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퍼사이클' 차단,, 새 위험 지적도
[뉴스핌=김사헌 기자] 미국을 비롯한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들이 단기적으로 6000만 배럴의 전략비축유(SPR)를 풀기로 했다.
최근 산유국들의 쿼터 확대 합의 실패 이후에 단행된 대량 석유소비국들의 석유 공급 결정은 최근 주요국 경제 여건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단기적인 공급 부족 사태를 예견하고 원유 거래 시장에 거품을 일으킬 수 있는 투기세력들을 조기에 막음으로써 이른바 '수퍼사이클'의 형성 고리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하지만 그 동안 가능한 한 유가 조절을 위한 시장 개입에 반대하던 IEA와 이를 주도하는 미국의 태도 변화는 새로운 위험을 여는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IEA는 총 6000만 배럴을 향후 30일 동안 매일 200만 배럴씩 풀어서 리비아의 공급 차질분을 해소하기로 했다. 리비아는 지난해 기준 일일 산유량이 170만 배럴 정도.
이 소식에 따라 23일 글로벌 시장에서 브렌트유 선물이 5달러 급락한 배럴당 109달러 수준에, 미국 서부텍사스산경질유(WTI) 근월물도 4달러 내린 배럴당 91.44달러에 거래됐다.
미국이 이번 비축유 방출량의 절반을 부담함으로써 상황을 주도한 것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금융 위기 이후 지속적인 경기 부양 노력으로 카드가 소진되고, 특히 통화 완화정책으로 인해 유가와 상품 가격이 급등하자 몇 남지 않은 경기 부양 시도로 활용된 측면이 강하다.
28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IEA의 긴 역사상 전략비축유가 방출된 것은 이번이 3번째다. 앞서 두 차례 비축유 방출은 1991년 중동 전쟁과 미국 카트리나 허리케인 피해가 배경이었다.
이번에는 리비아의 내전에 따른 석유공급 위기가 구실이 됐지만, 그 배경에는 미국 경기 둔화와 유럽의 위기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비축유 방출량도 리비아 공급 차질 규모를 훨씬 넘어서고 있으며 최근에는 세계 석유수요가 둔화될 조짐을 보이는 국면에서 단행된 것도 주목된다. 유럽이 리비아 공급 위기에 직면하기는 했지만 미국이나 세계 석유수급에는 차질이 없는 상태였다.
사실 선진국들은 지난 4월 배럴당 126달러까지 치솟았던 브렌트유 가격을 끌어내리고자 하는 강한 경제적 유인이 존재했다. 또한 여름 드라이빙시즌이 열리고 있는 상황이고, 더구나 내년 대선 등 선거를 앞두고 민심을 끌어들이는 정치적 동기까지 작용했다.
무엇보다 최근 유가 상승은 경제 성장을 가로막고 나아가 인플레이션 부담까지 지우는 요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 부양 수단도 떨어지고 또 재정 긴축을 요구받고 있는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들은 중앙은행의 추가 완화정책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IEA 회원국들이 비축한 16억 배럴의 석유는 훌륭한 활용 카드였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최근 일일 1000만 배럴까지 증산할 방침이라고 밝히면서 여유 생산능력은 50만 배럴에 불과해진 상태였다. 이제는 비축유가 위기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다.
다만 비축유는 방출된 이후 다시 축적할 필요가 있고, 또 이 완충장치가 고갈되기 시작하면 장래의 충격에 대비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험한 수단인 것은 틀림없다.
그 동안 IEA는 전략비축유를 함부로 방출하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견지해왔다. 비축유로 유가를 조절하려는 시도는 위험하고 또 실패할 경우 파장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펀더멘털한 수급 추세를 감안해 선물과 옵션에서 매수 포지션을 구축하고 있던 투자은행과 헤지펀드에게는 IEA의 행보가 상대적으로 제약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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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