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창시절 탈선도...이후 오직 한길 '성공신화'
- 설원량 전 회장의 혹독한 교육이 CEO 밑거름
[뉴스핌=이연호 기자] "한 눈 팔지 않고 전공에 집중하겠습니다"
강희전(사진) 대한전선 사장은 지난달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기업설명회에서 이같이 다짐했다. 하지만 그에겐 이같은 다짐이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이 말은 그가 평생을 살아오며 지켜온 철칙인 동시에, 장수 CEO(최고경영자)가 된 비결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서 강 사장은 "왜 대표이사에 선임됐을까를 고민해 봤다"며 "32년간 대한전선에 몸 담아왔던 점을 살려 옆 길로 빠지지 말고 주력사업에 매진하라는 의미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 사장은 "(대한전선의) 대표이사에 선임된 후 책임감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입술이 터질 정도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가 왜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대표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는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한 눈 팔지 않고 자기 궤도만 열심히 달려 온 기차와 같은 인물이다. 눈 앞의 이익만을 좇지 않고 목적지 하나만 보고 한 우물을 파서 성공한 경우다.
강 사장은 지난 2003년부터 대한전선의 광섬유 생산 자회사인 옵토매직의 대표를 맡아왔다. 이후 대한전선 전선사업본부장을 거쳐 지난 3월 마침내 대한전선 대표이사 사장 자리를 꿰 찼다. 한 회사에서 전문경영인으로 만 7년간 근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한 눈 팔지 않음'이다.
◆ "우직함으로 승부"
변화에 대한 발빠른 대응이 기업을 오랫동안 이끌 수 있는 덕목이라면, 기업에 깊이를 더해 다른 회사들과 차별화 하는 덕목은 집중해 한 우물을 파는 우직함이다. 어리석을 정도로 우직한 사람이 산을 옮기는 법. 우직한 CEO. 그가 바로 강희전 사장이다.
강 사장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로 서울 유학길에 올랐던 때를 떠올렸다. 제주도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던 강 사장은 서울 유학길에 오르면서 자신의 인생이 많이 달라졌다고 회고한다. 강 사장은 고등학교 시절 교내 폭력서클에 가입하는 등 잠시 탈선도 했다. 하지만 이 경험은 오히려 강 사장에게 약이 됐다고 한다. 그 후로는 오직 한길만 줄기차게 달려오며 자신의 성공신화를 써 내려왔기 때문이다.
고집이라면 고집이고 뚝심이라면 뚝심일 수 있는 그의 이런 외길 인생은 그에게 자연스럽게 기회를 가져다준다. 지난 1999년 고(故) 설원량 당시 대한전선 회장의 갑작스러운 호출이 그 것. 당시 통신사업부 부장을 맡고 있던 그에게 떨어진 미션은 광섬유 국산화 사업이었다. 사람 보는 눈이 까다롭기로 정평이 났던 설 회장이 차세대 전선의 핵심 소재인 광섬유사업 적임자로 한 눈 팔지 않는 '강 부장'을 낙점했다.
당시 강 부장은 1978년 입사 후 미국에서 선진 반도체 장비와 선반 기술을 익히며 광섬유 생산을 위한 준비작업을 착실하게 진행해온 터였다. 그는 설 회장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당시 강 부장 주도로 설립된 대한전선 자회사 옵토매직은 현재 국내 최대 광섬유 회사로 발돋움했다.
강 사장 역시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주저없이 설 회장을 꼽는다. 강 사장은 이에 대해 "부장 시절 5년간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거기에서 일하는 방법을 배웠다. 2000년에 임원이 된 후에는 대부분의 일들을 믿고 맡겨 주셨다"고 기억했다. 불은 쇠를 시험하고, 역경은 강자를 시험한다고 했던가. 설 회장은 강 사장을 5년간 단련하며 천상 엔지니어인 그의 능력과 사람 됨됨이를 지켜봤다. 시험을 무사히 마친 강 사장에게 주어진 것은 설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와 믿음이었다.
◆ 시련을 넘어
한 길만 가는 사람에게도 시련과 실패는 있기 마련이다. 강 사장 또한 고난의 세월이 있었고, 그는 이 고비를 잘 이겨냈다. 엔지니어로서 기술과 공장운영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영업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영업은 낯설고 경험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부딪혀 보니 또 할 만 하더라. 결국 다 사람이 하는 것이니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부딪혀서 경험해보면 길이 열리게 되는 법이다"고 말한다.
