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지속성장 경영을 위한 선의의 경쟁 바람직
[뉴스핌=이강혁 기자] "정도를 넘는 악의적인 비방입니다. 기만이고 허위사실이죠. 해도 너무합니다."
"마케팅의 정당한 경쟁이죠. 소비자가 제품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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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LG전자가 냉장고 '용량' 경쟁을 결국 법정으로까지 가져갔다.
LG전자는 지난 24일 삼성전자가 지난 달부터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올린 '냉장고 용량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동영상 광고가 자사 제품을 비방할 목적의 부정경쟁행위라면서 서울지방법원에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각종 사업과 제품, 기술을 두고 툭하면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는 양사가 상호 비방전을 넘어 법적분쟁을 잇따라 벌이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삼성디스플레이가 LG디스플레이를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 유출 관련 가처분을 제기한 바 있다.
국내 전기전자제품 메이커의 양대 축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간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대립 혹은 마찰은 기업의 생존 경쟁차원에서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나 첨예하고 즉각 반사적으로 다툼을 벌이는 두 기업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시선도 있다.
양 그룹 사정을 잘 아는 재계 관계자들은 삼성과 LG의 전기전자 분야의 '총성없는'전쟁은 기업의 지속성장차원에서 전개중이며 이는 태생적인 배경도 작용하고 있다고 해석들 한다.
삼성과 LG, LG와 삼성의 각 세우기는 어쩌면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전자 분야의 진출을 결정하면서 태생적으로 이미 예고된 부분이라고들 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친구이자 사돈을 맺은 창업주 간 사업 불가침 약속이 깨지면서 삼성과 LG의 갈등 구도는 예견된 부분"이라면서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양사가 선의의 경쟁 측면으로 보여지기도 하지만 오랜 앙금이 각종 사업에서 충돌하면서 언성이 더 높아지는 것도 있지 않겠냐"고 해석했다.
이병철 창업주와 고(故) 구인회 LG그룹(럭키금성) 창업주는 사돈 관계다. 이병철 창업주의 둘째딸인 숙희씨가 구인회 창업주의 3남인 자학(현 아워홈 회장)씨와 결혼한 것. 숙희씨는 현재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상속재산 분할 청구소송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사돈 관계로 맺어진 두 창업주가 서로의 사업영역을 침범하지 않았기로 했었다는 것은 재계에 잘 알려진 얘기다. 두 창업주는 어린 시절부터 죽마고우이기도 했다.
삼성이 전자사업에 진출한 1968년 당시는 럭키금성이 이 분야의 국내시장을 거의 독점하던 때다. 하지만 이병철 창업주는 이 분야의 사업에서 승부를 걸지 않으면 삼성이 낙오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으로 과감히 삼성전자를 설립해 사업에 뛰어 들었다.
이병철 창업주의 장남인 맹희(전 제일비료 회장)씨는 그의 자서전 '묻어둔 이야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내가 강력하게 자동차와 전자를 동시에 시작하자고 주장했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전자를 먼저 하자고 주장했다"면서 "그 당시 아버지의 주장으로는 전자는 생산품 1g당 부가가치가 17만원인 반면 자동차는 1g당 3원 몇십 전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병철 창업주가 평소 흉금을 터놓고 지냈던 일본전기(NEC), 도에이, 미쓰이, 산요 등 일본 전자업계 경영자들의 조언이 전자사업 진출을 결정하는 데 크게 작용했다는 것. 맹희씨는 "NEC의 고바야시 사장은 특히 아버지에게, 삼성에서는 자동차보다는 전자를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력하게 이야기를 하곤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 삼성과 LG는 전자를 포함해 화학과 의류 등 사업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자 관계로 발전했다. 이런 태생적 이유와 수십 년간 이어지는 각종 사업의 대결 구도는 이제 글로벌 시장의 수성인 휴대폰, TV, 냉장고 등 가전제품 전반에서 불꽃튀는 대립각으로 이어지고 있다.
단적으로 한쪽이 기술이나 제품을 선보이면 다른 한쪽이 한발 더 진화된 기술과 제품을 들고 나오는 식의 라이벌 구도는 고착화된 상태다.
이번 냉장고 용량 경쟁도 지난 2010년 LG전자가 801리터 대용량 냉장고를 들고 나오자, 삼성이 몇 개월 뒤 840리터 냉장고로 맞불을 놨다.
이후 2011년에는 다시 LG가 850리터, 이어 삼성이 860리터, 또다시 LG가 870리터를 내놓고 본격적인 용량 경쟁을 벌였다.
올해 들어서도 삼성이 900리터를 세계 최초로 선보이자 불과 2주 뒤에 LG가 910리터를 내놓으며 경쟁은 결국 갈등 국면까지 치닫게 됐다.
양사의 이같은 경쟁적 대립각은 사실 글로벌 시장의 생존경쟁과 직접 맞닿아 있다. 급변하는 시장환경은 이미 무한경쟁 시대를 만들어놨고, 이런 경쟁체제에서 한번 밀리면 회복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TV, 모바일, 가전, 디스플레이 등 대부분의 사업부문에서 직접적인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라며 "최근 LG전자가 모바일 분야에서 뒤쳐졌기 때문에 강세를 보여왔던 백색가전 만큼은 뒤질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작용한듯하다"고 말했다.
이번 냉장고 동영상 광고가 소송까지 비화하는 게 단순히 '욱'하는 감정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재계 관계자들은 이해한다.
'격차 경영'을 추구하는 삼성을 향한 LG의 추격전은 만만치 않고 백색가전등 몇몇 분야에서는 앞지르고 있기도 하다. LG의 인화경영뒤에는 나름 전기전자제품 개척기업이라는 자부심도 깔려있다.
구자경 전 럭키금성( 현 LG)그룹 회장은 자서전 '오직 이길밖에 없다'에서 지난 1969년 국산1호 세탁기인 백조세탁기를 생산한 이후 누리던 세탁기 분야의 1등 자존심이 후발 경쟁사들에게 조금씩 무너지자 '빼앗긴 자존심'을 찾기위해 결국은 '인공지능 세탁기'를 개발한 과정을 자세히 말해주고 있다.
삼성과 LG의 자존심 싸움에는 나름 그룹의 역사와 문화가 얽혀있기에 선의의 격돌은 계속될수 밖에 없을 것으로 주위에서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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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