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인이 죽으면서 일방적인 관계의 단절을 강요받는 정하. 이별과 배신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그는 처절하게 방황하고 갈등한다. 그러나 마침내 정하가 고된 미련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한 사람의 죽음으로도 끊을 수 없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비로소 '끝'을 맺는다.
'시작'은 관계의 시작이다. 이미 죽어버린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정하와 나루(김효진). 두 여자가 한 지붕 아래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은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모래성처럼 위태로운 긴장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 삐걱댐 속에서 두 여자는 '시작'으로 가기 위한 절차를 꾸역꾸역 밟아 간다. 체념, 이해, 집착. 모두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 재인과 나루가 재회하는 순간, 영화는 막을 내리지만 두 사람은 앞으로 이어질 관계의 참된 시작을 선언한다.
'끝'과 '시작'은 풀리지 않는 뫼비우스와도 같아서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문득 알아차렸을 때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다는 듯 이어져 있다. 영화는 그 오묘한 공존이 주는 이질감을 러닝타임이 지속되는 87분간 관객들의 귓가에 지긋이 속삭인다.
파격적인 동성애 코드와 진한 멜로로 살을 붙인 금지된 사랑,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독특한 액자식 구성은 새로움에 목마른 관객의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을 듯하다. 4년 전 만들어진 영화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세련된 영상미도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뉴스핌 Newspim] 장윤원 기자 (yunw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