그는 이처럼 직접 부딪혀 길을 여는 스타일이다. 그의 가장 큰 실패사례 역시 영업마인드 부재에서 시작됐다. 1995년 중국의 업체 사람들과 제품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고, 강 사장은 이 논쟁에서 기술적으로 완승을 거뒀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업체에 납품을 할 수 없게 된 강 사장은 좌절 아닌 좌절을 겪었다. 하지만 강 사장은 이를 한계 극복의 계기로 삼았다. 이를 두고 강 사장은 "절감했던 한계를 극복하고 영업적 마인드를 갖춘 뒤 경영이라는 큰 틀의 사고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자평했다.
◆ 초심을 잃지 않는 '무한도전'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전략도, 생각도, 조직문화도 바뀌어야 합니다" 강 사장이 취임후 첫 번째 가진 리더그룹 워크숍에서 제시한 화두는 바로 '변화'다. 누구나 잘 나갈 때는 과거 부족했을 때의 첫 마음을 잃기 십상이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은 잘 나간다고 생각할수록 의식적으로 초심을 놓지 않는다. 이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느냐 마느냐가 향후 10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강 사장은 워크숍에서 "그동안 흐트려졌던 우리의 전열을 재정비해서 재무개선에는 스피드를 올리고 글로벌 호황기의 전선사업에서 미래 성장을 위한 새 판을 짜 나가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를 통해 오는 2012년까지 지난해 대비 영업이익을 두 배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당찬 각오를 밝힌 강 사장의 무한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 강희전
1953년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태어나 한양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9월 대한전선 중앙연구소에 입사, 광섬유 개발을 주도했다. 이후 대한전선과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등이 합작한 한국광통신주식회사에서 국내 최초로 광섬유 설비를 도입, 생산에 성공했다. 이어 광 케이블 전문기업인 옵토매직을 설립해 2003년부터 이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아왔고, 2006년부터는 대한전선의 전선사업부를 총괄해 경영해 왔다. 지금까지 대한전선에서 32년째 몸 담아 오고 있다. 2010년 2월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으며, 3월 초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 설원량 전 회장의 혹독한 교육이 CEO 밑거름
[뉴스핌=이연호 기자] "한 눈 팔지 않고 전공에 집중하겠습니다"
강희전(사진) 대한전선 사장은 지난달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기업설명회에서 이같이 다짐했다. 하지만 그에겐 이같은 다짐이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이 말은 그가 평생을 살아오며 지켜온 철칙인 동시에, 장수 CEO(최고경영자)가 된 비결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서 강 사장은 "왜 대표이사에 선임됐을까를 고민해 봤다"며 "32년간 대한전선에 몸 담아왔던 점을 살려 옆 길로 빠지지 말고 주력사업에 매진하라는 의미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 사장은 "(대한전선의) 대표이사에 선임된 후 책임감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입술이 터질 정도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가 왜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대표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는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한 눈 팔지 않고 자기 궤도만 열심히 달려 온 기차와 같은 인물이다. 눈 앞의 이익만을 좇지 않고 목적지 하나만 보고 한 우물을 파서 성공한 경우다.
강 사장은 지난 2003년부터 대한전선의 광섬유 생산 자회사인 옵토매직의 대표를 맡아왔다. 이후 대한전선 전선사업본부장을 거쳐 지난 3월 마침내 대한전선 대표이사 사장 자리를 꿰 찼다. 한 회사에서 전문경영인으로 만 7년간 근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한 눈 팔지 않음'이다.
◆ "우직함으로 승부"
변화에 대한 발빠른 대응이 기업을 오랫동안 이끌 수 있는 덕목이라면, 기업에 깊이를 더해 다른 회사들과 차별화 하는 덕목은 집중해 한 우물을 파는 우직함이다. 어리석을 정도로 우직한 사람이 산을 옮기는 법. 우직한 CEO. 그가 바로 강희전 사장이다.
강 사장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로 서울 유학길에 올랐던 때를 떠올렸다. 제주도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던 강 사장은 서울 유학길에 오르면서 자신의 인생이 많이 달라졌다고 회고한다. 강 사장은 고등학교 시절 교내 폭력서클에 가입하는 등 잠시 탈선도 했다. 하지만 이 경험은 오히려 강 사장에게 약이 됐다고 한다. 그 후로는 오직 한길만 줄기차게 달려오며 자신의 성공신화를 써 내려왔기 때문이다.
