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문형민 김연순 기자] # ABC투자자문 홍길동 대표가 분주해졌다. 20년간 자산운용업계에서 몸담으며 꿈꿔왔던 자신의 이름을 내건 헤지펀드를 만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홍 대표의 아침 7시30분 첫 일정은 투자자들과의 조찬을 겸한 자리다. 당국이 정한대로 5억원 이상을 투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큰손'들이다. 사실 이들과 홍 대표의 인연은 처음이 아니다. ABC투자자문을 설립하고 일임계약 5000억원 이상의 잘나가는 자문사로 키울 수 있게 도와줬던 귀한 고객들이다. 벌써 몇년째 시장의 부침 속에서도 일관되게 믿고 맡겨 주신 분들이다.
이미 기관 자금을 모아놨기 때문에 이날 조찬에 참석한 투자자 중 몇 명만 결심하면 최소 헤지펀드 자기자본 60억원을 맞출 수 있다. 프라임브로커 계약을 맺기로한 DDD증권사가 소개해 준 00연금 등과 얘기가 잘 되면 헤지펀드 규모는 200억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
홍 대표는 가급적 200억~300억원 정도 규모로 1호 헤지펀드를 설립할 생각이다. 프라임브로커로부터 최대 400%까지 차입(레버리지)할 수 있으므로 시장의 흐름이 확실하게 보일 때는 과감하게 베팅할 수 있다.
점심 약속은 싱가포르에서 헤지펀드를 운용하던 시절 주니어급이었던 후배다. 이 후배는 시장을 흐름을 보는 시각이 남달라 싱가포르에서부터 눈여겨봤다. 기대대로 월등한 수익률을 자랑하는 매니저로 성장했다. 마침 휴가차 국내에 들어와있어 헤지펀드 설립 동지로 영입하기 위해 만나려는 것이다. 이 후배만 오케이하면 전문인력 요건 3명도 채울 수 있다. 해외에서 헤지펀드 운용 경험이 있는 2명과 국내 대형 증권사 AI팀에서 경험을 쌓아온 김 상무까지 세명이 호흡도 잘 맞을 것 같다.
◆ 헤지펀드 최소 자기자본 60억원..개인 최소 5억원
금융위원회가 16일 한국형 헤지펀드와 프라임브로커 도입을 위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헤지펀드 운용업 인가단위를 '혼합자산 펀드'로 하고, 최소 자기자본 요건을 60억원으로 설정했다. 증권펀드가 40억원, 종합펀드가 80억원 등인 것을 감안한 결과다.
운용사는 자기자본과 운용경험, 전문인력 등을 갖춘 자산운용사·증권사·투자자문사에 한해 허용키로 했다. 예를들어 자산운용사는 수탁고 규모 4조원, 증권사는 자기자본 1조원, 투자자문사는 일임계약액 5000억원 등의 조건을 갖춰야한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 요건을 충족하는 자산운용사·증권사·투자자문사는 25개사에 이를 전망이다.
이밖에 국내외 헤지펀드 운용경험이 있는 전문인력을 최소 3명 이상 보유해야 한다.
권대형 금융위 자산운영과장은 "전문인력은 특별한 자격증 요건이 아니다"라며 "해외에서 헤지펀드를 운영해본 경험자를 이미 업계에서 영입하고 있고, 국내 헤지펀드시장이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인투자자의 헤지펀드 최소 가입 금액은 5억원으로 확정됐다. 당초 최소 10억원 이상으로 정할 계획이었지만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는 업계의 요구를 반영해 낮췄다.
헤지펀드 재간접펀드에 대해서는 3분기 중에 최소가입금액, 분산투자요건 등을 포함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최소가입금액 1억~2억원, 분산투자요건 5~10개 헤지펀드편입 등이 업계에서 도출되는 기준이다.
아울러 구조조정기업에 대한 의무 투자비율(50%)도 폐지했고 헤지펀드의 차입한도도 펀드재산의 400%까지 확대했다. 또한 파생상품 매매에 따른 최대 손실가능금액은 현행 일반 사모펀드와 같이 펀드재산의 100%에서 400%로 완화된다.
권대영 과장은 "헤지펀드가 공매도·레버리지 등 다양한 전략을 활용할 수 있도록 현행법상 허용된 한도까지 관련 규제를 완화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보호를 위해 헤지펀드 운용자의 감독당국에 대한 보고의무를 부여한다. 운용자는 금융위가 정하는 기준에 따라 주된 운용전략, 투자대상 자산의 종류, 차입 및 파생상품 현황 등을 분기별로 보고해야 한다.
◆ 프라임브로커, 대형 증권사에 인가 방침
한편 헤지펀드에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라임브로커는 자기자본·위험관리능력 등 조건을 갖춘 대형 증권회사에 한해 허용될 전망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자기자본 규모 등 구체적인 인가 조건이 확정되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대형IB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조건을 정한다는 방침이다.
선진국의 경우에도 업계 과점적인 지위를 갖고 있는 대형사들이 프라임브로커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김학수 금융위 자본시장과장은 "헤지펀드의 수요를 받쳐주기 위해서는 대형사가 해야한다"며 "추가 증자 등으로 증권사의 대형화를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말 기준 증권사들의 자기자본은 △ 대우증권 2.85조원 △ 삼성증권 2.73조원 △ 현대증권 2.65조원 △ 우리투자증권 2.58조원 등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자기자본 2조~4조원 규모를 자기자본 조건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프라임브로커로 인가받은 증권사는 헤지펀드 운용을 겸할 수 없다. 이 경우 상당한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 있어 자회사 형태의 헤지펀드 운용사 설립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프라임브로커에게 헤지펀드에 대한 신용거래융자, 집합투자재산으로 보관·관리되는 증권 담보융자 등이 허용된다. 현행법상으로는 예탁증권담보융자(투자자의 예탁증권을 담보로한 금전융자)만을 제공할 수 있으나 확대하는 것이다.
또 프라임브로커에게 △ 보관·관리하는 펀드재산과 고유재산간 거래 △ 펀드재산 보관·관리업무 중 증권의 실물 보관, 권리관리 등 일부를 은행 증권금융 등 다른 신탁업자에게 위탁하는 것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프라임브로커의 경우 차이니스 월 규제도 완화, 매매·중개업무와 펀드재산 보관·관리 등 신탁업무를 한 부서에서 동시에 할 수 있게 한다. 다만, 증권회사내 다른 부서와 프라임브로커 부서는 엄격히 분리토록한다.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령은 20일 입법예고하고 9월중 시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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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문형민 김연순 기자 (hyung1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