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무노동무임금’ 세비반납에 당내외 비판
[뉴스핌=이영태 기자] 매월 20일은 국회의원들이 세비, 즉 월급을 받는 날이다. 그런데 지난달 30일 공식 임기가 시작된 19대 국회에서 20일 첫 월급을 받은 국회의원들의 표정이 어둡다. 세비를 반납하기로 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물론, 야당인 민주통합당 의원들의 표정도 침울하다.
보라색으로 칠한 황소 모형.[출처: 구글이미지] |
세비를 받은 민주당 의원들 입장으로 보면 새누리당의 세비반납을 ‘정치적 쇼’라고 치부하고 있으니 세비를 받아도 꿀릴 게 없으므로 당당해야 한다.
그럼에도 양당 의원들의 얼굴을 보면 자신감은커녕, 불만만 가득 차 있다. 왜 그럴까?
새누리당 관계자의 말이다. “국회의원이 본회의 참석 안한다고 일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당에서 회의가 소집되면 참석해야 하고 지역구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지금도 지역구에서 주민들을 만나 민원처리를 하고 있는 의원들이 많은데 당 차원에서 무노동무임금이라며 세비를 반납하라고 하니 세비 외에 다른 수입이 없는 의원들은 생계유지조차도 힘든 지경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국회의원의 특권을 포기한다며 첫 번째 조치로 세비반납을 내세운 이유는 국회 개원 지연의 책임을 야당에 돌리려는 것이다. 우린 이만큼 특권을 포기하면서까지 개원을 중요시하고 있는데 야당이 발목을 잡아 개원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핑계거리로 세비반납을 활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국회 개원이 늦어져 누가 이득을 보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아니냐”고 반문했다.
◆ 첫 월급날이 잔칫날에서 제삿날로
새누리당 의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당 지도부의 강요 아닌 강요에 동원되니 울상일 수밖에 없고, 민주당 의원들은 ‘정치적 쇼’라고 치부하면서도 개원 지연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자신들이 지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으로서 첫 월급을 받고 좋아해야 할 잔칫날이 가난한 집 제삿날이 된 셈이다. 현재 국회의원들은 1인당 월 평균 1149만 원을 세비로 받고 있다.
이쯤 되면 새누리당의 세비반납은 ‘보랏빛황소’라는 말이 나옴직하다. 멀리서 보니 황소가 보랏빛으로 보여 신기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보라색을 칠한 황소에 불과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20일 아예 대놓고 공개방송에 나와 “지도부의 일방적인 강요에 의한 세비 반납은 수용할 수 없다”며 “무능한 지도부가 국회법에 정한 개원협상을 마무리시키지 못하고 그 책임을 전체 동료의원들에게 전가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산업현장에서 노사 간에 협상이 결렬돼서 노동자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행사했는데 그걸 무노동무임금이라고 해가지고 노동조합 탄압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게 무노동무임금”이라며 “사실상 국회 개원을 할 수도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국회에 도입하겠다는 그런 지도부의 의지 자체를 저는 믿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무임금 무노동이 자칫하면 산업현장까지 파급돼서 거기에 어떤 정당성을 부여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김 의원은 “그렇다”며 “지금 무노동 무임금이라고 해가지고 쉽게 말하면 노조나 노동자를 탄압하는 그런 기업 같은 경우는 매년 되풀이되는 악성 분규가 연장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 개원은 임시 국회가 임기 시작 후 7일 안에 하게 돼 있는데, 그걸 이뤄내지 못했으면 1차적으로 원내지도부가 사퇴하는 그런 관례를 만들어야 한다”며 “(당 지도부가) 자기네들 책임은 그냥 무시해버리고 세비 반납이라는 이 카드를 들고 나왔다”고 꼬집었다.
또한 “국회의원 전체 활동을 그것도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결정해버리고 그렇게 가자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김 의원은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 무능한 지도부가 국회법에 정한 개원협상을 마무리시키지 못하고 그 책임을 전체 동료의원들에게 전가를 했는데 그렇지만 정치적인 책임은 같이 지겠다”며 “6월 달 세비받는 부분을 저 자신이 판단해서 우리 사회에 어려운 손길, 꼭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런 곳에 저는 저의 세비전액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당 지도부의 결정대로 반납은 하겠지만 용처는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말이다.
김 의원은 19일 의원총회에서도 “동료 의원에게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시키면 국회가 바로 개원되느냐”면서 “지도부가 지금 할 일은 (세비미반납 의원) ‘명단공개’ 운운하며 동료 의원들을 줄 세우고 의원들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 앞에서 개원 지연에 대한 진솔한 사과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이 같은 비판이 나오는데 가만히 있을 민주당이 아니다.
◆ 민주당, 국회의원 연금폐지로 특권포기 동참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새누리당의 세비반납에 대해 “국민이 원하는 것은 어거지 세비반납이 아니라 국회개원과 열정적인 의정 활동”이라며 “일 안했으니 세비 반납하고 당당하게 국회파행을 즐기겠다는 새누리당의 태도에 국민이 아연실색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아울러 “의원회관 복도에서 볼멘소리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한다”며 “지금 새누리당 의원들은 치과의사 잘못 만나면 생이빨 뽑히고 원내대표 잘못 뽑아놓으니 생돈 뜯긴다는 불만으로 가득하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은 20일 국회의원의 평생 연금을 폐지하는 ‘대한민국헌정회 육성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의원 특권포기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청년비례대표 출신인 김광진 의원이 이언주·최민희 등 민주당 초선의원 19명과 함께 발의한 이 개정안에 따르면 전직 의원 중 현재 연금을 수령하는 일부 헌정회원을 제외한 모든 전·현직 국회의원의 연금제가 폐지된다.
현행법에 따르면 하루라도 국회의원을 한 만 65세 이상 전직 국회의원은 월 120만원씩 평생 연금을 지급한다.
김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과도한 평생연금과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으려고 한다”며 “민주당 초선의원들은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특권을 버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국회의원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초선의원들이 발의한 국회의원 연금제 폐지는 새누리당의 6대 쇄신안에도 포함돼 있는 내용이다.
여야가 국회의원으로서의 특권을 포기하겠다는 데 이를 나무랄 국민은 없다. 문제는 보랏빛 포장이 아니라 진짜 알맹이다.
정권을 잡겠다고, 혹은 교체하겠다며 대선전략에만 매몰돼 개원도 하지 않은 채 시급한 민생현안은 외면하고 있는 국회가 아무리 특권을 포기한다고 ‘쇼’를 한들 그 진정성을 인정해줄 국민 또한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러다 ‘국회의원 특권포기’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국회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올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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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이영태 기자 (medialyt@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