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화대출 트라우마도 한 몫
[뉴스핌=한기진 기자] 지난 2003년 원/엔 환율은 100엔당 730원까지 내려갔다. 엔화 값이 내려가자 엔화대출이 급증했다. 은행은 대출실적을 늘려야 했고 중소기업은 싼값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금융위기 직후 1600원까지 치솟자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엔화 대출을 쓴 수많은 중소기업과 개인 병원들이 순식간 두 배로 불어난 대출원금을 갚지 못해 부도가 났고, 은행을 상대로 소송전도 벌어졌다.
그러나 최근 엔화 값이 내려가면서 다시 엔화대출 유혹이 살아나고 있다.
원/엔 환율은 연초 한때(1월 9일) 100엔당 1514원에 달했던 것이 지난 13일 1283원까지 내렸다. 연초보다 엔화 값이 10% 이상 싸진 것이다.
이 같은 내림세가 지속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오는 16일 총선에서 승리가 유력한 것으로 점쳐지는 자민당이 집권했을 때 엔화가 상대적으로 약세를 나타낸 게 첫 번째 이유다.
또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 최근 달러 대비 엔화가 비싼 흐름이 꺾이지 않자 내놓은 무제한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최근 힘을 발휘하면서 엔화 값이 내려가고 있다. 아베 총재는 지난달 중순 2~3%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까지 시중에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경기 개선 움직임과 유럽 위험 약화도 안전자산 선호를 약화시키며 엔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엔화 대출이 크게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은행들이 환율 추세가 급반등할 우려를 하고 있어 자칫 과거 엔화대출 소송을 다시 당할까 우려하고 있다.
9월 말 현재 국내은행의 거주자 엔화대출 잔액도 1조1683억 엔으로 지난해 말의 1조2380억 엔보다 697억 엔 줄었다. 엔화대출 잔액은 지난 2008년 외화대출 용도제한 조치 이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가장 많은 엔화대출 자산을 가진 기업은행 관계자는 “과거 엔화대출 문제가 불거졌을 때 만기 연장을 해주는 등 어려움을 당한 적 있다”면서 “언제 또 엔고가 올지 모르는 환율 위험은 태생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엔화대출을 권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