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안보람 기자] '굉장하다'는 말은 사전적으로 보통 이상으로 대단하다는 의미다. '절박하다'는 어떤 일이나 때가 가까이 닥쳐서 몹시 급하다는 뜻이며, '고뇌'는 괴로워하고 번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이 세단어로 10월 금통위 금리결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 과감함 대비 효과 적었던 한은 총재의 '솔직화법'
1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2.25%로 현수준에 동결했다.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원/달러 환율'의 하락세를 간과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금통위회의가 끝난 후 진행된 김중수 총재는 놀라우리만큼 솔직했다.
'솔직히'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하며 "미래 예측이 어렵다"고 말했고, 현재 경제상황의 불확실성이 높다는 점을 '급박하게', '급하게', '급속하게' 등의 표현을 사용해 강조했다.
'굉장히'라는 표현은 기자간담회가 진행된 1시간 가량의 시간동안 12회나 사용됐다.
절박감, 고뇌 등의 직접적인 표현으로 현재 대외경제상황이 쉽지 않은 상황임을, 아울러 대외경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정책결정이 간단치 않음을 시인하기도 했다.
너무나도 솔직했던 김중수 총재의 태도에 시장참가자들은 당황스러운 듯하다. 아슬아슬 줄타기에 능해야 하는 중앙은행 총재의 '솔직화법'이 익숙치 않을 법도 하다. 시장과 팽팽한 균형을 이뤄야 하는 당국이 한쪽 줄을 놔버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본인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시장 혹은 언론의 비판에 정면대응하려는 듯하다. "쉽게 결정한 일이 아니고 나도 이만큼 힘들게 결정한 것이니까 이해해달라"는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 대외여건 이유로 동결했지만 환율 역풍 자초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몇 달전에는 예측가능했던 미래가 지금 불가능해진 게 아닐텐데 부동산을, 추석을, 대외환경을 이유로 금리인상을 감당할 수 있는 경기상황을 지나보냈다.
수출이 절대적 영향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인 만큼 대외경기나 환율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원/달러 환율의 하락을 간과하기 어려웠으리라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환율하락의 근본원인은 양적완화로 넘치는 돈이 비교적 펀더멘털이 괜찮은 우리나라로 들어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기준금리 25bp가 우리나라로 향하는 자금을 막거나 부추기지 못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금리를 동결했음에도 원/달러 환율 하락세는 멈추지 않았다. 금리가 동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파다했던 13일과 금리동결이 결정된 14일 이틀간 하락폭은 무려 20.6원. 해외IB에서는 금리 동결은 되레 원화절상의 신호라며 원화절상을 용인해 물가상승을 제어하려 한다는 역설적인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그 이면에는 좀처럼 회복될 줄 모르는 부동산 시장 때문에 금리인상은 생각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확고한 신념이라는 관측도 더해진다.
하지만 10월 금통위는 결국 환율도 못잡고, 제1목표인 물가는 버렸으며, 금리결정 권한은 이미 한은의 손에 없음을 자인하는 꼴이 된 것 같다.
더욱이 "미래 예측이 어렵다"는 토로는 인간적인 차원에서 심정적으로 이해받을 지는 몰라도 시장에서 용인되긴 어려워 보인다.
자산운용사의 한 채권관계자는 "차라리 우리가 결정하도록 아무말도 안했으면 좋았을 것을 우회전이 어떻고, 물가가 어떻고 이러다가 이제 와서 모른다고 한다"며 "총재가 소신이 있을 것으로 믿었는데 이제와 모른다니 씁쓸하다"고 말했다.
증권사의 한 채권매니저는 "금리동결에 보이지 않는 다른이유가 있었다고 믿고 싶지않지만 다른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며 "솔직한 건 물론 좋지만 이렇게 허탈한 뒷만 뿐이라면 의미가 절반이상 줄어드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뉴스핌 Newspim] 안보람 기자 (ggargg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