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깍이 창업 중국 최대부호, 와하하(娃哈哈)그룹 회장
중국 경제가 세상을 집어 삶킬 태세로 웅비를 거듭하고 있다. 중국 기업인과 재벌들은 중국 굴기를 이끌어온 선지자들이다. 그들은 세계를 놀라게 한 ‘개혁개방 30년’ 중국 변화의 주역들이다. 서방의 한 학자는 '중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집단은 재벌 기업인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기업가와 재벌의 혁신 마인드는 지금도 무서운 속도로 중국을 바꿔가고 있다.
중국경제가 세계의 중심무대로 진입하면서 중국 재벌가와 부호들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개혁개방 초기 자영업 및 관료 지식인 창업을 통해, 이후 자본시장 체제개편과 국영기업 민영화과정에서 형성돼온 중국 재벌들은 시간이 갈수록 세계경제 무대에서 그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중국 경제의 오늘과 내일을 관찰하기 위한 작업으로 100대 중국의 재벌과 기업가들을 선정해 시리즈로 조명해본다. <편집자 주>
[뉴스핌=김영훈 기자] 쭝칭허우(宗慶後ㆍ68)는 인생의 중년기인 42세에 창업을 해 중국 최고 부호에 오른 인물이다. 2010년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최고 부호에 오른 후 2012년 105억달러의 자산으로 다시 포브스와 후룬의 중국 최고 부호에 올랐다. 세계 랭킹은 78위.
1945년생인 쭝 회장은 신중국의 격동기를 몸소 겪었다고 할 수 있다. 어린시절 가난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종종 그는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두려운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온 가족이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의 쥐꼬리 만한 월급에 기대 살았다. 그 역시 중학교를 마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농장, 차밭, 염전 등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청년 쭝칭허우 역시 또래 청년들처럼 머릿속에 많은 이상을 꿈꾸었지만 15년이란 세월을 생계 유지라는 긴 터널 속에서 버둥거려야 했다.
지독한 가난뱅이에서 중국 최대 부자로
그는 33세에 도시인 저장성 항저우로 나와 학교 내 공장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당시 중국은 개혁ㆍ개방으로 다른 세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마흔 문턱을 넘긴 1987년, 42세의 쭝칭허우는 친구 2명과 함께 친척에게 빌린 돈과 은행 대출을 받아 ‘와하하(娃哈哈)’의 전신인 아이스크림 가게를 시작한다.
쭝 회장은 “사업 아이템이 아이스크림이다보니 수익이 얼마되지 않았지만 첫해에 10만위안을 벌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89년 그는 항저우에 공장을 세우고 와하하 브랜드로 어린이용 음료수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회사 이름 와하하는 당시 유행하던 동요 제목이었는데 당시 이 점이 어린이 소비자들에게 크게 어필했다고 회사 관계자들은 말한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유기업 한 곳을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적자에 허덕이던 통조림 공장을 800만위안에 사들인 그는 종업원 2000명까지 동시에 인수했다. 종업원까지 함께 인수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사례였다.
와하하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효자 상품은 과즙 우유다. 쭝 회장이 고안해 낸 과즙우유는 2005년 출시된 이래 빠른 속도로 중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으며 해외진출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늦깍이 사업가인 쭝 회장은 이른바 성공 매뉴얼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누군가 와하하의 전략은 무엇인가 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그는 “와하하는 전략이 없다. 나는 8~9년 후의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내일 만을 고민할 뿐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신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일선에서 보낸다. 새 공장 부지를 물색할 때는 수십일간 직접 발품을 팔아 넓은 중국땅 절반을 누비고 다닌 적도 있다.
마오쩌둥 군사 전략 경영에 응용
기업인들에게 필수 스포츠로 여겨지는 골프도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수익을 내는 것 만이 기업가가 할 일”이라는 일념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젊은 사업가 못지 않게 끊임없는 변신과 사업 다각화, 혁신을 추구해왔다. 음료 사업에 이어 식품, 분유, 아동복까지 사업을 확장했고 지난해에는 유통사업에까지 뛰어들었다.
와하하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820억위안(약 14조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150여 개의 지사, 종업원 수는 3만명에 달한다. 3000여 개의 1급 대리점과 3만~4만개에 달하는 2급 대리점의 연간 수십억위안에 달하는 음료 판매와 배송 등이 와하하의 엄격한 관리 하에 이뤄진다는 것도 와하하 만의 특징이다.
쭝 회장은 마오쩌둥의 군사이론과 전략을 경영에 응용하고 있다. 거대한 기업을 이끌고 있지만 그는 모든 일을 혼자서 관장하는 스타일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그런 그를 독재자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최고 부호 임에도 여전히 검소한 모습과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아 남을 그를 두고 ‘천상 사업가’ 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회사 지배및 경영구조와 관련해 쭝회장은 외동딸 쭝푸리(宗馥莉)에게 경영권을 승계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와하하 2세경영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쭝푸리는 2005년 유학생활을 마친뒤 와하하의 샤오산(蕭山) 2호 지국 관리위원회 부주임으로 입사, 후계자 수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입사 뒤 분유, 소스, 기계, 포장, 수출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룹경영의 커리어를 관리해 가고 있다.
와하하 2세경영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쭝푸리는 2005년 유학생활을 마친뒤 와하하의 샤오산(蕭山) 2호 지국 관리위원회 부주임으로 입사, 후계자 수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입사 뒤 분유, 소스, 기계, 포장, 수출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룹경영의 커리어를 관리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