덕적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가장 주목할 것은 바로 김 전 회장에게 부과된 추징금이다. 그는 대우그룹 해체 과정의 횡령, 분식회계, 사기대출 등의 혐으로 17조9000억원 가량의 추징금을 부과 받은 상태다. 그가 지금까지 납부한 추징금은 전체의 1%도 되지 않는다.
김 전 회장 측은 현재 이 추징금 자체가 ‘말도 안되는 판결’이라고 아예 부정하는 상황이다. 대우그룹 해체 자체가 경영 과실이 아닌 정부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벌어진 만큼 이 책임을 지우는 것이 부당하다는 논리다.
신 교수는 “김우중법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 경영자를 세 번 죽이는 행위”라며 “추징금은 증거도 없는 징벌적 판결이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김 전 회장이 입을 연 배경에는 지난해 이슈가 됐던 ‘김우중법(범죄수익 은닉 규제·처벌법 개정안)’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개정안은 제3자 명의의 차명재산을 추징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2월 제3자 명의 차명재산을 추징할 수 있는 일명 ‘김우중법’(범죄수익 은닌 규제 처벌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김 전 회장의 가족이 보유한 자산에 대한 조사가 가능해진다. 현재 ‘김우중법’은 지난해 국무회의를 통과했지만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김 전 회장이 법원의 판결을 뒤집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희생된 기업인’이라는 인식 전환에 성공한다면 이 추징금에 대한 여론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계산이다.
더불어 김 전 회장이 이같은 모험을 강행 한 것은 그의 숙원과 무관치 않으리라는 시각도 있다.
김 전 회장은 대우특별포럼에서 “이제 저는 미래를 가져선 안 되는 나이가 됐다”며 “남은 여생 동안 마지막 봉사라 여기고 글로벌YBM 교육에 힘써 우리 젊은이들이 해외로 많이 뻗어나갈 수 있도록 성심껏 도와주려고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가 2012년 설립한 글로벌YBM 사업은 현재 베트남과 미얀마 등에 집중돼 있다. 국내 청년을 해외에 교육, 취직시키는 이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김 전 회장의 ‘실패한 기업인’이라는 오명을 씻어야 될 필요도 있었다는 평가다.
[뉴스핌 Newspim] 강필성 기자 (fee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