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미봉책이라는 비판에도 유동성 공급에 집착하는 미국과 유럽이 잠재돼 있던 복병을 만났다. 다름 아닌 유가 급등이다. 지정학적인 요인이 없지 않지만 근본적으로 천문학적인 유동성 방출이 고유가의 배경으로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양측의 통화완화가 적어도 단기적으로 금융시스템의 안정과 유로존 주변국 국채 수익률 하락을 통한 금융시장 안정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지만 고유가라는 부메랑으로 인해 경제 펀더멘털이 멍들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29일(현지시간)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국제 유가는 유로화를 기준으로 최근 6개월간 30% 이상 치솟았다.
특히 북해산 브렌트유는 최근 강한 랠리를 연출하며 배럴당 125달러까지 올랐다. 이는 2008년 기록한 사상최고치 145달러를 밑도는 것이지만 실수요자들의 화폐 단위인 유로화와 파운드화로 환산하면 각각 93유로, 79파운드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마켓워치의 칼럼니스트 매튜 린은 국제 유가의 급상승을 부채질하는 주요인은 수요 증가나 지정학적, 정치적 마찰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유동성 방출이라고 주장했다. 유가가 비싼 것이 아니라 주요 통화가 싼 것이 실상이라는 해석이다.
도이체방크의 모히트 쿠마르 유럽 국채 전략가는 “유가 상승이 ECB에 커다란 복병이 돌 것”이라며 “고유가로 인해 ECB가 시장이 채권 가격에 반영하는 만큼 빠른 속도로 금리를 내리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ECB가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시장의 기대만큼 추가 인하를 단행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다.
물가 역시 ECB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1월 유로존 인플레이션은 2.7%를 기록, ECB의 목표치인 2% 이내를 크게 웃돌았다. 마리오 드라기 총재도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유동성 공급으로 부채위기와 금융시스템 붕괴 리스크를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적인 사이클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 매튜 린의 주장이다.
그는 “실물 경기의 수요를 진작시켜 경기 회복을 도모한다는 것이 각국 중앙은행의 계산이지만 유동성은 국제 유가를 띄우고, 이 때문에 오히려 민간 소비가 더 위축되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투자자들이 금과 원유에 베팅해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머지않아 중앙은행은 유동성으로 풀어낼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직시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