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단독 후보 내정자는 한일은행에 행원으로 입행한 후 우리금융과 인연을 맺은지 37년만에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오르게 됐다.
지난 1967년 우리은행의 양대 뿌리중 하나인 한일은행에 입행해 영업, 국제업무, 해외점포 등에서 주로 일했다. 지난 1996년엔 임원으로 승진, 상근이사와 상무이사를 거치는 등 30년간 은행에 몸 담았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쳐지며 뱅커 인생 대신 증권사로 자리를 옮겨 사장직을 맡았다. 1999년부터 지난 2004년까지 우리금융의 증권자회사인 우리증권 사장을 역임했다.
이후 지난 2005년 6월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로 자리를 옮기면서 현재까지 잠시 금융계를 떠나 있었으나 37년간을 우리금융과 연을 맺어왔다.
은행에서 30년 증권에서 7년을 일하며 쌓은 금융업 전반에 대한 식견과 경험은 결국 그를 우리금융 회장으로 선택받는데 한 몫을 톡톡히 해줬다.
기본적인 경영자질은 검증됐다고 금융계는 평가했다.
이재웅 회장 추천위원장(성균관대 교수)도 "은행과 증권 등 다양한 금융회사에서의 경험을 통해 우리금융을 무난히 융합시키고 이끌 역량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우리증권에서 함께 일했던 금융계 한 관계자는 "온화한 성품에 사람과 조직을 끌어안고 가는 스타일"이라며 "조직장악력이 뛰어나 지주 회장으로서 자회사들을 잘 이끌고 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주어진 상황과 여건에 영민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은행권 한 관계자는 평했다.
반면 이 내정자가 우리증권 사장으로 있을 당시 우리증권은 LG투자증권과 합병하기 전이었다. 우리증권같은 작은 조직을 맡아오다 자산 300조원 규모의 거대 금융그룹을 이끈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거대 금융그룹을 움직이면서 시너지를 극대화하는데 필요한 리더십과 조직장악력을 어떻게 확보하고 유지 및 강화시켜 나갈 것인지는 우리금융 경영의 질적 수준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자 과제이기도 하다.
지난 1967년 우리은행의 양대 뿌리중 하나인 한일은행에 입행해 영업, 국제업무, 해외점포 등에서 주로 일했다. 지난 1996년엔 임원으로 승진, 상근이사와 상무이사를 거치는 등 30년간 은행에 몸 담았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쳐지며 뱅커 인생 대신 증권사로 자리를 옮겨 사장직을 맡았다. 1999년부터 지난 2004년까지 우리금융의 증권자회사인 우리증권 사장을 역임했다.
이후 지난 2005년 6월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로 자리를 옮기면서 현재까지 잠시 금융계를 떠나 있었으나 37년간을 우리금융과 연을 맺어왔다.
은행에서 30년 증권에서 7년을 일하며 쌓은 금융업 전반에 대한 식견과 경험은 결국 그를 우리금융 회장으로 선택받는데 한 몫을 톡톡히 해줬다.
기본적인 경영자질은 검증됐다고 금융계는 평가했다.
이재웅 회장 추천위원장(성균관대 교수)도 "은행과 증권 등 다양한 금융회사에서의 경험을 통해 우리금융을 무난히 융합시키고 이끌 역량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우리증권에서 함께 일했던 금융계 한 관계자는 "온화한 성품에 사람과 조직을 끌어안고 가는 스타일"이라며 "조직장악력이 뛰어나 지주 회장으로서 자회사들을 잘 이끌고 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주어진 상황과 여건에 영민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은행권 한 관계자는 평했다.
반면 이 내정자가 우리증권 사장으로 있을 당시 우리증권은 LG투자증권과 합병하기 전이었다. 우리증권같은 작은 조직을 맡아오다 자산 300조원 규모의 거대 금융그룹을 이끈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거대 금융그룹을 움직이면서 시너지를 극대화하는데 필요한 리더십과 조직장악력을 어떻게 확보하고 유지 및 강화시켜 나갈 것인지는 우리금융 경영의 질적 수준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자 과제이기도 하다.