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고객인지도에서 애플 '추월'
[뉴스핌=노종빈 기자] 삼성은 애플의 특허권 침해 소송에서 패배함으로써 대략 1조원이 넘는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줘야 할 처지다.
하지만 삼성에게 '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득'도 가져다 주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사건파일 : 미국의 도심에 쏟아진 콩나물
지금도 미국의 교포 사회에서는 예전 콩나물 판매로 크게 성공한 한 동양계 식재료상의 스토리가 회자된다.
젊은 시절 그는 콩나물을 싣고 직접 배달을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면서 콩나물을 담은 상자들이 떨어지면서 콩나물이 도심 거리에 온통 쏟아졌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콩나물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식재료였다. 미국인들조차 거리에 쏟아진 콩나물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담은 사진이 지역 일간 신문에 큼지막하게 보도됐다.
◆ 삼성이 뜻하지 않게 거둔 '콩나물' 효과
전화위복인 것은 그 뒤로 이 판매상에게 콩나물 주문이 오히려 크게 쇄도했다는 것이다.
이 사고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콩나물을 어디서 구입할 수 있는 지 알게됐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진위 여부는 접어두고 삼성에게도 이같은 '콩나물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바로 애플-삼성 간의 소송과 관련된 얘기다. 지난 8월 재판 결과 삼성이 애플에게 소송에서 완패했다고 인정할 경우 비용은 10억5000만 달러다.
이는 우리 돈 1조2000억원 가량 되지만 전문가들은 이보다 더 늘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애플과 삼성, 1조 2000억원의 의미는?
그렇다면 이같은 막대한 금액은 삼성과 애플에게 어떤 의미일까?
1조2000억원이라는 금액은 수백조원의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애플에게는 그리 큰 돈은 아닐 수 있다.
반면 삼성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을 전망이다.
내년 2월 미국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인 슈퍼보울의 30초 광고비는 400만 달러 수준이다.
이는 우리 돈으로 45억원 쯤되며 1초당 광고비만 1억5000만원인 셈이다.
하지만 1억 여명이 넘는 미국 소비자들이 지켜보는 단일 최대 이벤트라는 점을 감안하면 슈퍼볼 광고는 특별한 가치가 있다.
산술적으로 삼성의 소송패소 부담인 1조2000억원은 슈퍼보울 광고를 모두 사들일 수 있는 엄청난 돈인 셈이다.
◆ 전세계 모든 매체·황금시간대 '도배'
물론 애플은 삼성에게 소송에서는 이겼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애플의 소송 승리가 실익보다 상징적인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삼성이 애플에 패소한 소식은 미국을 비롯, 전 세계에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거의 모든 매체에 노출됐다.
전세계 언론이나 방송, 온라인 매체 등에서도 애플과 삼성의 소송 소식이 황금시간 대에 탑뉴스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삼성이 애플에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라이벌임을 소비자들에게 새롭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소송 이후 대부분의 현지 IT전문 매체들이 애플 아이폰과 삼성 갤럭시 제품을 양자 비교분석하는 쪽으로 기사의 방향을 틀고 있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 미국인들 '쌤성'…비교적 정확히 발음 시작
이같은 소송 소식의 실시간 노출의 결과 재미있는 현상도 생겨났다.
그동안 미국인들은 삼성의 발음을 정확하게 하지 못했으나 많은 방송에서 삼성의 이름을 정확하게 듣고 발음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아직은 미국 원어민들이 발음하는 삼성의 발음은 악센트를 앞에 둔 '샘성'또는 '쌤성'에 가까운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예전의 '샘슝' 보다는 훨씬 나아진 결과라는 얘기다.
실제로 이달 초 삼성의 브랜드는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적인 파워브랜드 랭킹에서 12위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35위에 비해 22계단 뛰어오른 놀라운 결과다.
애플과의 소송으로 패소는 했지만 이른바 '언더독 효과(강자에 맞서 강력하게 싸우는 약자)'로 전세계인들의 뇌리에 강렬히 각인됐음을 알 수 있다.
포브스 조사에서 1위는 애플이었다. 삼성보다 브랜드 가치가 앞서는 곳은 마이크로소프트나 코카콜라, IBM, 구글, 인텔, 맥도널드, GE, BMW, 시스코 등 이었다.
또한 이번 조사에서 삼성은 브랜드 인지도 부문에서는 9위를 기록, 11위에 그친 애플을 뛰어넘는 놀라운 결과를 보였다.
◆ 애플 고객들의 충성도 지속될까?
그동안 애플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고객들의 충성도는 북미 지역에서는 이미 종교적인 수준에 가깝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현지 교민들에 따르면 뉴욕과 같은 대도시나 고소득 전문직 계층 등에서는 아이폰이 여전히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하지만 이같은 흐름도 최근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소송 이전 북미지역에서는 삼성의 마켓셰어는 애플에 비해 대략 4배 정도 차이로 뒤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애플과의 소송이 진행될수록 삼성의 브랜드 인지도가 점점 높아졌다.
삼성 측에 따르면 미국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갤럭시 S3의 경우 "써보니까 괜찮더라"는 반응이 나오면서 예상보다 몇 배 이상 더 많이 팔렸다.
이처럼 실제로 판매금지 조치이후 삼성이라는 브랜드 인지도는 오히려 더 크게 올라갔다는 것이다.
◆ 삼성, 북미시장에서 애플 잠식 가능성 높아져
불과 1~2년 전만 해도 삼성의 미국시장에 대한 매출 비중은 글로벌 매출의 10% 안됐다.
하지만 현재는 브랜드 인지도가 크게 높아진 상태로 애플이 가진 시장까지도 점차 잠식해 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애플의 소송이 소송이 오히려 경영진의 커다란 악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애플의 삼성 소송으로 애플 고객들의 충성도 희석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소송으로 삼성은 잃은 만큼의 소득도 있었다"며 "삼성의 브랜드를 전세계적으로 인식시킨 효과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애플과의 소송은 삼성으로서는 잃을 것이 많지 않은 게임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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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