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기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사진)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원심의 심리가 일부 잘못됐다고 판단하면서 배임죄 논란이 한층 더 달아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예정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재판에서도 이 부분이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어 보인다.
대법원 1부(주임 고영한 대법관)은 26일 김 회장에 대해 징역 3년, 벌금 51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2007년 양도세 포탈에 따른 조세범처벌법 위반 및 독점규제법상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제외한 나머지 유죄 부분을 파기환송하고 나머지 무죄 부분에 대해서는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특히 한화그룹 계열회사가 다른 부실 계열회사 금융기관 채무에 대한 지급보증행위, 계열사가 보유한 부동산을 다른 위장·부실계열회사에게 저가로 매도한 사례 등에 대해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한 원심이 위법하다고 봤다.
다만 재판부는 한화그룹 차원의 부실계열회사에 대한 지원행위가 이른바 경영상 판단 원칙에 따라 면책돼야 한다는 피고인 주장을 배척한 원심 판단은 수긍했다.
김 회장 측이 주장하고 있는 경영적 판단을 인정하지 않은 것. 그룹 차원의 부실계열사에 대한 지원행위는 계열사 간 부당한 내부거래 등 변칙적 방법을 통해 이뤄진 점 등에 비춰 경영상 판단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사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재계는 이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추후 법정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현재로서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환영하는 분위기도 있다. 논란이 되어온 경영적 판단에 따른 배임죄의 사회적 논의가 더 구체적으로 진행될 계기가 마련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배임 규정이 무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대법원이 일부 긍정적인 방향에서 해석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면서 "배임죄 규정을 없애고 민사적인 책임이나 행정상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입법모색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그동안 배임죄가 기업인의 경영적 판단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사리사욕이 아닌 경영적 판단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할 때 이를 처벌한다면 기업인 누가 신규사업을 찾고 투자에 나서겠느냐는 논리다.
현재 김 회장 등 재계 총수들에게 적용된 배임죄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하거나 제3자에게 취득하게 하여 본인(회사)에 손해를 가하는 죄'다.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인 경우는 특정경제가중범죄처벌법에 의해 가중처벌된다.
형법상 배임죄(제355조 제2항) 및 업무상배임죄( 제366조), 상법상 특별배임죄(제622조, 제623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등이 자리잡고 있다.
실제 대한상의가 지난 4월 국내기업 292개사를 대상으로 '배임처벌이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49.0%)는 답변이 '준법경영에 도움이 된다'(42.8%)는 응답보다 많았다. 또, 국내기업 10개사중 1개사가 배임죄 처벌을 피하려다 경영차질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기업인들은 정당한 경영상의 결정도 나중에 형사처벌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실 배임죄 적용으로 법정에 선 재계 총수는 한 두명이 아니다. 삼성전자, 현대차, SK 등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의 총수들 상당수가 배임죄로 처벌을 받았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경영상 판단의 원칙'을 적용해 실패 여부와 상관없이 성실하게 경영상의 판단을 내린 경우라면 사법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 미국은 아예 배임죄 조항 자체가 없다. 민사로 다투면 될 문제를 형법의 테두리에 넣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일본의 경우도 배임죄가 존재하지만 명백하게 손해를 가할 목적이 있어야 처벌된다.
하지만 우리 현행법에서는 손해를 가할 목적이 없어도 손해 발생의 위험만 있으면 배임죄가 성립한다. 무엇보다 배임죄가 지나치게 모호하고 광범위하다 보니 어디까지나 처벌은 재판부의 판단에 달려있다. 같은 사안을 두고 판사의 판단에 따라 배임죄가 성립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셈이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