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정부가 올해 세제 개편안을 두고 막바지 작업 중이다. 다음 달 8일 공식 발표될 예정이지만 고심중인 내용은 이것저것 많이 알려졌다.
이번 세제 개편안을 둘러싼 공방과 논란은 예년보다 훨씬 더 치열한 것 같기도 하다. 새 정부가 들어선 첫 해 효과가 아닐까. 특히나 전 세계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우리 경제를 어떻게 살려낼 것인지 새 정부의 역할과 임무를 보는 눈이 더 매섭기도 하고, 대통령 선거 전 일었던 경제 민주화에 대한 기대감도 아직 가시지 않은 상황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직접 취재를 하지는 못했고 간접적으로 듣고 본 정부의 세제 개편 '예상안'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 중 하나는 이것이다. 경제 민주화에 어퍼컷을 맞을 것이라고 징징댔던 대기업들에는 생각했던(혹은 요구됐던) 것보다는 규제의 정도를 완화해 줄 것이란 예상.
대기업들이 자기 아들 같은 관련인이 갖고 있는 물류, 광고 계열사에 일감을 싹 몰아줘서 돈 벌 수 있게 해주는,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세금 물리기를 줄여줄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대로라면 상당 규모의 증여세를 내야했던 재벌가 경영진들은 부담을 한결 덜 전망이다.
이와 별도로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축소하기로 한 것은 예상이 아니라 '팩트'다. 국세청은 당초 정부가 약속했던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공격적인 발본색원에 나서서 세금을 거둬들이겠다고 했으나 세무조사가 무섭다고 우는 기업들에게 귀를 기울여 당초 예정됐던 세무조사 건수를 좀 줄이기로 했다.
정부의 명분은 경제 살리기, 경제 활성화다.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고, 경제 민주화한다고 기업 기를 꺾어놔선 안된다는 재계의 주장에 호응해준 것이다.
(출처=이코노미스트) |
여기서 나오는 얘기가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율을 낮출 것이란 예상이다.
이미 정책적인 목적, 즉 무자료 음성 거래를 양성화해 과세하려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보기 때문에 폐지론까지도 나왔지만 공제거리가 별로 없는데다 '유리지갑'인 직장인들의 원성이 높아서 어떻게 확정될 지는 모르겠다. 원칙적으로야 폐지를 한대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지만 직장인들은 '받았던 선물을 빼앗기는' 식의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요즘은 좀 잠잠해졌는데 연초부터 담뱃세 인상도 뜨거운 이슈였다. "국민건강을 위해서"라고 하면 크게 반대할 명분을 대긴 어렵다.
그런데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받겠다던 취지는 어디서 실현되고 있는지 의문이고, 재벌들을 몰아칠 것처럼 야단법석을 치더니 슬그머니 세무조사나 세금 징수를 줄여준다고 하면서, 담뱃세 인상이나 신용카드 소득공제율 인하 같은 것을 들고 나오면 비로소 "서민 호주머니만 털려고 하느냐"는 비판이 가능해진다. 정치권에도 서민을 방패막이로 포퓰리즘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셈이다.
정책에 있어 중요한 덕목은 일관성이다. 혹세무민(惑世誣民)도 없어야 한다. 경제 민주화 붐을 타 집권한 뒤 이를 실천할 것처럼 움직여 기대를 모으더니 슬그머니 "지금은 경제 활성화가 더 중요한 때"라며 마치 경제 민주화와 경제 활성화가 '반대말'인 것처럼 굴며 손바닥을 뒤집는 건 일관성을 깨는 것이자 혹세무민하는 것이다.
물론 중소기업들에 비해 고용 여력이 있는 대기업들이 고용 창출에 나서야 소비가 살고 궁극적으로 경제에 활기가 돌 수 있다. 그렇지만 고용 창출을 위해서 기업들 독려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인센티브를 이용할 수도 있다. 굳이 경제 민주화를 위해 추진하던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완화해주겠다는 건 '눈 가리고 아웅'이다.
기업 눈치보는 거야 미국도 다르지 않다.
중산층 일자리 창출을 위해 대타협안을 내놓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출처=월스트리트저널) |
우리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 법인세율 인하는 대선 때 이미 약속했던 것이었다는 점. 티모시 가이트너 전 재무장관도 작년 말 "2년 여간 고민해 왔다"며 대강의 얼개를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은 이렇게 공화당이 요구했던 대로 기업에 혜택을 주겠으니 정부가 도로 등 인프라스트럭처 건설에 투자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계획에 대한 반대를 접어달라고 정중히 청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타협안에도 문제는 없지 않다.
구글과 애플 등 미국의 부자 기업들은 법인세율을 내려준다고 해서 쉽게 미국 연방정부에 세금을 내게 될 지 의문이다. 이들 기업은 이미 해외에 페이퍼 컴퍼니 같은 것을 두고 돈을 빼돌려 쌓고 있다. 공화당 일부 의원들의 주장대로 지난 2009년에도 8000억달러가 넘는 경기 부양안에 합의해줬지만 경제 살리기에 성공하지 못했는데 뭘 또 합의해 달라는 것이냐고 따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관성만큼은 분명히 있다.
개인적으론 오바마의 대타협안이 때마침 잘 나왔다며 우리 재계나 정치권에서 '벤치마킹(?)'하려 들 지도 모른다는 기우도 든다. 미국은 이렇게 기업들 숨통을 틔워주려 법인세율을 내려주는데 우리는 왜 더 걷겠다고만 하는 거냐, 그러면서 일자리를 늘리라고 하는 건 심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정부는 또 기업들 달래주려 이들의 목소리에 흔들릴 것인가.
2011년말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법인세율(출처=OECD) |
대통령이 경제 민주화와 지하경제 양성화를 국정 과제로 내세우자 당장 대기업들 잡아먹을 것처럼 굴었던 정부다. 그러나 대통령이 기업을 몰아붙여선 안 된다고 한 마디 하자 곧바로 경제부총리와 경제검찰인 공정거래위원장, 국세청장과 관세청장 등이 회동을 갖더니 "기업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하는 법안에 대해서는 적극 대응하겠다"고 하는데 "일관성이 있다"고 평가할 순 없을 것 같다.
오늘 한 신문은 난타를 당하고 있는 정부가 안됐다는 기사를 실어 눈길을 끌었다. "세제 개편안 발표도 하기 전에 이렇게 난타당하면 정부가 뭘 어떻게 추진하겠느냐"는 것. 세제 개편에 대한 저항이나 떼쓰기만 불러오고 있다고 썼다. 정부 대변인이 쓴 기사 같다.
정책 발표 때까지 기다려 언론이 '받아쓰기'만 할 거면 사전에 정책 방향이 어떻게 갈 지 취재같은 것 안해도 좋다. '사회감시기능'까지 들먹이고 싶진 않지만 기자들은 필경사가 아니다. 때문에 정책이 어떻게 짜여질 지 미리미리 취재를 해야 한다.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판단되는 정책적 방향이나 내용이 있으면 기사로 써서 사회의 판결을 유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월급을 더 받고 세금을 덜 내거나 하진 않지만 말이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