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100억유로짜리 문제일 뿐이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CEO)는 글로벌 금융시장을 일시에 냉각시켰던 키프로스 문제를 찻잔 속 태풍으로 일갈했다.
키프로스의 국내총생산(GDP)이 유로존 전체의 0.5%, 애플 매출액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지만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당시에도 정책자들과 다수의 시장 관계자들은 그 파장에 대해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다.
키프로스의 외형이 보잘 것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유럽의 정책 향방을 진단하는 시험대로 가지는 의미는 작지 않다는 것이 투자가들의 주장이다. 또 유로존 주변국으로 전염 리스크를 완전히 배제하기 힘들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 러시아 ‘소방수’로 일약 등극
키프로스의 위기에 세간의 시선이 집중된 곳은 러시아다. 예금자 과세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을 때는 물론이고 의회 부결 후 후속 대책 역시 러시아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러시아가 기존 여신의 만기를 늘리는 것을 포함해 키프로스 구제금융의 총대를 메야 할 것이라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의회의 예금자 과세 방안 부결 직후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동성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급한 불을 끄는 데 역부족일 것이라는 얘기다.
러시아는 지난 2011년 12월 키프로스에 25억유로(32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했다. 키프로스 정부와 투자가들은 러시아가 채무에 대한 만기 연장과 이자율 인하 이외에 추가 자금 지원에 나설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의회 부결 이후 러시아 정부와 회담을 가진 마이클 사리스 키프로스 재무장관도 이번 회담에서 채무 만기 연장을 넘어서는 사안들이 논의됐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키프로스의 대형 은행을 러시아에 매각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S&P/다우존스 인덱스의 유럽 인덱스 전략가인 에드무드 싱은 “러시아 은행권이 키프로스에 직접 발을 들여놓고 은행권 옥석을 가리는 것이 해답”이라며 “러시아의 키프로스 예금 비중이 절대적인 만큼 러시아가 나서는 것이 키프로스에 숨통을 터주는 한편 유로존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르네상스 캐피탈의 이반 타카로브 이코노미스트는 “키프로스 문제를 계기로 러시아가 유럽의 구원투수로 나서게 될 것”이라며 “러시아가 유럽 내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대단한 호기이며, 실제로 구제금융 협상 과정에 러시아가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후속대책에 시선집중..유럽 ‘시험대’
키프로스 사태의 유로존 전염 여부를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유럽 정책자들의 대응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위기 대처와 공동통화권의 안정을 지켜내는 데 이들의 역량을 보여줘야 할 때라는 얘기다.
독일을 포함한 유로존 정책자들은 의회의 부결 이후에도 키프로스 정부에 100억유로의 지원 조건으로 58억유로의 자금을 조달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키프로스는 당장 ‘플랜 B’를 확보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휴업한 은행권 영업을 21일 재개할 때 발생할 파장과 이에 대한 대처 방안에 대해서도 해답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당장은 ECB의 지원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됐지만 주요 외신을 통해 자금 지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투표를 연기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상황이다.
JP모간의 알렉산더 화이트 애널리스트는 “키프로스 의회의 예금자 과세 부결로 판이 완전히 깨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 유로존 정책자들은 좀 더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며 “경제 규모나 필요한 구제금융 규모가 대단히 크지는 않지만 키프로스가 유로존의 위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키프로스 정부는 연금 펀드의 자산을 국채로 전환한 뒤 이를 매각해 유로존 정책자들이 제시한 58억유로 가운데 42억유로를 조달한다는 내용의 차선책을 마련했으나 이른바 트로이카(ECB, EC, IMF)와 국제 채권단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기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