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영화 ‘만신’은 중요무형문화재인 무당 김금화의 삶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김금화의 자서전 ‘비단꽃 넘세’가 바탕이 됐다.
일제강점기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김금화 만신(무당을 높여 부르는 말)은 위안부 소집을 피해 열네 살 어린 나이에 결혼하지만 모진 시집살이을 견디다 못해 도망친다. 이후 극심한 신병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열일곱 살이 되던 해 내림굿을 받는다.
하지만 무당이 돼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첩보활동을 한다는 누명으로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겨야 했고, 1970년대에는 새마을운동의 하나인 ‘미신타파’로 갖은 핍박을 받아야 했다. 다만 그 어느 순간도 만신으로서 자존감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역사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그는 현존하는 최고의 만신이 됐다.
만신은 무속신앙을 소재로 했지만, 결코 종교적 이해를 강요하지 않는다. 스크린으로 옮겨진 김금화 만신의 삶은 관객에게 아픈 현대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동시에 우리에게서 멀어진 민속문화와 토속종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냉정하게 말해 지금 무속신앙은 사람들에게 괄시도 받지 않는다. 그냥 무관심 속에 잊히고 있다. 시쳇말로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섭다고,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린 거다. 영화는 바로 이 부분을 자연스럽지만 명확하게 지적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눈에 띈다. 영화는 특이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판타지 다큐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장르를 쉽사리 정의하기 애매하다. ‘만신’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현대국악과 무가, 애니메이션과 인터뷰 자료, 그리고 배우들의 재연을 과감하게 버무렸다. 신기한 것은 구성 요소가 많음에도 그 조합이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찬경 감독의 균형 있는 연출이 돋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되레 박 감독의 이러한 선택 덕에 설명만 늘어놓기 쉬운 다큐멘터리의 딱딱함을 피해갔다.
14세, 17세, 중년 김금화의 3인 1역 열연을 펼친 김새론과 류현경, 문소리의 연기는 단연 최고다. 일순위로 세 배우를 지목했던 박 감독의 뛰어난 선구안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사실 러닝타임(104분) 동안 배우들이 나오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 앞서 말한 수많은 부분 중 재연을 담당했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머릿속을 가장 많이 지배하는 것은 배우들이다. 대체 불가능한 연기력 덕이다. 세 사람의 폭발적인 연기는 영화의 세세한 부분까지 가득 채운다.
다만, 보통 상업영화가 안고 있는 오락성 혹은 같은 소재를 다뤘던 그간의 작품이 줬던 재미나 극적 긴장감을 원하는 관객은 다소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