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는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 받는다. 우리나라가 외국인 환자 유치 등 의료서비스 산업화에 유리한 이유다. 의료서비스 산업은 높은 부가가치와 고용 증대 효과를 창출한다. 새 정부 역시 이에 주목하며 관련 정책 강화와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의료산업화의 핵심인 투자형 개방병원(영리병원)과 원격진료는 제자리 걸음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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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영리병원 범룽랏병원 전경 |
[뉴스핌=조현미 기자] “이번에도 결국…” 지난 22일 보건복지부가 제주 싼얼병원에 대한 설립 승인을 보류하자 나온 업계 반응이다.
◆ 영리병원 설립 번번히 실패
싼얼병원은 중국 텐진화업그룹의 의료 부문 자회사인 차이나스템셀헬스그룹(CSC)이 건립을 추진한 영리병원이다.
영리병원은 외부에서 투자를 받아 설립한 후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돌려주는 기업형 병원으로 의료산업화의 핵심으로 꼽힌다.
이달 중순까지만 해도 싼얼병원은 국내 첫 영리병원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SCS는 물론 제주특별자치도의 설립 의지가 강했고, 정부도 영리병원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정부는 돌연 설립 승인을 보류했다. 싼얼병원이 제시한 시술에 대한 안전성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기대를 모았던 국내 영리병원 설립은 또 다시 뒤로 미뤄졌다.
우리나라에서 영리병원 도입이 논의된 것은 10년이 넘었다. 정부는 지난 2002년 12월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경제자유구역법) 통해 영리병원 도입을 처음 거론했다.
침체된 내수시장을 활성화하고 고용을 늘리려면 외국인 투자가 필요한데 외국인 투자가 활발한 영리병원이 이에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영리병원 도입에 따른 국내 의료서비스 산업의 부가가치는 21조원, 고용증대 효과는 21만명에 달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총산출과 총고용이 0.3% 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내국인이 외국법인과 합작해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설립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법적 근거는 마련됐지만 시행까지는 쉽지 않았다. 국내 8개 경제자유구역 중 영리병원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던 곳은 인천시와 제주도다.
인천은 2005년부터 인천 송도경제특구에 송도국제병원을 건립할 예정이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올 8월에는 인천시가 송도국제병원의 비영리화를 추진키로 하면서 영리병원 설립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이후 1호 영리병원 가능성이 높았던 제주 싼얼병원이 정부의 문턱을 못 넘으면서 영리병원 탄생은 한층 더 늦춰졌다.
◆ 규제에 발목 묶인 원격진료
원격진료 도입 역시 10년째 지지부진하다. 병원에 가지 않고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의사 진료 받는 원격진료는 정보통신기술(ITC) 강국인 한국이 매우 유리한 분야다.
산업적 가치도 높다. 원격진료가 활성화되면 내녀에만 3조원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정부와 산업계는 추정한다. 일자리 창출 효과는 3만9000명에 달한다.
새 정부는 원격진료를 핵심 미래산업으로 보고 공을 들이고 있지만 규제에 묶여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은 환자가 통신이나 화상 등을 이용해 의사의 진료나 처방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산간지역 등 일부 특수 지역을 제외하면 원격진료는 불법이다.
의사들의 저항도 크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원격진료는 의료 사고의 위험이 있고 동네의원을 죽이는 정책”이라며 “오히려 일자리를 없앨 수 있는 만큼 섵불리 시행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결국 정부는 한 걸음 물러났다. 정부는 지난 7월 원격진료 추진 내용이 제외된 서비스산업 정책 추진방향과 1단계 대책을 내놓았다.
원격진료용 장비와 관련된 제도가 없는 것도 문제다. LG전자는 수년전 휴대폰으로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당뇨폰을 출시했지만 판매 대리점별로 의료기기 판매업자 등록을 해야 하는 등 유통 절차가 복잡해 시장에서 금새 사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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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쉬헬스케어 원격진료 시스템 |
◆해외선 영리병원·원격진료 활발
우리나라가 지지부진한 사이 다른 국가에서는 영리병원 설립과 원격진료 도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태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싱가포르와 함께 영리병원이 활성화된 국가다. 한해 150만명이 넘는 외국인 환자가 진료를 받기 위해 태국을 찾는다. 방콕에 있는 범룽랏병원의 경우 매년 45만명의 외국인이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아온다.
태국 당국은 올해 외국인 환자 유치로 거둘 수익이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 역시 영리병원 설립과 운영에 적극적이다. 20년 전 영리병원 제도를 도입한 중국에는 2011년을 기준으로 750개가 넘는 영리병원이 개설됐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는 수년전 원격진료가 도입돼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원격진료 전 세계 1위 업체인 독일의 보쉬헬스케어는 60여개국에 진출해 있다. 100개가 넘는 원격진료용 건강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하루 이용자는 5만명이 넘는다. 2011년 북미에서 거둔 매출만 98억 달러(10조원)에 이른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미국계 의료기기 업체인 GE헬스케어와 손 잡고 의료용 모바일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국내 의료 시장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며 “원격진료 등 새로운 제도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조현미 기자 (hmch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