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서정은 기자] "본사에서는 알지 못한 내용입니다."
올 해 '갑(甲)의 횡포'로 온 국민의 지탄을 받은 한 우유회사가 사건 초기 대응했던 방식이다. "실질적인 판매는 지점에서 이뤄지니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명하며 슬그머니 빠지려했다. 하지만 들불처럼 번지는 여론과 언론의 뭇매에 이 회사는 결국 회장이 직접 나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일을 자초한 셈이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은 비서 채용 과정에서 나이와 성을 차별했다는 기사가 나가자 이 우유회사와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거래소·예탁원, 20대 후반 비서 NO…'차별 논란' 참고) "대행사(프리머스HR)가 그렇게 한 것이지 우리는 알지 못하는 내용이다."
두 기관의 설명에 따르면 아웃소싱 업체(프리머스HR)를 통해 비서 면접자를 추천받아왔다. 이 과정에서 업체는 "좀 더 좋은 후보자를 보내기 위해" 지원자격을 20대 초중반, 여성으로 한정했다. '22세~28세 초대졸 이상 여성(비서학과 전공자 우대)' 이렇게 말이다. 성별을 여성으로 제한하는 건 남녀고용평등법, 나이를 제한하는 건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각각 위반하는 행위다.
보도 이후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실질적인 채용은 그 쪽에서 이뤄지니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전혀 몰랐고 기준에 대해서 제시한 적도 없으니 책임이 없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사안이 커지자 한국예탁결제원은 채용자격에서 나이 제한을 뺐고, 거래소 측은 공고 관련한 링크를 아예 삭제해버렸다. 기사에 같이 거론됐던 KBS 역시 비서 지원자격을 단순하게 수정했다.
프리머스HR 관계자는 "완전히 우리들의 실수였고, 거래소와 예탁원은 몰랐다"고 말했다. 갑과 을이 분명한 거래관계를 감안하면 이 자백이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진작에 고칠 수 있는 것을 해버리지 않는 사이 수 많은 20대 후반의 예비 비서들이 꿈을 접었다. 누구는 몰랐다고 하고, 누구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한다.
잘못된 관행을 바꿔야한다는 지적에 대해 발뺌만 한다. '몰랐다'는 말 대신 '몰랐으니 시정하겠다''부주의했으니 앞으로 잘하겠다'는 말이 먼저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말의 뒤가 허전하다. 숙원사항인 공공기관 해제 여부가 결정되기까지 얼마남지 않았는데.
[뉴스핌 Newspim] 서정은 기자 (lovem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