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 저마다 유리한 항목 요구..7월 시평순위 발표 무산
[뉴스핌=이동훈 기자] 새로운 기준으로 건설사의 시공능력평가 순위를 매기려는 정부의 계획이 몇 개월째 지연되고 있다.
건설사들이 시평때 자사에 유리한 항목을 좀더 많이 반영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어서다. 시평은 건설사의 시공능력을 평가해 매기는 순위. 시평에 따라 공사 입찰이 제한돼 건설사들은 시평에 무척 민감하다.
정부는 당초 지난 2월까지 시평의 평가항목을 바꿔 7월부터 새로운 시평 순위를 적용할 계획이었다.
10일 국토교통부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한 시공능력평가제도 개선작업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다. 당초 국토부는 지난 2월에 제도개선 작업을 마치고 올해 시공능력평가 순위를 7월에 발표할 예정이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오는 7월말 발표되는 '2014 시공능력평가순위'부터 바뀐 시평 제도를 적용할 방침이었지만 제도 개선작업이 늦어져 불가능하게 됐다"며 "올해 시평 순위에는 반영하지 않고 내년부터 적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시공능력평가제도는 건설사의 시공능력을 금액으로 산정해 순위를 매기는 제도다. 시공능력은 공사실적, 경영상태, 기술능력, 신인도 등을 종합해 평가한다.
평가 순위가 높으면 규모가 큰 공공공사에 입찰할 수 있다. 공공공사 입찰자격사전 심사제(PQ)의 심사 기준이 실적과 시공능력평가순위다. PQ는 100억원을 넘는 대형공사를 발주할 때 하는 심사다.
또 컨소시엄을 짜 대형 공공공사를 수주할 때 공사를 주도하는 주관사가 될 수 있다. 대규모 재건축사업에서 시공사를 뽑을 때 선정기준 역시 시평 순위다. 무엇보다 시평순위가 높으면 브랜드가 가치가 크게 뛰어오르기 때문에 건설사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셈이다.
시평 제도 개선이 늦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좀더 높은 순위를 차지하려는 대형 건설사들의 이해관계 때문. 자금사정이 좋은 회사는 경영상태와 신인도를 중점적으로 평가할 것을 국토부에 요구하고 있다. 반면 기술력과 영업실적이 좋은 곳은 실적을 중심으로 순위를 매겨줄 것을 바라고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업계 1위를 다투는 대형 건설사들이 저마다 자사에 유리하도록 시평 제도를 바꿔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제도 개선을 맡은 국토부도 업계의 요구와 민원 때문에 개선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나란히 1·2위를 차지한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의 시공능력평가액은 각각 12조371억원과 11조2516억원이다. 두 회사의 시평액 차이는 7854억원(6.5%)이다. 또 3위와 4위인 대우건설(9조4538억원)과 대림산업(9조326억원)도 시평액 차이는 4211억원(4.5%)이다. 때문에 재무상태나 공사실적과 같은 항목을 조금만 바꿔도 금방 1·2위와 3·4위 순위가 바뀐다.
건설업계에서는 해외건설 수주실적이 시평에 반영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도 나오고 있다. 해외건설 수주 공종 가운데 현대건설과 SK건설이 많이 수주하는 플랜트(발전소, 정유시설 등)는 토목건축 실적에 포함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들 건설사들은 시평 순위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다.
순번을 메기는 제도 자체에 대한 불만도 크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사실 시평 1위와 2위의 시공능력 차이는 거의 없는데도 1등과 2등이란 인식 때문에 건설업계가 시평에 더 목을 매달고 있는 실정"이라며 "시공능력평가 금액을 그룹으로 만들어 1그룹, 2그룹으로 매기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 하다"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이동훈 기자 (dong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