고집이라면 고집이고 뚝심이라면 뚝심일 수 있는 그의 이런 외길 인생은 그에게 자연스럽게 기회를 가져다준다. 지난 1999년 고(故) 설원량 당시 대한전선 회장의 갑작스러운 호출이 그 것. 당시 통신사업부 부장을 맡고 있던 그에게 떨어진 미션은 광섬유 국산화 사업이었다. 사람 보는 눈이 까다롭기로 정평이 났던 설 회장이 차세대 전선의 핵심 소재인 광섬유사업 적임자로 한 눈 팔지 않는 '강 부장'을 낙점했다.
당시 강 부장은 1978년 입사 후 미국에서 선진 반도체 장비와 선반 기술을 익히며 광섬유 생산을 위한 준비작업을 착실하게 진행해온 터였다. 그는 설 회장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당시 강 부장 주도로 설립된 대한전선 자회사 옵토매직은 현재 국내 최대 광섬유 회사로 발돋움했다.
강 사장 역시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주저없이 설 회장을 꼽는다. 강 사장은 이에 대해 "부장 시절 5년간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거기에서 일하는 방법을 배웠다. 2000년에 임원이 된 후에는 대부분의 일들을 믿고 맡겨 주셨다"고 기억했다. 불은 쇠를 시험하고, 역경은 강자를 시험한다고 했던가. 설 회장은 강 사장을 5년간 단련하며 천상 엔지니어인 그의 능력과 사람 됨됨이를 지켜봤다. 시험을 무사히 마친 강 사장에게 주어진 것은 설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와 믿음이었다.
◆ 시련을 넘어
한 길만 가는 사람에게도 시련과 실패는 있기 마련이다. 강 사장 또한 고난의 세월이 있었고, 그는 이 고비를 잘 이겨냈다. 엔지니어로서 기술과 공장운영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영업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영업은 낯설고 경험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부딪혀 보니 또 할 만 하더라. 결국 다 사람이 하는 것이니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부딪혀서 경험해보면 길이 열리게 되는 법이다"고 말한다.
그는 이처럼 직접 부딪혀 길을 여는 스타일이다. 그의 가장 큰 실패사례 역시 영업마인드 부재에서 시작됐다. 1995년 중국의 업체 사람들과 제품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고, 강 사장은 이 논쟁에서 기술적으로 완승을 거뒀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업체에 납품을 할 수 없게 된 강 사장은 좌절 아닌 좌절을 겪었다. 하지만 강 사장은 이를 한계 극복의 계기로 삼았다. 이를 두고 강 사장은 "절감했던 한계를 극복하고 영업적 마인드를 갖춘 뒤 경영이라는 큰 틀의 사고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자평했다.
◆ 초심을 잃지 않는 '무한도전'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전략도, 생각도, 조직문화도 바뀌어야 합니다" 강 사장이 취임후 첫 번째 가진 리더그룹 워크숍에서 제시한 화두는 바로 '변화'다. 누구나 잘 나갈 때는 과거 부족했을 때의 첫 마음을 잃기 십상이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은 잘 나간다고 생각할수록 의식적으로 초심을 놓지 않는다. 이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느냐 마느냐가 향후 10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강 사장은 워크숍에서 "그동안 흐트려졌던 우리의 전열을 재정비해서 재무개선에는 스피드를 올리고 글로벌 호황기의 전선사업에서 미래 성장을 위한 새 판을 짜 나가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를 통해 오는 2012년까지 지난해 대비 영업이익을 두 배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당찬 각오를 밝힌 강 사장의 무한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 강희전
1953년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태어나 한양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9월 대한전선 중앙연구소에 입사, 광섬유 개발을 주도했다. 이후 대한전선과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등이 합작한 한국광통신주식회사에서 국내 최초로 광섬유 설비를 도입, 생산에 성공했다. 이어 광 케이블 전문기업인 옵토매직을 설립해 2003년부터 이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아왔고, 2006년부터는 대한전선의 전선사업부를 총괄해 경영해 왔다. 지금까지 대한전선에서 32년째 몸 담아 오고 있다. 2010년 2월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으며, 3월 초 대표이사에 선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